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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번역]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리뷰

작성자theobk|작성시간11.04.09|조회수7,094 목록 댓글 21






이렇게 단순한 영화가 이토록 큰 감동을 주는 것은 드문 일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리뷰를 한 단락으로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영화에 대해서 몇 시간 동안 토론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그리고 봄”(2003)은 불교적인 영화지만 세계 보편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호수 위에 떠다니는 작은 암자와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작은 공간 안에는 삶, 믿음, 성장, 사랑, 질투, 증오, 잔혹함, 신비, 구원…그리고 자연이 있다. 또한 개, 닭, 고양이, 새, 뱀, 거북이, 물고기, 개구리도 있다.


방이 하나뿐인 이 암자는 은자의 집 혹은 수도사의 수도원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가 시작되고 암자에는 한 승려와(오영수) 그리고 수도승이 되려는 소년이 함께 살고 있다. 스님은 매일 아침 먼저 일어나서 소년을 깨운 후 부처님 상 앞에서 기도를 올린다. 그가 두드리는 목탁 소리가 숲 속으로 편안한 공명을 울린다. 이러한 일상이 매일 반복된다.


영화의 내용에 대해서 더 설명하기 전에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짚고 넘어가겠다. 암자가 떠 있는 호수는 계곡물로 여기저기 깎인 높은 바위와 숲의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다. 암자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두 개의 거대한 나무문을 지나야 하는데, 각 계절이 시작될 때 이 문이 열리고 그 안의 암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계절을 소개한다. 이 문들은 사실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지는 못하는데, 문이 물 위에 떠있어서 단순히 돌아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문을 진짜 문처럼 취급하고 존중한다.


집 내부도 마찬가지다. 스님과 소년은 방 안을 가르는 문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서 잠을 잔다. 그들의 발쪽에는 각각 문이 하나씩 있다. 이 취침 구역은 방 안에서 따로 나뉘어 있지 않으며 가려지는 곳 없이 트여있다. 그러나 스님이 소년을 깨울 때, 그는 소리를 지르거나 문을 돌아가지 않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간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이 암자에서 많은 사람들이 잠을 자게 되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이 문이 실제로 공간을 가르는 문인 것처럼 행동한다. …물론 예외가 있긴 하다.


실질적으로 들어오거나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는 이런 문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내 생각에 이 문들은 상징적인 것이라기보다 가르침을 위한 것이다. 암자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문을 보고 이전 세대의 사람들이 걸었던 길을 이해하고 그들이 남긴 것을 존중하는 법, 즉 관습과 전통을 따르는 법을 배운다.


아마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문화에 대한 개념들이 영화의 이런 설정을 설득력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 같다. 서양인들은 고대 동양 문화의 지혜에 대한 낭만적이고 이상화된 관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산 속 동굴에서 수십 년 간 명상을 하며 격리되어 살아가는 동양인 수도승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만약 미국인 혹은 독일인 같은 서양 사람이 호수에 둥둥 떠 있는 집에서 작은 소년과 격리된 채 살아가며 그 소년이 자신이 죽은 후에 대를 이어가길 바란다면, 과연 그 광경이 어떻게 보이겠는가? 썩 건전하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의 감독인 김기덕이 보기에도 서양인 스님의 격리 생활은 괴상해 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도중에는 현실성에 대한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관객은 영화의 전제, 설정들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의 초월적이고 시간을 뛰어넘는 스토리에 마음이 편해지고 감동을 받는다. 추운 겨울 날 호수 위에 떠있는 암자에서 사는 것은 즐거운 일은 아니다. 영화에서 그런 생활은 사계의 순환 중 거쳐야 할 하나의 여정이다. 영화의 자연은 너무 아름답고 청명해 유혹적이고 황홀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이 호수가 존재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암자에서 기슭으로 가기 위해서는 낡았지만 아름다운 색으로 칠해진 조각배를 이용해야 한다. 소년은 종종 배를 타고 산으로 가서 스님에게서 배운 약초를 캐오곤 한다. 어느 날 그는 산 속의 한 못가에서 놀이를 한다. 아이다운 짓궂음이 소년을 사로잡고, 그는 물고기를 잡아서 줄로 묶어 그 끝에 돌을 달아놓는다. 그리고 물고기가 돌멩이의 무게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즐겁게 깔깔거린다. 그는 다시 개구리, 뱀에게도 똑같은 장난을 친다. 소년 모르게 뒤를 쫒아온 스님은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본다.


영화에서 스님이 가끔씩 이렇게 배도 없이 기슭으로 넘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관객은 그가 어떻게 호수를 건넜는지 알 수 없다. 조각배는 돛이나 밧줄 없이 스스로 고목 근처에 정박해 있다가 주인이 명하면 그에게 다가온다. 그런데 영화 초반에는 이런 장면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리고 영화는 스님의 이런 설명할 수 없는 실체화에 대해서 딱히 강조하거나 주목하지 않는다. 어떤 관객들은 이런 장면들을 그냥 지나칠지도 모른다. 영화의 신비로움은 관객으로 하여금 내가 정말 그런 장면을 눈으로 본 것이 맞나 하고 의심하게 하는 그런 종류의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소년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의 등에 돌이 매여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스님은 소년에게 기슭으로 돌아가서 물고기, 개구리, 뱀을 풀어주라고 명령한다. “만약 그 중 하나라도 죽어 있다면 너는 평생 그 돌을 가슴에 달고 살아야 할 것이다.”


