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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정초 첫 꿈에 나오면 길(吉)하다는 세 가지가 있다. 후지산·독수리·가지(야채)다. 그런데 이 모두 에도(江戶)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깊은 연관이 있다. 그는 말년에 후지산이 잘 보이는 슨푸(駿府·현 시즈오카)에 성을 두고 지냈다. 독수리 사냥을 즐겼고, 음식 중 가지를 가장 좋아했다. 일본인이 얼마나 이에야스를 좋아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莊八)의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980년대 한국에서 『대망』이란 이름으로 출간돼 큰 인기를 끌었다. 일본 전국시대의 세 주인공인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그리고 이에야스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노부나가가 떡을 치고, 히데요시가 떡을 먹음직스럽게 빚어내면 이에야스가 그 떡을 먹는다. 천하통일의 과정과 세 사람의 성격을 빗댄 것이다.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죽여 버려라”(노부나가), “울게 하라”(히데요시), “울 때까지 기다려라”(이에야스)란 비유는 잘 알려진 이야기다. 흔히 이 책은 이에야스의 인품을 상대적으로 돋보이게 했다는 평을 듣는다.
그러나 정작 일본에선 이에야스를 둘러싸고 ‘명군(名君)설’ ‘호군(好君)설’ ‘범군(凡君)설’이 엇갈린다.
명군설의 근거는 역경을 참고 견디는 정신력이 탁월했다는 주장이다. ‘살려 두지도 죽이지도 않는’ 절묘한 힘 배분으로 전국의 지방 영주를 고루 장악한 용인술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검약정신도 주요 덕목이다. 식중독을 일으켜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도미 튀김’은 그가 생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먹은 성찬이었다.
호군설은 그의 별명 ‘너구리’로 상징된다. 뛰어난 책략가이긴 했지만 동시에 표리부동하고 노회한 군주였다는 주장이다. 일본의 대표적 역사소설가인 시바 료타로는 “모략에 통달했지만 재미없는 현실주의자”라고 이에야스를 평했다.
범군설은 우연히 오래 살다 보니(74세에 사망) 천하를 잡을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알려진 것과는 달리 신경질적인 군주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어떤 위인이건 평가에는 명암이 있다. 다만 본인이 그 위인의 어떤 점을 취사선택하느냐가 요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이명박·이회창 후보 중 어느 쪽을 지지할지가 대선 정국의 최대 변수가 됐다. 그런 박 전 대표가 요즘 『대망』을 정독하고 있다고 한다. 침묵도 길어지고 있다. 혹시 ‘살려 두지도 죽이지도 않는’ 이에야스식 용인술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건 아닐까.
출처:중앙일보 글.김현기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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