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舍廊]劍舞(검무)
한자(漢字) 중에 가장 어려운 초서(草書)의 두 대가가 후한(後漢)의 장지(張芝)와 당(唐)의 장욱(張旭)이다. 장지는 연못을 검게 만들 정도로 연습한다는 '임지학서(臨池學書)'란 사자성어를 만든 인물이다. 장지를 존경했던 진(晉)의 왕희지(王羲之)도 묵지(墨池)의 사례가 전하니 천재란 부단한 연습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장욱은 술에 취하면 모발(毛髮)로 글씨를 써서 '장전(張顚:미치광이 장욱)'으로 불렸는데, 그는 교방(敎坊) 기생 공손대랑(公孫大娘)의 검무(劍舞)를 보고 크게 깨달아 초서를 신묘한 경지로 끌어올렸다. 칼이란 상반된 분야가 붓에 영향을 끼쳤으니 극(極)에 달하면 모두 도(道)로 통함을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주부(慶州府)조에는 신라의 황창랑(黃倡郞) 이야기가 전한다. 7세의 황창랑이 백제에 들어가 칼춤을 추자 구경꾼이 담을 이루었다. 백제왕이 불러서 추도록 하자 검무 도중 왕을 찔러 죽이고 자신도 죽임을 당했다. 신라인들이 그의 모습을 본뜬 가면을 쓰고 칼춤을 췄는데, 이 책을 편찬하던 중종 25년(1530)까지 전해진다고 썼다. 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 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와 장용영(壯勇營)의 백동수(白東脩) 등이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에도 실려 있는 이야기인데, 이 춤이 정조 때까지도 전한다고 썼다.
조선 후기 문신 성대중(成大中)의 '청성잡기(靑城雜記)'에는 설암(雪菴)이란 호의 파녀(坡女) 이야기가 전한다. 파주(坡州) 선비 백상구(白尙九)의 첩이어서 파녀인데 끝내 백상구에게도 자신의 성을 밝히지 않았다. 성대중은 집안의 환란을 피해서 도망한 여인으로 추측했는데, "글씨·그림·바둑·활·가무를 모두 잘했고, 특히 검무를 잘 추어서 홀로 칼춤을 출 때면 검기(劍氣)가 사방으로 뻗쳐 방약무인(傍若無人)했다"고 전한다.
파녀의 시 중에 백상구와 뜻이 맞지 않아 잠시 이별하고 쓴 "문 나설 때 말없이 작별했는데/여울가에 이르니 말이 홀로 우네(出門無語別/臨湍獨馬啼)"란 절창이 있다. 검무는 평양과 진주가 유명했는데 진주 검무 예능보유자 성계옥(成季玉·82) 선생의 별세 소식에 떠오른 일화들이다.
출처:조선일보 글 이덕일·역사평론가 newhis19@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