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ㆍ한국역사바로알기

鄒牟王 주몽의 진실

작성자무명 저고리|작성시간17.01.24|조회수691 목록 댓글 4

일전에 모 방송사에서 "주몽"이라는 대하 사극을 방영한 일이 있었습니다.

 

주몽의 아버지를 해모수로 설정을 하고 어머니 유화부인은 금와왕의 첩실로 나오고

주몽은 금와왕의 아들인 대소에 의해 끊임 없이 살해의 위협을 받다가

천신 만고 끝에 동부여를 탈출하여 만주를 유랑하다가 大扶餘 즉 北扶餘의 여인

소서노를 만나서 고구리를 건국한다는 내용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高句麗의 建國 年度는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부여와 고구리와의 관계 역시 교집합적인 부분이 짙구요.


고구리의 왕들의 묘호 역시 어딘가 먼 훗날 고쳐져진 것 같은 정황이 짙습니다.


고구리의 6대왕의 묘호는 "太祖大王"이라고 하지요.


보통은 太祖라 함은 어느 왕조의 첫 임금의 묘호를 말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고구리의 6代 임금을 태조라고 하는 것은 고구리의 역대 임금들의 歷年이

짜집기 되엇음을 강력하개 의심되는 부분입니다.


또한 고구리 君王의 호칭이 王 또는 大王이라고 부르는 것은 합당한 일인지 의문입니다.


고구리의 종족 정체는 "盧"라고 표기 되는 흉노의 일파 입니다.


흉노는 유목 민족이며 유목민족의 최고 통치자는 절대로 王이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흉노의 최고 통치자는 "撐犁孤塗單于(탱리고도선우)”,

또는 이것을 줄여서 "大單于"라고 합니다.


고구리를 "伯夷(백이)"라고 하지요.


즉, 고구리는 흉노 오랑캐 중에서도 으뜸이며

정통 계보를 잇는 종족이라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구리 최고 통치자의 호칭이

왕 또는 대왕이라 하는 것은 심각한 역사 왜곡입니다.


王이란 "皇帝의 諸侯"라는 의미의 帝國的 職制의 지역 영주를 의미하는 호칭 입니다.


"撐犁孤塗單于”는 다음과 같은 의미 입니다.


撐犁”意为“天”,与突厥语系蒙古语“Tengri(天)”同源。

“孤塗”意为“子”,“单于”意为“广大”,本義有天子

「如天一般廣大的上天之子」的意思[


"탱리""하늘" 이라는 몽골어적 투루크어의 탱그리에서 말하는 하늘이라는 뜻이며

"고도"의 의미는 "유일한 아들" 이라는 의미이며 "선우""광대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탱리고도 선우를 중국 식으로 표현하면 "天子" 입니다.


흉노의 적통인 고구리의 최고 통치자가 王이나

大王으로 불렸다는 것은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吳나라 孫權은 曹操를 견제하기 위해 고구리

東川王에게 보낸 國書에서 동천왕을 單于라고 부르지요.


이것으로도 고구리 최고 통치자는 "單于"로 불리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夫餘의 왕조 계보가 고구려 초기 왕조로 덧씌워졌다는 강한 의심 듭니다.


尙書大典

“武王克商 海東諸夷‘夫餘’之屬 皆通道焉

 <상서대전>

주무왕아 상나라를 무짤렀을 때 바다 동쪽의 모든 오랑캐들은

부여에 속해 있으며 모든 길은 부여로 통한다.


상서대전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 입니다.


기원전 91년 경에 편찬 되엇다는

司馬遷의 史記 보다도 앞서 만들어진 역사서 입니다.


위 상서대전의 나라는 紀元前 1046년에 멸망햇다는 나라 입니다.


주무왕이 상나라를 멸망 시키던 그때 바다 건너

동쪽은 모두 夫餘에 속해 있었다는 말이지요.


즉, 부여라는 이름은 紀元前 11세기 이전에 이미 존재 하고 있었다는 기록이며

부여를 지금의 식민사관역사 잣대로 이해해서는 안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부여는 유목민족이며 수많은 부족들의 나라 입니다.


주몽은 소노부 출신이라고 잔해 집니다.


그렇다면 고구리의 五部는 夫餘에서 부터 존재했던 部族들이라는 것이겠지요.


주몽은 消奴部 출신아라고 합니다.


