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萬里浦(만리포)
한자 문화권에서는 먼 거리와 아득한 시간을 나타낼 때 숫자 만(萬)을 사용했다. 만세(萬歲)는 만년(萬年)을 뜻하기도 하지만 영원한 시간 자체다. 만리장성(萬里長城) 역시 성벽이 아득할 정도로 이어졌음을 의미한다. 만리가 붙은 우리나라 지명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서해안 태안(泰安)반도의 중심지 만리포(萬里浦)다.
만리포의 옛 이름은 만리 장벌이다. 장벌은 사장(沙場)을 일컫는 충남지방의 방언이니 '만리(萬里)'와 관련된 지명임을 알 수 있다. 조선조 세종 당시 바닷길로 귀국하는 명나라 사신을 전별하면서 '수중만리(水中萬里)' 먼길을 무사히 돌아가길 기원한 데서 유래한 지명이라고 전해진다. 만리포는 1955년 만리 장벌이 해수욕장으로 개발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만리포는 바닷물이 맑고 낙조(落照)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모래 역시 다른 서해안과는 달리 희고 부드러워 서해안 3대 해수욕장의 하나다. 육지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해 있기도 하다. '똑딱선 기적소리/젊은 꿈을 싣고서…'로 시작되는 1950년대 말 대중가요 '만리포 사랑'으로 더욱 널리 알려졌다.
만리포를 비롯한 태안반도 일대는 바다와 주변 기암절벽이 잘 어울리는 데다 해안선도 다채로워 1978년 국내 유일의 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10여년 전 국립중앙과학관의 학술조사 결과 당시 국내 학계에 보고조차 되지 않았던 미기록 곤충 4종과 칡부엉이 등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희귀 조류 7종 등 1천248종의 동식물이 서식하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크게 평안한 곳(泰安)이라는 이름 그대로 만리포를 비롯한 태안반도 일대는 오염되지 않은 청정해안이었다. 굴 바지락 전복 등 양식의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난 7일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유조선과 해상 크레인 충돌사고로 인한 국내 사상 최악의 원유 유출사고로 오랜 명성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순간의 방심과 실수가 초래한 환경 재앙치고는 대가가 너무 크다.
출처:부산일보 글.이명관 논설위원 lmg@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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