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국의 도래를 비유로 선포하신 예수 (사복음서연대기25 / 마태복음 13장 1-52절) 13:1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 새 더러는 길 가에…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24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28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48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52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개역개정) 오늘의 성경 본문은, 제2차 갈릴리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신 예수께서 천국에 대한 비유 설교를 통해서, 누가 천국에 참여하는 알곡이 되며, 누가 천국에 참여하지 못하고 쫓겨나게 될 가라지가 될 것인가를 선언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선포하신 중심 주제는 “하나님 나라” 곧 “천국”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산상설교의 결론으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고 선언하셨던 것을 반복하여 강조합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들이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을 7가지 비유를 통해 일깨우고 초청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천국”이 ‘이미’ 이 땅에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라임을, “천국”의 시작과 성장 그리고 완성과 심판까지의 다양한 비유를 통해서 예수께서 계시하시는 내용입니다. 1. 씨뿌리는 자 비유의 강조점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본문은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13:1-3)라는 선언으로 시작됩니다. “그 날”은 예수께서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12:22)을 고쳐주신 사건을, “바리새인들”과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이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막3:22)고 폄하하며 왜곡시켰던 “그 날”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사람들의 관심이 예수께로 쏠리는 것을 가로막기 위해서, 예수께서 행하신 사역들을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막3:30)며 “그가 미쳤다”(막3:21)는 헛소문을 퍼트렸습니다. 이 때문에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막3:21) 곧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이”(12:46) 예수를 찾아온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상황에서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눅8:21)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런 사건이 있었던 “그 날”에, 예수께서는 “천국”에 대한 첫 번째 “비유”인 “씨를 뿌리는 자”(13:3,막4:3,눅8:5)에 관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어떤 이들인지를 선포합니다. 예수님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 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13:3-8)는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에서의 강조점은 “하나님의 말씀”(눅8:11)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있다는 점에서, 4가지 마음“밭”에 관한 “비유”입니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들으라”(막4:3)는 선언으로 시작하고,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눅8:8)라며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막4:9,눅8:8,마13:9)는 선언으로 마무리합니다. 세상에 “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제대로 듣고자 하는 분별력과 깨달은 말씀에 대해 순종하려는 마음 자세를 갖출 것에 대한 당부입니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말씀”을 받아들이는 우리 마음의 “밭”을 “길 가”와 “흙이 얕은 돌밭”과 “가시떨기”와 “좋은 땅”이라는 4가지로 “비유”하신 의미를 어떻게 풀어주십니까? 먼저는, “밭”을 “말씀을 들은 자”(눅8:12)로, “씨를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막4:14)며, 예수님 자신과 그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과 전도자들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첫째로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막4:15)을, 그 마음이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13:19)라고 하시며, 그럴 때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13:19) 곧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눅8:12)이라고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오고가는 “길 가”는, 땅이 단단하게 굳어져서 씨앗이 떨어져도 심길 수 없는 뺀질뺀질하고 교만한 “마음” 상태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같은 이들을 지칭합니다. 둘째로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13:20)을,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막4:16-17) 곧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눅8:13)라고 했습니다. “환난이나 박해” 같은 “시련”은, 어떤 사람에게는 믿음과 인격을 성숙시키는 ‘디딤돌’이 되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인생의 ‘걸림돌’이 됩니다. 이 “돌밭”은 “흙이 얕은 돌밭”(13:5)으로, 암반 위에 흙이 얇게 덧입혀 있어서 바위가 달궈지면 쉽게 발아하지만 결국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셋째로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13:22)을,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막4:18-19)라며, 이러한 것들로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13:22) 곧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눅8:14)라고 했습니다. “기운이 막혀”는 성령을 거스르는 “육체의 소욕”(갈5:17)이 너무나 강해서 그 마음 안에서 성령께서 역사하시지 못하다보니 “말씀”이 질식당하는 상태로서, 결국 성령의 인격적 열매(갈5:22-26)를 맺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13:23)을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13:23) 곧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눅8:15)라며, 그 “결실”의 축복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막4:8)라고 선언합니다. 