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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한국역사바로알기

[조선]세조가 죽인 사람들

작성자신채호 조선상고사|작성시간14.10.14|조회수848 목록 댓글 3



1.계유정난
 
 
황보인: 영의정(정1품), 1453년 10월 10일밤 입궐하다 홍윤성, 함귀에 의해 피살
김종서: 좌의정(정1품), 1453년 10월 11일 양정, 이흥상에 의해 참살
정분: 우의정(정1품), 계유정난으로 귀양을 가 1454년 사사
이양: 우찬성(종1품), 판중추원사, 1453년 10월 10일밤 입궐하다 함귀에 의해 피살
허후: 좌참찬(정2품), 수양대군이 좌찬성을 제수해 회유했으나 이를 거부하고 황보인, 김종서를 변호하다 거제도에서 교수형
민신: 이조판서(정2품), 문종 왕릉 공사를 감독하다 1453년 10월 10일밤 삼군진무 서조에 의해 피살
조극관: 병조판서(정2품), 1453년 10월 10일밤 입궐하다 홍윤성, 함귀에 의해 피살
 
안평대군 이용: 세종의 3남, 1453년 10월 18일 귀양길에 사사
의춘군 이우직: 안평대군의 장남, 1453년 10월 18일 사사
덕양정 이우량: 안평대군의 차남, 사사
김승규: 지부, 김종서의 장남, 1453년 10월 10일밤 양정이 김종서를 철퇴로 내리치자 아비를 지키다 참살됨
김승벽: 직장, 김종서의 차남, 1453년 10월 11일 아비 김종서와 함께 참살
김목대: 김종서의 3남, 교수형
김석대: 김종서의 4남, 교수형
김조동: 김승규의 장남, 유배지에서 사사
김수동: 김승규의 차남, 유배지에서 사사
김말생
김산호: 김말생의 아들
김상충
김득천: 김상충의 아들
김복천: 김상충의 아들
김정
김개질동: 김정의 아들
민보석: 이조판서 민신의 아들
민석이: 이조판서 민신의 아들
박계우: 집현전 한림학사, 1454년 8월 처형
박맹우: 박계우의 형, 귀양후 사사
안완경: 대사헌, 충청도관찰사
원구: 진무, 안평대군 및 김종서의 아들 김승규와 친하게 지내다 처형
윤처공: 군기시판사, 안평대군의 일파로서 1453년 10월 11일 처형
윤개동: 윤처공의 아들
윤효동: 윤처공의 아들
이승윤: 우찬성 이양의 아들
이계조: 이승윤의 아들
이소조: 이승윤의 아들
이의산
이우경: 이의산의 아들
이현로: 집현전학사, 안평대군의 대표책사, 1453년 10월 11일 처형
이건금: 이현로의 장남
이건옥: 이현로의 차남
이건철: 이현로의 3남
이경유: 경성도호부사, 구치관에 의해 살해됨
이물금: 이경유의 아들
이한산: 이경유의 서자, 교수형
이보인
이해: 이보인의 아들
이심: 이보인의 아들
이석정: 첨지중추부사, 활의 명인, 안평대군 일파로서 경상도 남해에서 처형
이징옥: 함길도절제사, 김종서의 최측근, 계유정난 이후 수양의 측근 박호문을 죽이고 거병하였다 종성판관 정종에 의해 피살
이성동: 이징옥의 아들(징옥의 형 징석은 죄를 면함)
정효전: 전 병조판서, 삼군도진무사, 계유정난 이후 피를 토하고 분사, 부관참시되고 3족이 멸족됨
정효강: 효전의 동생, 교수형
정원석: 정효전의 아들
정백지: 정효강의 아들, 교수형
조번: 군기시녹사, 안평대군의 일파로서 1453년 10월 10~11일 처형
조수량: 평안도관찰사, 조극관의 동생
조순생: 병조참의, 안평대군 일파로서 1454년 유배지 고성에서 사사
조완규: 김종서의 측근, 1454년 유배지 변군에서 처형
조완주: 조완규의 동생
조완경: 조완규의 사촌동생
황귀존
황계존: 황귀존의 동생
황양존: 황귀존의 동생
황경손: 황귀존의 아들
황양손: 황귀존의 아들
황의헌: 종부시판관, 지안악부사, 안평대군 일파로 간주되어 1454년 처형
황석동: 황의헌의 아들
 
 
한명회의 살생부에는 38명이 있었고 이후 1년간 사사,교살 등으로 처형된 사람은 107명
 
 
 
2.제1차 단종복위운동(사육신의 난)
 
 
사육신
 
성삼문: 승지(정3품), 수양대군에 의해 정난공신, 좌익공신이 됐으나 단종 복위를 기도, 1456년 6월 8일 군기시 앞에서 거열형
박팽년: 형조참판(종2품), 단종 복위 기도가 드러나 체포되어 잔혹한 고문 끝에 1456년 6월 7일 옥사(자결했다는 설도 있음)
하위지: 예조참판(종2품), 수양의 소시적 친구였으나 단종복위운동 가담, 1456년 6월 8일 군기시 앞에서 거열형
이개: 집현전학사, 직제학, 1456년 6월 8일 군기시 앞에서 거열형
유성원: 집현전학사, 1456년 6월 2일 단종복위운동이 드러나고 성삼문, 박팽년이 추포되자 패도로 목을 찔러 자결
유응부: 동지중추원사(종2품), 무인 출신으로 국문과정에서 성삼문의 우유부단함을 비난, 1456년 6월 8일 거열형
김문기: 공조판서(정2품), 1456년 6월 8일 거열형, 1977년 국사편찬위원회에 의해 사육신에 추가됨
 