고구리의 왕권이 변동 되는때가 太祖大王 때라고 합니다.

물론 이 부분을 우리 국사는 消奴部(소노부)에서

桂婁部(계루부)로의 왕권이 변동 되엇다고 설명 합니다.


식민사관적으로는 고주몽을 高씨라고 하며

태조대왕 이후의 고구리 왕조는 멸망할 때 까지 고씨들 입니다.


태조대왕은 桂婁部 출신 입니다.


그렇다면 消奴部의 族長과 桂婁部의 族長이 같은 高氏라는 말이 되는 것이지요?


桂婁部와 消奴部 족장들의 성씨가 같다?는 것은 이해 할 수 없는 일이지요.


部族이란 같은 씨족의 구성체 아니던가요?


주몽은 解氏 입니다.


왜냐하면 주몽의 아들을 비롯한 고구리의 5대왕 까지 모두 解氏이며

주몽의 조상으로 추정되는 夫餘의 解慕漱(해모수)등은 모두 解氏이기 때문입니다.


해씨는 고구리 오부 가운데 消奴部 지배자들의 성씨이며

해씨는 黃帝軒轅(황제헌원)의 후손이며 消奴部의 위치는 .산서성 서남부로 보여 집니다.


高氏는 桂婁部 입니다.


桂婁部의 지배자들은 고씨이며 고씨는 炎帝神農(염제신농)의 후손이며 

계루부의 위치는 추모왕의 이름에서 찿아야 합니다.

 

주몽은 다물왕 또는 추모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鄒牟王(추모왕)의 鄒라는 글자가 ① 나라 이름  ② 周代의 나라 또는 고을 이름  

③ 지금의 山東省 鄒縣 동남쪽의 邾城이라는 뜻 이외에는 다른 뜻이 없는 글자 입니다.


 

南四湖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ChinaJiningZoucheng.png

                                                 鄒城(고대 요동성으로 추정되는 곳)의 위치(붉은 색)


주몽은 이름이 아니라 별칭 또는 별명이라는 說이 있습니다.

 

유목민족의 특성대로 활잘 쏘는 놈이 짱이였을 것이며

주몽이란 활 잘쏘는 짱을 뜻하는 말이며 일종의 별칭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우리가 광개토태왕이라 부르는 호태왕의 비문의 문으로 들어가 보지요.

 

好太王碑文은 고구리인이  스스로 쓴 유일무이의 역사 기록물 입니다.

 

[鄒牟王奉母]命 駕巡幸南下,路由夫餘奄利大水。

王臨津言曰 我是皇天之子,母河伯女郎,鄒牟王。

為我連葭浮龜! 應聲 即為連葭浮龜 然後造渡. 於沸流谷 忽本西 城山上,而建都焉.

 

[鄒牟王奉母]命 駕巡幸南下,路由夫餘奄利大水

추모왕께서 어머니의 명에 따라 수레를 타고 남쪽으로 

순행 가다가 부여의 엄리대수에 다다른다.

 

"가마를 타고 순행을 가다"라는 말에는

이 당시 주몽의 진짜 신분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기록의 싯점은 추모왕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어머니 유화 부인의 섭정을 받는 시기로 보여 집니다.

 

이 시대의 북방민족에게는 말(馬)이 필수였겠지요.

 

그러나 말을 이용한 "수레"라는 것은 왕이거나

왕에 준하는 신분이 아니라면 탈 수 없는 물건이며

巡幸(순행)이라는 용어는 왕의 행차에만 쓰이는 특별한 용어 입니다.

 

만약 사극 처럼 대소에게 살해 위협을 받고 어머니 유화부인이 금와왕의 첩실이었다면

주몽이 가마를 타고 순행을 나가는 것은 어림 없는 이야기 아닌가요?

 

다시 말하지만 주몽은 이미 왕이었거나 왕에 준한

막강한 지위에 있었던 인물이라고 보아야 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되는 대목입니다.

 

"부여의 엄리대수에 다다른다"의 대목에서도 부여는 유화부인

또는 주몽의 영역에 포함된 순행해야 하는 영토였다라는 것이며

이것은 떠돌이 주몽이 아니라 왕의 신분으로 자신의 영역을 순행하고 있는 것이며

이때 夫餘는 이미 주몽의 영토 였다 라는 분명한 기록인 것이지요.