예수님은 모두가 동일한 “말씀”을 듣지만, 받는 “마음” 상태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삶 속에서 전혀 다른 “결실”을 맺게 된다고 경계합니다. 왜냐하면 씨앗은 그 자체로 생명을 품고 있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히4:12)라는 증언처럼, “말씀”은 생명력으로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 “비유”를 제자들이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13:10) 곧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으니”(눅8:9)라고 했고, 예수께서도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막4:13)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13:11-12)고 말씀하셨습니다. “있는 자”란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믿음으로 예수께서 선포하신 “말씀”을 받아들이는 이들이라면, “없는 자”는 “말씀”을 거부하는 이들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13:13)며, 과거에 죄를 범한 유대인들이 회개치 않고 악행을 계속하다가 나라가 망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갈 것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13:14-15, 참고 사6:8-12)이 성취된 것처럼, 예수의 “말씀”을 거부하는 이들이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막4:12)고 선언합니다. 2. 천국의 성장 과정을 어떻게 비유합니까?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에서 “하나님 나라” 곧 “천국”은 핵심적인 주제였지만, 그 영적이고 신비로운 실체를 인간의 언어로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일상의 소재를 활용한 “비유”를 통해 “천국의 비밀”을 가르치셨습니다. 이러한 “비유”가, “하나님 나라” 곧 “천국”을 구하고 찾는 자에게는 그 진리를 깨닫게 하는 계시의 수단이었지만, “마음”이 닫힌 자에게는 그 의미가 감추어지는 이중적인 특성이 있었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악한 이들도 듣고 돌이키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가져보지만,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13:15,사6:10)고 선언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나 하나님께서 저들이 돌이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마음이 완악”해서 돌이키지 않는 이들을 억지로 돌이키려고 할 때 일어날 일을,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7:6)며, 왜냐하면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7:6)고 말씀하셨던 의미입니다. 이미 마음이 삐뚤어져 있기에, 오히려 “말씀”을 왜곡시켜서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더 큰 일을 저지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천국”에 대한 두 번째 “비유”로서,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13:24-26)이라고 일깨웁니다. 분명히 “세상”(13:38)과 교회 안에 “천국의 아들들”(13:38)인 “좋은 씨”를 뿌렸는데도 불구하고, 늘 “악한 자의 아들들”(13:38)인 “가라지” 같은 인간이 존재하는 것에 대한 “비유”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인지 모두가 의아해한다는 것을,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13:27)라는 질문이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13:28)라며, 언제 어디나 “원수” 곧 “사탄”과 “마귀”(13:39)가 “사람들이 잘 때에” 은밀하게 교회와 세상 속에 자기 씨앗을 “덧뿌리고” 간 그들의 하수인들이 “가라지”의 실체라고 설명해줍니다. 이러한 상황에 “종들”은 당연히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13:28)라고 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놀랍게도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13:29-30)며, 만류하는 “비유” 말씀을 하셨습니다. 팔레스틴에 자라는 “가라지”는 단순한 잡초가 아니라 ‘독보리’로서, 이것이 보리알이나 밀알에 섞여 들어가면 독성이 있어서 맛이 쓰고 구토를 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서 골라내야 하는데, 성장기에는 밀과 보리와 같이 그 형태를 분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혹 알아도 뿌리 성장 속도가 빨라 다른 “곡식”들과 얽혀있다 보니 잡아 뽑는 순간 다른 “곡식”들이 함께 뽑혀 나온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고 한 것은, “곡식”은 무르익으면 알곡들의 무게 때문에 이삭이 고개를 숙이는 반면, “가라지”는 낱알이 거의 없기 때문에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있어서 한 눈에 표시가 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가라지” 윗부분만 먼저 낫으로 쳐서 모아두었다가 불에 사르고, 다음에 “곡식”을 추수해서 “곳간”에 넣는 풍습을 통한 “비유” 말씀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 곧 “천국”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는 늘 “사탄”의 역사가 존재하기에, “곡식”과 “가라지”가 공존하는 것이 교회와 세상 현실일 수밖에 없음을 일깨웁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의 권고처럼 마지막까지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1) 곧 “가라지”가 행하는 죄악을 동일하게 반복하지 않는 것이, 온전한 믿음의 사람들로 성숙해가는 영적 싸움이자 연단의 과정이라고 당부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마지막 때 임할 심판을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13:41-42)고 경고하며, 그러나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13:43)고 격려합니다. 예수님은 “천국”에 대한 세 번째 “비유”로서,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13:31)라며,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13:32) 곧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막4:32)고 말씀하십니다. “겨자씨 한 알”은 참깨보다 작은 모습이지만, 자라나면 1-3m 높이의 “나무”처럼 자라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많은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이는 쉼터가 되지 않느냐는 “비유”입니다.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의 “비유”는, 예수님 한 분으로 시작된 “하나님 나라” 곧 “천국”이 땅 끝까지 확장되어 세계 도처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평안과 안식을 얻는 터전이 될 것이라는 약속의 선언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천국”에 대한 네 번째 “비유”로서,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13:33)고 말씀하십니다. “누룩”은 성경에서 악한 영향력에 대한 부정적 의미로 쓰지만, 여기에서는 “하나님 나라 복음”의 확장성이라고 하는 긍정적 의미입니다. 