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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및 묵상

(전도서 10:1-20)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를 난처하게 만드느니라

작성자정요한|작성시간25.08.14|조회수55 목록 댓글 0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를 난처하게 만드느니라
                (전도서 10장 1절 – 20절)
 
  10:1 죽은 파리들이 향기름을 악취가 나게 만드는 것 같이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를 난처하게 만드느니라 2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쪽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쪽에 있느니라 3 우매한 자는 길을 갈 때에도 지혜가 부족하여 각 사람에게 자기가 우매함을 말하느니라8 함정을 파는 자는 거기에 빠질 것이요 담을 허는 자는 뱀에게 물리리라 9 돌들을 떠내는 자는 그로 말미암아 상할 것이요 나무들을 쪼개는 자는 그로 말미암아 위험을 당하리라 10 철 연장이 무디어졌는데도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12 지혜자의 입의 말들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들은 자기를 삼키나니 13 그의 입의 말들의 시작은 우매요 그의 입의 결말들은 심히 미친 것이니라 14 우매한 자는 말을 많이 하거니와 사람은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나중에 일어날 일을 누가 그에게 알리리요16 왕은 어리고 대신들은 아침부터 잔치하는 나라여 네게 화가 있도다 17 왕은 귀족들의 아들이요 대신들은 취하지 아니하고 기력을 보하려고 정한 때에 먹는 나라여 네게 복이 있도다19 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요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이나 돈은 범사에 이용되느니라 20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며 침실에서라도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 공중의 새가 그 소리를 전하고 날짐승이 그 일을 전파할 것임이니라 (개역개정)
 
 
  오늘의 성경 본문은, “전도자의 말씀”(1:1) 곧 ‘전도서’의 4편의 설교(1:12-12:7) 중에, 마지막 네 번째 설교(8:14-12:7)의 전반부(8:14-9:16)가 끝나고 후반부(9:17-12:7)의 시작 부분으로, 인생 허무를 극복하는 한 방법으로서의 3가지 상대적 교훈(9:17-10:20)을 제시하는 내용입니다. 전도서가 잠언서처럼 지혜의 유익성과 효용성을 강조하며 지혜로의 초청을 강조하면서도, 다른 것은 지혜의 한계성을 인식하고 인정할 것을 일깨웁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인데도 그것들을 절대적인 것처럼 섬겼다가 그렇지 못한 것을 아는 순간, 인생의 허무를 느끼게 된다고 했습니다. 왜 사도바울이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3:5)고 선언했겠습니까? 진정한 “지혜”는, 우리가 절대적으로 여겼던 그 어떤 것도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다는, 우상 숭배의 한계성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솔로몬은 “지혜”조차도 절대화하지 말 것을 경고하면서도, 또한 “지혜”를 추구할 것을 당부하는 이유입니다. 솔로몬이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1:3)라고 했던 선언이, 단지 세상의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절대적이며,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인정할 것을 일깨우는 질문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이 사람들이 절대시하는 “지혜”조차도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를 난처하게 만드느니라.”(10:1)며, “지혜”의 한계성을 선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이유입니다.
 
1. 적은 우매가 일으키는 일들이 무엇입니까?
 