영토를 가진 주몽이 대소에게 목숨을 위협 받는 다는 것은 어불성설 아닐까요?

 

王臨津言曰 我是皇天之子,母河伯女郎鄒牟王

 왕이 나루에 이르럿을때 나는

추모왕께서 나루에 이르러서 나는 천황의 아들이며

하백의 따님이 어머니이며 추몽왕이다.

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주몽이 누구인지 몰라 본 엄리대수의 토박이들이

주몽의 앞이라도 가로 막았던 것일까요?

 

소위 주몽은 이름이 알려져 있는 자신과 外家와

어머니의 이름을 동시에 팔고 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河伯은 黃河의 물의 신입니다.


즉, 추모왕의 외할아버지는 황하를 지키는 물의 신이라는 말이지요.


河伯은 黃河의 물줄기를 따라 北海에 다다랐다고 하지요.


그리고 河伯은 北海의 넓고 큼에 놀라워 하며

北海의 신에게 세상은 얼마나 넓은가? 라고 물었지요.


그러자 북행의 신이 여름 모기에게 겨울 어름이야기를 한들 이해 하겠는가?

라고 햇다지요.


이것이 소위 井中之蛙(정중지와)라는 고사성어 입니다.


이 고사성어로 알수 있는 것이 하백은 황하를 다스리는 물의 신이라는 것이며

북해는 지금의 발해를 지칭한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주몽이 건너고자 햇던 엄리대수는 황하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만약 엄리대수가 황하가 아니라면 다른 河川에서

하백과 유화부인의 이름을 팔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알수 잇는 것은 주몽은 여러모로 최고의 신분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추모왕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햇다고 배워 왔지만

추모왕=동명성제는 잘못된 기록입니다.

 

사마천의 <史記>에 보면 고구리는 위만 조선과 함께 동시대에 존재하던 국가로

기록되어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사기>는 기원전 109년에서 91년 사이에 씌여 졌으며,

위만 조선은 기원전 108년에 멸망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고구리는 적어도 기원전 108년에는 이미 존재 해 있었다는 말이며

<三國史記>의 기원전 37년 高句麗 建國은 처음 부터 잘못된 기록인 것입니다.

 

더불어 이 시대는 母系社會의 전통이 그대로 유지 되고 있을 시기 였으며

비류와 온조의 어머니인 소서노를 보듯이 유화부인은 금와왕의 첩실이 아닌

국가 또는 대부족을 다스리던 여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 됩니다.

 

호태왕비에는 추모왕의 어머니인 유화부인은 보이지만

추모왕의 아버지는 누구인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북방민족의 단석괴나 묵돌 선우 그리고 주몽등의 출생의 비밀은

모두 아버지가 누구인지 분명치 않다는 것입니다.


묵돌 선우와 단석괴 단군, 추모왕, 징기스칸의 인간적인 성정과정의 공통점은

모두 아버지가 분명치 않다는 것과 어릴적 성장 과정이 모질고 순탄치 않다는 것이지요.

 

후세에 이것을 이들의 어머니가 누구에게 겁탈을 당햇거나

정체 모를 무언가에 의한 예기치 못한 임신으로 태어난 것처럼

위장을 하여 기록 했지만 모계 사회였던 이 시대를 이해하지 못한

유교 사상에 젖어 있는 편견의 기록인 것으로 보입니다.

 

추모왕의 성씨는 무엇일까요.

 

추모왕의 성씨를 두고 高씨와 解씨라는 설로 양분되어 있습니다.

 

추모왕이 高氏라는 설에 찬성을 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간단 합니다.

 

<삼국사기>에 주몽의 성으로 고씨라고 못박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필자는 추모왕의 성씨는 解씨가 분명하다 라는 입장 입니다.

 

왜냐 하면 추모왕 이후 그의 아들인 유리왕 부터

高씨로 왕권이 바뀌는 태조 대왕 이전인 5대왕 까지는 모두 해씨 입니다.


즉 消奴部의 부족장들은 해씨일 것이라는 생각 입니다,

 

만약 추모왕이 고씨 였다면 그의 아들들 역시 高씨여야 하는 것 아닌가요?


解氏와 燕氏들은 중국 상고 시대 부터 이어져 오는 성씨 입니다,


주나라의 주무왕이吴国鲁国燕国、衛晋国、鄭魏国韩国의 제후들을 봉하면서

내려준 성씨들이지요。


해씨는 고구리초기(夫餘)의 주몽의 성씨와 백제 초기 왕들의 성씨 입니다.