밀가루 반죽을 “전부 부풀게” 하는 영향력에 대한 “비유”로서, 사회적 전반에 대한 선한 영향력으로 그 사회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러면서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13:34)던 이유와 의미를,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13:35)고 증언합니다. 세상이 시작되면서부터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와 계획을, 예수님을 통해 성취하고자 “천국의 비밀”(13:11)을 드러내신 것이 “비유”의 “말씀”이라고 밝힙니다. 3. 천국의 열망과 심판을 어떻게 비유합니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곧 “천국”의 성장을 “겨자씨 한 알”과 “누룩”의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막4:26-28)고 했습니다. 우리는 씨앗의 성장 과정을 다 알지 못하지만, 생명력을 가지고 자라서 열매를 맺습니다. 이것은 “천국” 곧 “하나님 나라”의 성장 과정이,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천국” 운동은 갈릴리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되었으며, 예수님과 열두 제자라는 작은 공동체로 시작되었지만, 오늘날 전 세계로 확장되었습니다. “복음”이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작고 미약해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생명력이 그 안에 있기 때문에 반드시 성장하며 확장된다는 점에서, 결국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이끄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선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결과를 조급하게 바라보기보다 마음과 생각의 문을 열고 하나님께서 이루실 성장을 신뢰할 것을,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막4:24) 곧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눅8:18)며,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막4:24-25)고 일깨웁니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스스로 믿음이 좋다고 자처하는 “바리새인들”과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처럼 거부하지 않고, 그 “말씀”의 씨앗이 “뿌리”를 내려 잘 자랄 수 있는 “좋은 땅” 곧 “착하고 좋은 마음”의 토양으로 우리의 영혼을 기경할 때, “말씀을 듣고 깨닫는” 은총의 삶을 살아가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천국”에 대한 다섯 번째 “비유”를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13:44)고 하셨고, 여섯 번째 “비유”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13:45-46)고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밭에 감추인 보화”와 “극히 값진 진주”로 “비유”하면서, 이러한 “보화”를 소유하기 위해서 우리 인생의 열정을 다 쏟을 것을 당부합니다. 다섯 번째 “비유”는, 우연히 발견한 “밭에 감추인 보화”를 얻기 위해서 합법적으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했습니다. 여섯 번째 “비유”는, 의도적으로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처럼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는 곧 구도자로서 자기 전 인생을 쏟아 부었다고 했습니다. 이 두 “비유”는, 합법적으로 “천국”을 쟁취하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예수께서 산상 설교 결론에서, 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7:23)고 경고하셨을까요? “주의 이름으로”(7:22)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역들로 말미암아 악한 영향력이 통치하는 그곳이 과연 “천국”이며 “하나님 나라”일까요? 따라서 예수님은 “천국”에 대한 일곱 번째 “비유”를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13:47-48)며,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13:49-50)는 심판 선언으로 마무리합니다.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처럼, 이 “비유”도 교회 공동체 안에는 인격적으로 “좋은 것”과 “못된 것” 곧 “의인”과 “악인”이 공존한다는 것을 일깨우며, 중요한 것은 그 마지막 결말이 다르다는 선언으로 “천국”에 대한 “비유”를 마치신 이유와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께서 “천국”에 도래 곧 임재를 “비유”로 선포하신 의미와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논리만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천국”을 다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예수께서는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2차 갈릴리 공생애 사역의 특징은, “비유” 설교를 사용하셨다는 점과, 기존의 세상 질서와 다른 “천국”의 질서가 임하는 새로운 공동체로 초청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을 이러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세우기 위한 교육에 힘쓰신 것을,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막4:33-34)고 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천국”에 대한 모든 “비유”의 “말씀”을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13:51)고 물으십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러하오이다”(13:51)라고 대답했지만, 사복음서가 증언하는 “제자들”의 모습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순간까지도, 아니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까지도 예수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와 의도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서두르지 않고 저들이 “하나님 나라” 곧 “천국”의 일꾼으로서 헌신하게 될 것을 믿고,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13:52)고 선언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천국의 비밀”을 아는 자로서의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이라고 호칭했습니다. “새것”은 신약의 복음을 의미한다면, “옛것”은 구약의 율법을 의미합니다. “천국”의 “비유”를 깨달은 이들이 해야 할 일로서, 단순히 지적인 만족이 아니라 열매를 맺는 삶을 살 것을 당부합니다. 세상과 교회 안에는 여전히 악과 선이 공존하며, “가라지”가 “곡식”과 섞여 자라나는 곳입니다. “천국”은 단지 소망의 나라만이 아니라 최종적인 심판과 공의가 실현되는 나라이기에, 우리는 “천국”을 사모하며 동시에 하나님 앞에 깨어 준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눅8:17)고 하신 예수님의 선언처럼, 우리가 혹시 사람들을 속일 수는 있어도, 하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살아가야 할 “하나님 나라” 곧 “천국”의 삶과 사역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온전하고 거룩한 주님의 사람들로 굳게 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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