  솔로몬은 네 번째 설교 후반부(9:17-12:7)를 시작하며 인생 허무를 극복하는 3가지 상대적 방법(9:17-10:20)을 제시합니다. 그 첫 번째(9:17-10:1)로, 인간의 “지혜”가 유익하면서도 이 땅에서 한계성을 가진 상대적 가치일 수밖에 없다는 것, 곧 “지혜”의 효용성과 한계성을 “조용히 들리는 지혜자들의 말들이, 우매한 자들을 다스리는 자의 호령보다 나으니라.”(9:17)고 했습니다. 흔히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권력자를 더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잠29:25-26)고 했던 경계의 말씀을 기억하는 이들이 복됩니다. 이러한 교훈을 일깨워주는 것들이, 바로 “조용히 들리는 지혜자들의 말들”이 아닌가요? 이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다 알면서도, 믿는 이들이 실제적으로는 힘을 가진 자들의 말을 더 신봉하는 허망한 세상 현실을, 솔로몬은 네 번째 설교의 전반부(8:14-9:16)의 결론으로, “그러므로 내가 이르기를 ‘지혜가 힘보다 나으나, 가난한 자의 지혜가 멸시를 받고, 그의 말들을 사람들이 듣지 아니한다.’”(9:16)라고 증언했습니다. 그러면서 “지혜가 무기보다 나으니라. 그러나 죄인 한 사람이 많은 선을 무너지게 하느니라.”(9:18)며, “지혜”의 효용성을 증언하면서도 “지혜”의 한계성을 탄식조로 증언할 수밖에 없었던 솔로몬의 마음에 공감이 되십니까? “지혜”가 얼마나 유익하고 유용한 것인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도 아닌 “죄인 한 사람”이, 기존의 모든 선한 질서를 한순간에 붕괴시켜버릴 수 있다고 탄식합니다. 절대적 힘을 가진 통치자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별 힘이 없는 “죄인 한 사람”이, 그 사람의 잘못된 어리석은 행태가 공동체와 사회에 빚어낼 수 있는 무서운 파괴력에 대한 증언입니다. 이것을, 솔로몬은 오늘의 본문을 시작하면서, “죽은 파리들이 향 기름을 악취가 나게 만드는 것 같이,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를 난처하게 만드느니라.”(10:1) 곧 “파리 한 마리가 빠져 죽으면 향수 한 병을 버리게 된다. 그렇듯 하찮은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지혜로 얻은 영광을 물거품으로 돌려버리는 수가 있다.”(공동번역)라고 비유합니다. “난처하게 만드느니라”는 “더럽힌다”(새번역)는 의미로, 지금까지 쌓아올린 모든 것을 붕괴시킬 뿐만 아니라, 또한 주변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죽은 파리” 한 마리가 향수병에 빠지는 순간 그 “향수 한 병”을 다 버려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아무리 “지혜”가 있어도 “적은 우매”가 우선하는 순간, 또 사회 속에서 자신의 “적은 우매”를 고집하는 “죄인 한 사람”이 있게 되면, “지혜와 존귀”를 얻기까지 그 개인이 쌓아온 인생과 사회가 쌓아온 질서가 하루아침에 붕괴되는 안타까운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고 경고합니다. 따라서 솔로몬은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잠25:28)고 경고했고, 한 공동체의 흥망성쇠와 평화를 지키는 비결도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으로 말미암아 무너지느니라.…거만한 자는 성읍을 요란하게 하여도, 슬기로운 자는 노를 그치게 하느니라.”(잠11:11,29:8)고 했던 의미입니다. 야고보 선생도 이처럼 작은 한 부분이 전체에 미치는 파괴력을,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약3:5-6)는 비유로 경고했습니다. 우리 각자의 “적은 우매”를 극복하는 것이,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며 “지혜와 존귀”를 지키는 길이라고 교훈하는 의미를 깨닫는 이들이 복됩니다. 