 
핵심가담자
 
권자신: 단종의 외삼촌, 계유정난 이후 정난공신 책록되어 동부승지, 호조참판, 예조판서, 1456년 6월 8일 거열형
박쟁: 성승, 유응부와 함께 별운검으로서 수양대군을 베려했으나 실패, 거열형
박중림: 박팽년의 부친, 대사헌, 형조판서 역임, 수양대군으로부터 이조판서 제수받았으나 거부, 1456년 6월 8일 거열형
성승: 무인 출신의 성삼문의 부친, 별운검으로서 수양대군을 베려했으나 실패, 1456년 6월 8일 거열형
송석동: 의정부사인, 첨지중추원사(종2품), 1456년 6월 8일 거열형
윤영손: 병조정랑, 단종복위운동에서 신숙주 제거임무를 맡음, 1456년 6월 8일 거열형
이휘: 참의, 수양대군의 정난공신이었으나 한직으로 내쳐진후 단종복위운동 가담, 1456년 6월 8일 거열형
허조: 거사 발각되자 집에서 자결
 
 
기타 연루자
 
권서: 권자신의 장남
권저: 권자신의 차남
권구지: 권자신의 3남, 교형
박기년: 박중림의 아들
박대년: 박중림의 아들
박영년: 박중림의 아들
박인년: 박중림의 아들
박헌: 박팽년의 장남
박분: 박팽년의 차남
박순: 박팽년의 3남
박녹대: 박팽년의 서자
박개동: 박팽년의 서자
박흔산: 박팽년의 서자
박숭문: 박쟁의 아들
봉여해: 사옹원별좌
봉유: 봉여해의 아들
성삼고: 성삼문의 동생, 거사 직후 집에서 교형
성삼빙: 성삼문의 동생
성삼성: 성삼문의 동생
성맹첨: 성삼문의 장남, 거사 직후 집에서 교형
성맹년: 성삼문의 차남, 집에서 교형
성맹종: 성삼문의 3남
송창: 송석동의 장남
송녕: 송석동의 차남
송안: 송석동의 3남
송태산: 송석동의 아들
심상좌
심신
유귀련: 유성원의 장남, 교형
유송련: 유성원의 차남, 교형
이공회: 이개의 아들
이유기: 이개의 조카
이은산: 이유기의 아들
이의영: 이개의 조카
이지영: 이개의 조카
이사이: 이지영의 아들
이오
이철: 이오의 아들
이호
이성손: 이호의 아들
장귀남
장충: 장귀남의 아들
정관
조청로
조영서: 조청로의 아들
최면
최득지: 전 사헌부감찰
최치지: 최득지의 동생
최사우: 최득지의 아들
하연: 하위지의 장남
하반: 하위지의 차남
허연령: 허조의 아들
황선보
 
 
대략 70명 정도가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정말 많네요
 
 
 
3.제2차 단종복위운동(금성대군 역모사건)
 
 
금성대군 이유: 1457년 9월 단종복위음모가 드러나 10월 하순 사사
화의군 이영: 세종과 영빈강씨의 아들, 금성대군과 친하여 1460년 사사
한남군 이어: 세종의 서자, 혜빈양씨의 장남
영풍군 이선: 혜빈양씨의 차남, 박팽년의 사위
곽조: 해미현감
손서륜: 집현전학사, 단종 양위후 낙향하였다 금성대군 사건에 연루됨
송현수: 단종의 장인, 수양대군과 친하여 즉위 후에도 돈령부판사 역임, 사육신 거사에도 무사했으나 1457년 교수형
이보흠: 순흥부사, 금성대군과 함께 음모를 꾸미다 추포되어 교형
정종: 문종의 사위, 1461년 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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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쥬신왕자 작성시간 14.10.14 박계우 박맹우는 난계 박연선생의 아들들입니다 세조반정으로 사육신에 앞서 죽임을 당했고 박연은 삭탈관직 그리고 가계가 풍비박산 났지요
  • 작성자天地人 작성시간 14.10.18 거열형이 뭔고 했더니 두 대의 수레에 다리를 각각 매달아 몸을 두 쪽으로 찢어 죽이는 잔인한 형벌이군요.ㄷㄷㄷㄷㄷ
    어찌보면 참수형이나 교수형이 가장 빨리 죽는 방법이네요.
    세종대왕의 아들, 조카들도 거의 씨를 말렸군요. ㅠㅠㅠㅠ
  • 작성자효준 작성시간 15.04.17 많이도 죽였네요.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게 역사에서 세조의 평가는 그렇게 나쁘지 않습니다.
    단종을 죽여서 왕이 되었다는 판단이 개입되었고, 영화에서 "역적의 상" 이라는 둥 나와서
    세조를 죽일 왕으로 생각하지만, 세조의 치세는 상당히 좋았다고 역사에서 평가하고 있습니다.
    세조를 위한 변이라면 실제 왕실계보에서 왕의 적을 죽이는 경우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이상하게 세조와 광해군의 경우는 심하게 부각되어있지요.
    그리고 또 당시 아직 건국 초기라서 조선의 왕실이 아직 확실하게 확립되지 않았는데,
    나이 어리고 힘 없는 왕이 올라서 왕실의 중심이 흔들릴 위험이 있다 라는 말들이 나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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