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舍廊]退魔師(퇴마사)
예수회 소속의 마테오 리치 신부는 1583년 중국 남부 광동성(廣東省)에 상륙해 중국 선교를 시작했다. 이마두(利瑪竇)란 중국식 이름도 가진 그는 천주교를 보다 쉽게 전교하기 위해서 현지 융합적인 방식을 선택했다. 조선에도 전파되었던 그의 저서 '천주실의(天主實義)' 서문은 삼강(三綱)과 오륜(五倫)의 첫 번째는 모두 충성이라며 '나라에는 군주가 있는데, 천지에만 유독 주인이 없겠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는 천주교의 하느님(God)을 동양의 상제(上帝)와 비교하는 방식으로 동양 전통사상과 천주교 교리를 융합시키려 노력했다.
공자가 '논어' 위정(爲政)편에서 '자신이 모셔야 할 귀신이 아닌데도 제사 지내는 것은 아첨하는 것이다'고 말한 것처럼 유교는 귀신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자는 옹야(雍也)편에서 '귀신을 공경하되 그것을 멀리하는 것이 지(知)라고 할 수 있다'라고 이중적 자세를 취했다. 공자가 "삶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데 죽음에 대해서 알겠는가?[未知生焉知死]"라고 말하고, "공자는 괴력난신(怪力亂神)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라는 말처럼 유교는 현생(現生)의 도(道)였다. 동진(東晉)의 갈홍(葛洪)이 쓴 도교 서적 '침중서(枕中書)'에 성서(聖書)의 천지창조 비슷한 이야기와 옥황(玉皇)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 것처럼 중국인들에게 내생(來生)은 도교 담당이었다. 중국인들은 집 밖에서는 유가(儒家)지만 집안에서는 도가(道家)라는 말처럼 현세적 유교와 내세적 도교는 서로 공존했다. 병든 공자에게 자로가 기도를 청하자 공자는 "그런 전례가 있느냐"고 물었고, 자로가 "뇌사(?詞)에 '너를 위해 위로는 하늘에 빌고 아래로는 땅의 신에게 빈다'고 했습니다"라고 답하자 공자는 "나는 기도한 지 오래다"고 답한다. 유교의 이런 유연한 신관(神觀)이 도교와 공존을 가능하게 했던 바탕이다.
교황청에서 악령을 쫓는 '퇴마사'(退魔師)를 양성한다는 소식이다. 현 세계의 가장 큰 악령은 귀신 자체보다 물신(物神) 숭배와 타자(他者)에 대한 증오심일 것이다. 퇴마도 이의 퇴치에 맞추어져야 효과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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