따라서 솔로몬이 제시한 인생 허무를 극복하는 3가지 상대적 방법 중에, 그 두 번째(10:2-15)로 우매자의 잘못된 처세들에 대한 예시적 증언을 통해서 “지혜” 있는 자의 삶을 살 것을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쪽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쪽에 있느니라”(10:2) 곧 “지혜로운 사람의 마음은 옳은 일 쪽으로 기울고,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은 그릇된 일 쪽으로 기운다.”(새번역)라고 교훈합니다. “오른쪽”과 “왼쪽”은 사상적 정치적인 ‘좌파 우파’의 개념이 아니라, 이스라엘적 관념으로서 “오른쪽”은 ‘영광, 보호, 의로움, 능력’을 상징하며, “왼쪽”은 ‘불의, 열등함, 무능력’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지혜자의 마음”은 근본적인 심성이 바르고 정의로우며 자기 생각을 제어할 줄 알아서 선한 방향 감각과 지혜로운 생각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면, “우매자의 마음”은 순간순간의 자기 탐욕과 열정을 제어하지 못해서 분별력이 없다보니, 그릇된 길과 곁길로 빠지는 어리석은 생각을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그 추구하는 목표와 관심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혜자”와 “우매자”의 차이가 사실은 엄청난 것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그 사람의 언어 습관에 있다는 것을, “우매한 자는 길을 갈 때에도 지혜가 부족하여, 각 사람에게 자기가 우매함을 말하느니라.”(10:3) 곧 “사람이 어리석으면 만사에 생각이 모자라, 입만 열면 제 어리석음을 드러낸다.”(공동번역)라고 경계합니다. 그 이유는 “우매한 자”의 특징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혼자 다 아는 척 하다 보니 말이 많다는 점에서, “미련한 자는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잠18:2)고 경계했던 이유입니다. 다음으로는, 인간관계의 문제로 특히 윗사람들과의 관계에 신중할 것을 “주권자가 네게 분을 일으키거든, 너는 네 자리를 떠나지 말라. 공손함이 큰 허물을 용서 받게 하느니라.”(10:4) 곧 “임금이 너에게 화를 내더라도 자리를 뜨지 마라. 침착하면 큰 실수를 미리 막을 수 있다.”(공동번역)라며, 즉흥적인 자기 기분과 감정의 처세를 우선하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따라서 자기 마음을 다스릴 줄 모르는 사람과는 멀리할 것을,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노하기를 맹렬히 하는 자는 벌을 받을 것이라. 네가 그를 건져 주면, 다시 그런 일이 생기리라.”(잠14:17,19:19)고 경계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해 아래에서 한 가지 재난을 보았노니, 곧 주권자에게서 나오는 허물이라.”(10:5)며, 통치력을 가진 지도자들이 흔히 행하는 “우매” 사례를 제시합니다. “우매한 자가 크게 높은 지위들을 얻고, 부자들이 낮은 지위에 앉는도다.”(10:6)라며, 이것을 다시금 “또 내가 보았노니, 종들은 말을 타고, 고관들은 종들처럼 땅에 걸어 다니는도다.”(10:7)라고 비유하며, 위계질서가 무너진 혼란한 정치 체계와 사회 상황을 고발합니다. “종들”이 “말을 타고” 다닌다는 것은 무능력한 사람들이 “높은 지위”를 얻었다는 것이며, “고관들”이 “걸어 다니는” 것은 반대로 능력을 가진 이들이 푸대접을 받고 하위직으로 쫓겨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자들”은 단순히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고관들”의 의미로서, 재산만이 아니라 지식과 덕망과 사람들을 잘 통솔할 지도력까지 갖춘 이들입니다. 그런데도 통치자들이 행하는 “적은 우매”를 가리켜서, 자기 곁에서 아부하거나 청탁 또 가깝다는 이유 하나로, 사람을 통솔하는 위치에 앉혀서는 안 될 어리석은 사람들인 “우매한 자”와 아무 능력이 없는 “종들”을 관리자로 세운다고 지적합니다.
 