이들의 성씨는 지금도 山西省 남부에 분포되어 살고 있지요.


고구리와  百濟初都說의 稷山은 바로 山西省 남부 입니다.


또한 解氏는 黃帝軒轅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高氏는 炎帝神農의 후손이라고  하지요.


중국의 천수강씨는 염제의 후손입니다.


중국의 고씨는 천수 강씨에서 파생된 성씨 입니다.


黃帝와 炎帝는 중국의 始祖들입니다.


炎帝와 黃帝는 淳維 계통의 유목민족 사람들입니다.


즉 고구리의 소노부와 게루부의 족장들은 중국의 시조라는 염제와 황제의 후손들이며

고구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알수 있는 대목 입니다. 


그렇다면 추모왕을 어찌 하여 高라는 글자를 앞에 두고 고주몽이라 햇을까요?


주몽이라는 이름 앞에 高자는 성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漢나라를 일으킨 유방을 漢高祖라고 하는 것은

유방을 하늘에서 내려 온 임금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입니다.

 

이후 유목민족 나라들인 북위나 당나라 이연등을 高祖라고 호칭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高라는 글자는 "높다"라는 이외에 形而上學的인 의미의

"하늘"이라는 의미가 깊은 글자 입니다.

 

즉 자연적 하늘을 뜻하는 天이라는 글자는 시간이나 기후등으로 쓰이지만

高는 形而上學的으로 쓰이는 하늘을 뜻하는 글자인 것입니다.

 

추모왕을 "東明聖帝"라고도 합니다.

 

東明이라는 이름을 두고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백제와 고구리는

서로 왕을 죽이고 죽는 처절한 전쟁을 치루는 것으로 보아

고구리와 백제는 국통의 정통성을 두고 골육상쟁을 벌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백제의 온조왕과 비류의 성씨는 解氏로 보입니다.

 

이와 같이 동명성제의 이름들이 많다는 것은

東明이란 우리 고대 국가들의 始祖 思想의 보통 명사로 보여 진다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동명과 탱그리, 解慕漱(해모수) 金, 朴 등은 모두 태양을 뜻하는 말을

漢子로 음역화 되어 지는 과정에서 전혀 다른 듯한 이름으로 변질 되엇을 뿐입니다.


즉 朴이란 "밝다"의 漢字 표현이며, 金이는 글자 역시 "밝다"라는 의미의 글자이며

東明과 탱그리(단군)  해모수 역시 모두 하늘 또는 태양을 의미 하는 글자 입니다.


우리 학교 다닐 때 국사 선생님이 말씀하시던 朴이란 나무 밑에서 점보던 사람을 뜻하며

祭政一致(제정일치)의 뜻을 포함하는 글자라고 설명을 하셧지만

너무 어렵게 해석 하셧음을 알아야 합니다.


한글 해레본이 나타나기 전에 한글을 문틍을 보고 만들엇느니

가림토 문자가 원형이라는니 하는 속설과 같은 이치입니다.


흉노의 최고 통치자를 撐犁孤塗單于(탱리고도선우)라고 합니다.


撐犁는 탱그리를 음차한 글자이며 孤塗란 유일한 아들이라는 의미이며

單于란 광대한 이라는 의미의 합성어라고 <사기>는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지요.


우리 고대의 제왕들의 표현은 중국과 전혀 다름을 알아야 합니다.


모두 태양과 관련이 있는 이름이지요.


이뿐 아니라 桓因과 桓雄 그리고 河伯 역시 최근의 연구 결과는

 모두 하늘을 의미 하는 글자라는 것으로 밝혀 졋습니다.


우리 고대사의 건국 신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알에서 나오지요?


이것을 난생민족과 천손민족의 결합의 과정에서 난생신화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卵(알)이라는 것은 태양과 가장 닮은 꼴이며 태양은 둥근 것이며

우리 고대의 조상들은 하늘을 둥글(桓)다고 표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양의 후손들입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만남과성장 | 작성시간 17.01.24 좋은 글 감사
  • 답댓글 작성자무명 저고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1.25 읽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 작성자북부여 | 작성시간 17.01.30 자료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가요.
  • 답댓글 작성자무명 저고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1.30 고맙습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