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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건국

작성자배건너|작성시간09.09.23|조회수448 목록 댓글 0

 

 

     최초에는 전촉(前蜀) 나라를 세웠으나…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나타난 태조 왕건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왕씨(王氏)는 성이며, 건(建)은 죽은 후의 휘호이다.
  왕씨는 한주송악군(漢州松嶽郡) 사람으로, 금성태수(金城太守)였던 아버지 융(隆)의 장자이며, 왕건의 어머니는 한씨(韓氏)이다.
  당(唐)나라 희종(僖宗) 이현(李儇) 건부(乾符.A.D.874∼879년) 4년, 신라 49대 헌강왕(憲康王.A.D.874∼884년) 3년인, A.D.877년 정유년(丁酉年) 음력 정월 14일에 태조가 태어났다.

  ★ 정인지(鄭麟趾)의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고려왕 태조(太祖)는 덕이 있고 효성이 있으며 준수하면서도 위엄이 있었다. 그리고 밝은 혜안을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신성대왕(神聖大王)이라 했다.
  성(姓)은 왕(王)씨이며 죽은 후의 휘호(諱號)를 건(建)이라 했다.
  왕건의 자(字)는 약천(若天)이며 송악군(松嶽郡) 사람이다. 세조(世祖)의 장자(長子)이다.
  태조 왕건은 깊은 태도와 숨겨진 말은 넓고 웅장했으며 세상을 다스릴만한 도량을 갖고 있었다.

  ★ 왕건의 아버지 융(隆)은 금성태수(金城太守)라 했다.
  이때의 금성(金城)은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난주(蘭州)이다.
 
  ◆사기사전(史記辭典) 288쪽.

 『金城. 古縣名 故置今甘肅蘭州 西北黃河南岸 因金城關 在今甘肅蘭州北 當黃河西北山要隘處 大宛列傳渾邪王率其民降漢 而金城 河西西竝南山至鹽澤空无玻奴 金屬鑄成的城墻 比喩城防堅固 地勢險要 留候世家 此所謂金城千里 天府指國也』




  ◆  본문에서 한주송악군(漢州松嶽郡) 사람이라 했으므로, 한주(漢州)의 지명을 찾아보았다.
  고조선 때부터 삼한(三韓)과 삼국 때까지 한반도에는 한주라는, 한자로 된 지명은 없었다.
  한주송악군은 지금의 중국 사천성 성도(成都)임이, 중국고금지명대사전 1103쪽에 기록되어 있다.

  『漢州松嶽郡. 唐改曰 德陽郡. 宋曰 漢州德陽郡. 元曰 漢州. 明淸皆屬. 四川省成都府…』

  당(唐)나라 때 두었던 곳으로, 당나라 때 이름을 고쳐 덕양군(德陽郡)이라 했다.
  송(宋)나라 때는 한주덕양군(漢州德陽郡)이라 했으며, 원(元)나라 때 와서 한주(漢州)라고 했다.
  명(明)나라, 청(淸)나라 때에는 모두 지금의 사천성(四川省) 성도부(成都府)였다….

  ◆  한주(漢州)를 당나라 때 덕양군(德陽郡)이라 했으므로, 중국고금지명대사전 1161쪽에 있는 德陽郡을 찾아보았다.
  덕양군은 후한 때 사천성(四川省) 자동현(梓潼縣) 북쪽에 두었다가, 그 후 지명을 옮겼다. 그곳은 사천성 수녕현(遂寧縣) 東南이다.

 앞에서 보는바와 같이 한주 송악군(漢州松嶽郡)은 중국대륙에 있는 사천성 성도(成都)임을 잘 나타내고 있다.

  ★ 제왕운기(帝王韻紀) 본조군왕세계연대(本朝君王世系年代)에 의하면, 고려 태조의 조상은 성골장군(聖骨將軍)이다. 고려 시조는 사찬(沙粲)이다. 사찬의 후손이 원덕대왕(元德大王)이다.
  당(唐)나라 숙종(肅宗.A.D.756년) 황제와 정화황후(貞和王后) 사이에서 태어난 경강대왕(景康大王)에 이어 세조(世祖)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이 고려 태조 왕건이다.
  당나라 숙종은 당(唐)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이형(李亨)이며 연호는 지덕(至德.756~758년)ㆍ건원(乾元.758~760년)ㆍ상원(上元.760~762년)이다.
  이형은 후당 시 토번(土蕃)의 성(城)을 함락시키고 칠군(七軍)을 거느리고 삼성(三城)을 장악한 사람이다.
  당 숙종황제의 아버지는 당 현종(顯宗)으로 안사의 난 와중에 현종(顯宗)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았다.




  ★ 위의 세계(世系)를 보자면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성(姓)은 사실 이씨(李氏)이다. 왜냐하면 당(唐)나라 혈통이기 때문이다. 당나라 왕의 성씨(姓氏)는 이씨(李氏)이다.
  왕건의 조상은 고구려지만 직계 혈통은 당나라이므로 왕건의 본래 성은 이씨(李氏)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실은 1976년 대만에서 발행한 국사연표(國史年表) 사종(四種)인 역대제왕연표(歷代帝王年表)에서 밝히고 있다. 936년 후진(後晉) 4년에 이씨(李氏)로 성을 바꾸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 고려도경(高麗圖經)에 있는 왕씨계보(王氏系譜)에 의하면, 왕씨(王氏)의 선조는 개마고려대족야(蓋馬高麗大族也)라고 했다.
  여기서 개마고려(蓋馬高麗)라 하는 것은, 개마대산(蓋馬大山)에 있던 고구려(高句麗)라는 뜻이다.
  후한서(後漢書) 동이전(東夷傳)에 의하면, 개마대산은 개마현(蓋馬縣)에 있다고 되어있다.
  개마현은 현도군(玄菟郡)에 속하고, 개마대산이 있던 곳은 평양성(平壤城) 서쪽이며, 평양성은 즉 왕험성(王險城)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중국지도를 보면 섬서성(陝西省) 서안에서 서남쪽 태백산(太白山)이 있는 부풍현(扶風縣) 일대에 개마대산이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 고려태조 왕건은 고구려(高句麗)와 당(唐)의 혈손(血孫)으로 고려(高麗)를 지금의 사천성 성도(成都)인 한주(漢州)였던 송악군(松嶽郡)에서 건국하게 되었다.
  최초에는 전촉(前蜀) 나라를 세웠으나, 후당(後唐)에게 망한 후 궁예(弓裔)의 부하로 들어가 활약하다가, 935년 고려왕으로 등극했다.
  태조 왕건이 전촉(前蜀)을 건국한 연대는 A.D.918년이다. 그러므로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서는 태조왕건의 건국연대를 전촉(前蜀)을 세운 A.D.918년으로 정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태조왕건의 계보와 건국은 이상과 같이 이루어졌다. 전술한 바와 같이 전촉(前蜀) 나라 때 사천성 성도에 도읍했다가, 후당(後唐)에 의해 망한 후 궁예(弓裔)의 장수로 활약하다가, 기원후 935년 고려는 송악인 개성(開城)에서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으로 도읍지를 정한 후 삼한(三韓)의 대 통일을 이루게 되었다.

  한치윤(韓致奫)의 해동역사(海東繹史) 삼한편(三韓篇)에는, 삼한 땅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삼한 땅은 중원대륙의 대부분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지역이었다.
  그러기에 고려는 옛 서경(西京)인 서안(西安)에서 천자국(天子國)으로서 위엄을 떨치게 되었다.
  고로 한국의 국제 칭호는 고려인 코리아로 현재까지 불리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고려의 왕릉이 한반도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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