2. 우매한 자들이 가진 특징이 무엇입니까?
 
  솔로몬이 이번에는 일상생활에서 저지르게 되는 “적은 우매”의 사례를 몇 가지로 일깨웁니다. “우매자”들은 자기 행동 결과를 내다보지 못하고 생각 없이 행동한다는 특징이 있다면, “지혜자”들은 자기 행동 결과를 내다보기에 닥칠 상황을 신중하게 미리 대비하거나 자제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적은 우매”의 첫째 사례는, “함정을 파는 자는 거기에 빠질 것이요, 담을 허는 자는 뱀에게 물리리라.”(10:8)며, 사람들을 시기하여 해를 끼치기 위해서 교묘한 수법으로 악을 자행하는 자는 오히려 자신이 그에 합당한 보응을 받게 될 것을 경고합니다. 이것을 다윗은 “함정을 깊이 파지만, 그가 만든 구덩이에 그가 빠진다. 남에게 준 고통이 그에게로 돌아가고, 남에게 휘두른 폭력도 그의 정수리로 돌아간다.”(시7:15-16,새번역)라며, 이 때문에 “나는 주님의 의로우심을 찬송하고, 가장 높으신 주님의 이름을 노래하련다.”(시7:17,새번역)라고 고백했고, 따라서 스가랴 선지자는 “오직 너희는 진리와 화평을 사랑할지니라.”(슥8:19)고 권면합니다. 단순히 도덕적 관점의 인과응보 논리가 아니라, 인간의 행위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심판과 신뢰에 대한 증언입니다. “적은 우매”의 둘째 사례는, “돌들을 떠내는 자는 그로 말미암아 상할 것이요, 나무들을 쪼개는 자는 그로 말미암아 위험을 당하리라.”(10:9)며, 육체적으로 힘든 노동을 하는 채석공과 벌목공을 예로 들어서 자신이 하는 일과 현장에서 벌어질 위험성을 파악하고 대비할 것을 경고합니다. 그럼에도 흔히들 자기에게는 벌어지지 않을 일로 여기다가 사고를 당하는 우매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적은 우매”의 셋째 사례는, “철 연장이 무디어졌는데도,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10:10) 곧 “도끼날이 무디어졌으면 갈아야 일하기 쉬운 법이니, 지혜롭게 일해야 성과가 오른다.”(공동번역)라며, 수시로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은 힘대로 들면서 원활한 작업도 별다른 성과도 거둘 수 없다고 경고합니다. ‘머리가 나쁘면, 팔다리가 고생한다.’는 말처럼,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하고 “우매”할 때 직면해야 할 불필요한 수고를 일깨웁니다. “적은 우매”의 넷째 사례는, “주술을 베풀기 전에 뱀에게 물렸으면, 술객은 소용이 없느니라.”(10:11) 곧 “뱀을 홀리지 못하고 물린다면 땅꾼이라도 별 수가 없다.”(공동번역)라며, 자신이 아무리 “뱀”을 잘 다룰 능력을 가졌어도 “뱀”에게 물린다면 “별 수가 없”는 것처럼, “지혜”가 아무리 “성공하기에 유익”하다고 해도 미리 신중하게 계획하고 준비하지 못한다면 아무 쓸모가 없다는 비유적 표현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넘기는 “적은 우매”가 어떻게 우리 인생을 허무하게 만드는가를 일깨운 솔로몬은, “우매한 자”들의 특징을 어떻게 경계합니까? “우매한 자”들의 첫째 특징을, “지혜자의 입의 말들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들은 자기를 삼키나니”(10:12) 곧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해서 덕을 보고, 어리석은 사람은 제 입으로 한 말 때문에 망한다.”(새번역)라며, 스스로가 내뱉은 어리석은 말들로 인해서 자기를 망하게 하는 이들이라고 증언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입의 말들의 시작은 우매요, 그의 입의 결말들은 심히 미친 것이니라.”(10:13)며, 스스로 내뱉은 말들 때문에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마음은 옳은 일 쪽으로 기울고,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은 그릇된 일 쪽으로 기운다.”(10:2,새번역)라고 했던 것처럼,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고 있는 전인격이 무엇이냐가 그 사람의 언어와 행동으로 드러나기에,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잠15:2)고 했습니다. “우매한 자”들의 둘째 특징을, “우매한 자는 말을 많이 하거니와, 사람은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나중에 일어날 일을 누가 그에게 알리리요.”(10:14)라며, 너무 말이 많다고 증언합니다. “장래 일” 곧 “한치 앞”(공동번역)도 알지 못할뿐더러, 죽고 나면 더 이상 알 수 있는 것도 없는데,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떠들며 입만 열만 거짓말을 내뱉는다는 것입니다. 왜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10:19)고 당부했겠습니까? “우매한 자”들의 셋째 특징을, “우매한 자들의 수고는 자신을 피곤하게 할 뿐이라. 그들은 성읍에 들어갈 줄도 알지 못함이니라.”(10:15)며,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결과와 자기 유익만을 쫓아다니며 우왕좌왕하다보니 자신과 사람들을 “피곤하게 할 뿐” 아무런 보람과 기쁨도 없고, 심지어 눈 뜬 소경이 되어 다들 아는 명백한 일들조차 보지 못한다고 증언합니다. “우매한 자”들의 행태에, 솔로몬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2:23)라며, 왜 인생의 허무를 탄식했는지 알만하지 않은가요?
 
3. 왜 저주와 축복을 받을 자로 나뉩니까?
 