봄이 끝난다. 치료를 위해 한 소녀가 암자로 찾아오고 소년이(이제는 청년이 되었다)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만 언급하고 더 이상 영화의 내용을 누설하지 않겠다. 스님은 사랑 행위가 소녀를 치유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소년에게 분노에 찬 목소리로 경고한다. “욕망은 집착을 낳는다. 그리고 집착은 결국 살인자를 만든다.”


암자에는 언제나 동물이 드나들며 스님의 동무가 되어준다. (강아지는 초반부에만 잠깐 등장한다.) 스님은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고 고양이를 쓰다듬어준다. 왜냐하면 쓰다듬어주는 것이 고양이가 요구하는 사항이며 그걸 안 해주면 소년과 동물들이 그러하듯 아무 관련 없이 그냥 집만 공유하는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호수와 뗏목, 암자, 동물, 숲은 모두 스님과 소년을 위해 존재하며 그들이 떠나간 후에도 그곳에 존재할 것이다. 스님은 자신의 임무를 알고 있고 그것을 받아들인다.


영화의 감독은 김기덕이며 한국식으로 하면 기덕 김이고 1960년에 태어났다. 관객은 영화의 후반부에 감독이 암자로 돌아온 스님을 직접 연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필자는 2000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그의 영화 “섬”을 보았는데, 이 영화는 내가 접했던 모든 영화들 중 가장 본능적으로 잔혹한 영화였다. 폭파 장면이나 총기 격투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에서 주인공이 낚시 고리로 하는 짓은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잔혹하다.


감독이 이 전혀 다른 두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은 기묘한 일이다. 나는 한국 감독들이 비록 클로즈업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롱 숏으로 행동을 묘사하기는 하지만 극단적인 폭력이나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경향이 있음을 주목했다. “봄, 여름…”은 노출, 성 묘사를 영화의 중심에 놓지 않고 전체적인 문맥 안에서 다루고 있다.


감독은 부유하는 공간과 그 공간의 고립이라는 요소에 매혹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섬”의 낚시꾼들은 호수 위를 떠다니는 작은 오두막에서 낚시를 한다. 그들에게 육지와의 유일한 끈은 낮에는 음식을 팔고 밤에는 몸을 파는 말없는 여인이다. 또 다른 작품 “활”은 한 노인이 유아 시절부터 키워온 소녀와 생활한다는 점에서 “봄, 여름…”과 시작 지점을 공유한다. 노인은 (마치 스님이 소년에게 기대하는 것처럼) 그러한 생활이 영원히 계속될 거라고 생각한다. 두 영화 모두 방문자가 찾아와 젊은 아이들에게 세속적 삶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김기덕이 기피하는 요소가 하나 있다. 내가 본 그의 영화들은(2004년 작 “빈 집 Three-Iron”을 포함하여 - 골프 영화는 아니다) 관객에게 명백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그의 영화는 대사가 적거나 아예 없고, 구구절절한 설명도 없으며 주제에 대한 긴 연설도 없다. 그는 이미 무너져버린 지 오래 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본다. 갈등이 생기면 주인공들은 스스로 무덤을 파거나 자신의 내면으로 갈등을 불러들인다. 따라서 관객은 영화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만약 “봄, 여름…”같은 영화에서 라이벌 스님이나 관광객, 혹은 땅을 개발하려는 사람이 등장했다면 영화가 얼마나 형편없어졌을지 생각해 보라. 영화의 주인공은 ‘삶’이고 그 적수는 ‘시간’ 그리고 ‘변화’이다. 그런데 삶이라는 것이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다. 살아 있으려면 두 적수, 삶과 변화 사이에서 타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로저 이버트



- DP FARGO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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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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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황야의각설이 | 작성시간 11.04.10 김기덕의 모든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소통과 이해죠...그걸 이해한다면 영화속 주인공들의 비상식적인 행동들이 더 분명하게 다가옴...봄여름가을겨울은 마치 조도로프스키의 엘토포를 연상시키는데 진짜 마지막 20분이 끝내줌..
  • 작성자마레지구 | 작성시간 11.04.10 고등학생때 문학쌤이 보여줬었는데 정말 인상깊게 봤어요..영화가 참 충격적이라고 해야하나..대단했음.
  • 작성자맵시녀 | 작성시간 11.04.11 영화가 훌륭하니 리뷰도 훌륭하네요
  • 작성자사빈 | 작성시간 11.04.12 주산지.......너무 멋진 곳이었어요...
  • 작성자금연중입니다 | 작성시간 16.05.03 그런데 확실한 해석을하면 정말 소름돋는영화죠.....업보에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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