[한자로 보는 문화] 包容 (쌀 포/받아들일 용)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 차 있으면 남을 包容할 수 없어
통찰과 包容을 주제로 해서 창조적 영웅들의 리더십에 대해 논한 책이 화제가 되고 있다. 굳이 이 책의 논지를 빌리지 않더라도,包容이야말로 리더의 필수불가결한 덕목임에 틀림없다. 包容해야 할 대상과 경계해야 할 대상을 구별할 수 있는 통찰력이 전제조건임은 물론이다.
현 집권세력이 국민 대다수로부터 외면 받고 있는 것 역시 이들이 오만과 독선에 빠져 마땅히 包容해야 할 세력을 적으로 돌리고,마땅히 경계해야 할 세력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포용 일변도로 나아갔기 때문일 것이다. 包容力뿐 아니라 통찰력 역시 부족했던 것이다.
包의 巳는 태아를 나타내고 는 싸다는 뜻이므로,包는 아이를 배어 감싸안는 것을 나타낸 글자임을 알 수 있다. 그런 때문으로 包는 '애를 배다'는 뜻의 胞와 통용된다. 그렇게 엄마가 아이를 감싸듯 대상을 둘러싸는 것이 包이다. 包圍(포위)나 包裝(포장)의 包가 그러하다.
包容의 包는 이에서 전이되어 '받아들이다'는 뜻으로 쓰인 예인데,이때의 包는 단순히 받아들인다는 뜻이 아니라 상대상의 허물과 약점을 이해하고 감싸준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포용력이 있는 것을 包荒(포황)이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강과 바다가 그러하듯,거칠거나 더러운 것조차도 내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包容인 것이다.
容貌(용모)나 容姿(용자)의 예에서 보듯,容은 주로 얼굴이나 어떤 모습을 가리킬 때 쓰인다. 이에서 파생되어 '꾸미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女爲悅己者容(여인은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을 위해 얼굴을 꾸민다)는 말의 容이 그러하다. 범죄의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을 일러 容疑者(용의자)라 하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비슷한 용례지만,容恕(용서) 容赦(용사)의 容은 '용서하다'는 뜻으로 쓰였다. '조용하다'의 '조용'이 從容에서 변한 것이라고 보기도 하거니와,容에는 '조용하다'는 뜻도 있다. 容에는 '담다'는 뜻도 있는데,容器(용기) 容量(용량) 容積(용적)의 容이 그러하다. 겨우 무릎이나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비좁은 장소를 가리키는 容膝(용슬)도 이와 마찬가지의 용례이다.
그릇에 무엇을 담으려면 그릇이 비어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마음 속에 오만과 독선,편견으로 가득 차 있고서야 남을 包容할 수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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