  솔로몬이 제시한 인생 허무를 극복하는 3가지 상대적 방법 중에, 그 세 번째(10:16-20)로 지도자와 백성들의 잘못된 처신이 빚어내는 한 국가와 사회의 흥망의 증언을 통해서 믿는 자들의 바른 처신을 어떻게 교훈합니까? 먼저는, 국가와 사회의 근간을 가리켜서 “왕은 어리고, 대신들은 아침부터 잔치하는 나라여, 네게 화가 있도다! 왕은 귀족들의 아들이요, 대신들은 취하지 아니하고, 기력을 보하려고 정한 때에 먹는 나라여, 네게 복이 있도다!”(10:16-17)라고 교훈합니다. “왕은 어리고”는, 통치자로서의 자질과 능력이 모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통치력의 부재 때문에 국가 기강이 무너져서, 사치와 방종 그리고 나태와 쾌락에 빠진 상태를 “대신들은 아침부터 잔치하는 나라여”라고 지칭하며, 이들을 향해 “너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10:16,새번역)라고 선언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이런 이들을 가리켜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사5:11)라고 탄식하며 저주했습니다. “왕은 귀족들의 아들이요”는, 단지 신분이 높은 집의 자제라는 뜻이 아니라, 사고방식과 근본 성품 그리고 행동거지가 순수하고 고결하며 다른 사람을 다스릴만한 기질과 자질을 갖춘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함께하는 신하들이 지키는 질서 있는 식생활 태도를, 식사와 함께 음주를 해도 “취하지 아니하고”, 음식도 쾌락이나 탐식이 아닌 건강하게 자기 역할을 잘 감당하고자 “기력을 보하려고” 먹으며, 아무 때나 먹는 것이 아니라 식사 시간으로 “정한 때에 먹는 나라여”라며, 이들을 향해 “너는 복을 받을 것이다”(10:17,새번역)라고 선언합니다. 솔로몬은 “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도 더불어 사귀지 말라.”(잠23:20)고 경계하며, 이처럼 “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잠23:21)들을 멀리해야 하는 것을,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23:7)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통치자들의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나온 “게으른즉 서까래가 내려앉고, 손을 놓은즉 집이 새느니라.”(10:18)는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게으르고 무책임한 지도자들의 방임과 방치로 인한 국가 상태를 무너져가는 집으로 비유하면서, 위태로운 국가적 상황으로 인해 백성들이 안정되게 평안히 살 수 없는 불안한 상태에 다다른 것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이처럼 위기 상황에 처한 국가에 만연한 무너진 사회적 가치관을 가리켜서, “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요,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이나, 돈은 범사에 이용되느니라.”(10:19) 곧 “사람은 즐거우려고 잔치를 벌인다. 술이 있어야 살맛이 있다.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공동번역)라고 다들 떠든다고 증언합니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지배 계층의 사고방식이자, 백성들조차도 오직 관심이 먹고 마시는 쾌락을 위한 “잔치”와 “술”에 의존해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 황금만능주의에 물들어서 “돈”만 있으면 못할게 없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황금만능주의’라고 하지, ‘황금전능주의’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이 차이는 “돈”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돈”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 사도 바울이 믿음의 사람들을 향해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10)라고 경계했겠습니까?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돈”이 필요 없다거나 “돈”이 악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돈”은 인격체가 아니기에, 어떤 인격의 사람이 그 “돈”을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돈”의 가치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솔로몬은 마지막으로, 앞에서 지적한 잘못된 가치관을 가졌다할지라도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며, 침실에서라도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10:20)며, 왜냐하면 “공중의 새가 그 소리를 전하고, 날짐승이 그 일을 전파할 것임이니라.”(10:20)고 경계합니다. 그렇다면 권력자들인 “왕”과 “부자”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침묵하라는 의미인가요? 신중하지 못한 성급한 처세가 심각한 “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롬12:16-19)고 당부하신 말씀을 기억하는 이들이 복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왜 오늘 솔로몬이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를 난처하게 만드느니라.”(10:1) 곧 “변변치 않은 적은 일 하나가 지혜를 가리고 명예를 더럽힌다.”(새번역)라고 경계했는지 아시겠습니까? 세상에는 우리 인생을 허무하게 하는 제약적인 한계성이 수없이 많지만, 또한 우리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가운데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솔로몬은 이러한 한계성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지혜”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7:13)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또한, 스스로가 저지르는 작은 잘못들 곧 “적은 우매”로 인해 우리 인생의 “지혜와 존귀”를 훼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우리가 풀어가야 할 자세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다투는 시작은 둑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잠17:14)고 당부했던 것처럼, 우리의 “적은 우매”와 “죄인 한 사람”을 극복하는 “지혜”야말로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는 한 상대적인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 같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상대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들이 세상의 현실과 인생의 한계성을 인식하고 인정하며, 주님 안에서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는 참된 믿음의 삶을 살아갑니다. 솔로몬이 왜 “지혜가 무기보다 나으니라. 그러나 죄인 한 사람이 많은 선을 무너지게 하느니라. 죽은 파리들이 향 기름을 악취가 나게 만드는 것 같이,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를 난처하게 만드느니라.”(9:18,10:1)고 경고한 것인지를 통해서, “의인이 형통하면 성읍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패망하면 기뻐 외치느니라.…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영달함은 수치가 되느니라.”(잠11:10,3:35)고 했던 의미를 깨닫는 이들이 복됩니다. “적은 우매” 때문에, 자기 생각만을 전부로 여기거나 미처 신중하게 생각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안다면, 인간의 “지혜”가 한계성이 있지만 이 땅을 사는 동안 인생의 허무함을 한 부분 극복하게 해주는 상대적 유익으로서 솔로몬이 권면한 의미를 깨닫고, 허망한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복된 믿음의 성도들이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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