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 유럽 출장 중 파리∼취리히 간 스위스에어를 탄 적이 있다. 스위스에어가 친절한 항공사 1∼2위를 다투던 시절이었는데, 의외였던 것은 스튜어디스의 과반이 할머니였다. 브론즈 또는 은발에, 인생계급장이 안면 곳곳에 드리운 초로의 스튜어디스들. 그것 자체가 일종의 문화충격이었다. 그런데 젊고 늘씬한 스튜어디스로부터 서빙받을 때보다 할머니 스튜어디스에게서 더 푸근하고 편한 느낌이 들었다.
'키 160㎝ 이상에 몸무게 50㎏ 미만의 용모 단정한 20대 미혼 여성에 한함.'
미스코리아 출전 자격 기준? 항공사 스튜어디스 채용 기준? 우리나라 기업에서 여직원을 채용할 때 항용 쓰는 문구다. 심지어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생 모집에도 반드시 등장한다.
압권은 바로 '용모 단정' 부분. 도대체 기준이 뭔가? 스스로 거울에 비친 전신을 살펴보고 미모를 판단하라는 눈물겨운 배려인가? 개발연대, 전봇대에 나붙곤 했던 '술집여급 급구' 광고에도 빠짐없이 등장했던 이 문구가 21세기 대명천지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상용구로 떠돌아다니고 있다니….
립싱크 가수의 음성 대역인 뚱보 강한나(김아중 분)가 성형외과 의사 이공학(이한위 분)의 약점을 빌미로 공짜 성형수술을 받고 미녀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 '미녀는 괴로워'는 바로 '미모가 만사를 형통케하는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을 꼬집은 블랙코미디다.
정부가 드디어 칼을 빼들었다. 노동부가 남녀고용평등법을 근거로 업무와 상관없는 용모·나이 등의 제약을 요구하는 차별행위에 집중 단속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얼짱 문화'로 대변되는 외모지상주의로 인해 여성에 대한 채용 차별이 고착화되고 있는 병폐를 손보겠다는 것이다.
그런다고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용모 차별 관행이 쉽사리 해소될 것 같지는 않다. 교묘한 방법으로 얼마든지 차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고용주 측에서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속셈을 깔고 있는 한.
외모보다 실력이 우선인 사회. 실력을 갖춘 이 땅의 딸들이 외모라는 부차적 요건으로 인해 상처받지 않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날은 도대체 언제 쯤일까.
출처:국민일보 글.윤재석 논설위원 jesus01@kmib.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