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댓글

뒤로

푸드파이터의 나라 조선 ..

작성자숲속의왕자| 작성시간17.10.09| 조회수2374| 댓글 19

댓글 리스트

  • 작성자 오래된 불량식품 작성시간17.10.09 그래도 늘 의식주로 예가 먼저 였죠ㆍ
    잘먹는게 잘 사는게 되는게 우선이 되는게 젤 원초적인것 아닐까요ㆍ
    잔치도 푸짐히 제사도 푸짐히 ᆢ
    먹고 남도록 하는게 예의 였는건 그래도 없던시절에
    함께 나눠 먹고사는 우리 모습이였죠ㆍ
    폭식은 아닌듯 한데요ᆢ
    요즘엔 먹는게 넘쳐나니 양보단 질이지만서도 ᆢ
  • 작성자 불꽃투혼 작성시간17.10.10 사진으로 기록이 남아있는걸 보아서는 개화기나 구한말이라고 표현해야 되나요? 대충 그시기??...쩝..이시기가 바로 일본은 메이지 유신시절이고 경제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하는시절이였고.....
    우리는 무능한 지도자에 의해 나라가 절단나던 말던 하던 그시절쯤 될듯한데요...이기록 외에도 당시 러시아의 외교관이 기록한 기록도 비슷한 기록이 있습니다...
    서민의 삶?? 국민들이 왜 굶주리나를 생각해본 권력자가 있을까요??? 지금현재도 마찬가지입니다....000당 일부 국회의원들이 하는말...현정부의 무리한 복지정책으로
    내년부터는 국가세수가 파탄 날것이다....그럼 전 정부에서는 복지지출을 줄여서 어디다 사용했나요???
  • 작성자 불꽃투혼 작성시간17.10.10 복지.....이제 권력자가 아닌 국민의 복지와 소득에 한번 투자해 보시죠....기득권도 살고 서민들도 살아날거라 생각합니다
  • 작성자 좋은사랑 작성시간17.10.10 단순 폭식(먹을 것이 있을 때만 많이 먹을 뿐 식사 총량은 많지 않음)이 아니라 대식문화(식사 총량이 많음)였던 게 맞아요.

    만약 먹을 게 없어 먹을 게 보이면 그냥 폭식하는 문화였을 뿐이라면, 많이 먹는 풍습은 '가난한 계층' 에서만 나타나야 하고 부유한 계층에서는 나타나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음식문화를 보면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모두가 많이 먹는 것으로 나타나죠. 그렇다면 이건 꼭 먹을 게 없어서만 폭식하는 게 아니라 그냥 대식을 하는 문화적 현상이었다고 봐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기록들을 봐도 부유층이나 관료계층 등에서도 대식이 나타난다고 말하고 있지요.
  • 답댓글 작성자 좋은사랑 작성시간17.10.10 나이 좀 있으신 분은 아시겠지만, 50-60년대 밥그릇과 70-80년대 밥그릇, 90년대 밥그릇과 현재의 밥그릇 용량이 모두 다릅니다. 현재로 올수록 밥그릇 용량이 줄어들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나이 많으신 노인 분들 중에는 아직도 젊은이들보다 훨씬 식사량이 많은 경우들도 많다는 겁니다.

    어제 TV 를 보는데 경북 어느 농촌(안동이던가....??) 종가집 종손 할아버지가 혼자 집을 지키면서 '나이가 들어 식욕이 많이 줄었어' 라면서 식사를 하시는데 제 밥그릇의 2배는 넘겠다 싶은 밥그릇에 고봉까지는 아니게 밥 떠서 식사 드시더군요. -_-;;;;

    저도 간식 안 먹는 스타일인데, 반찬을 딱히 많이 먹거나 고기를 즐겨 먹지도 않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좋은사랑 작성시간17.10.10 저 종가집 노인분이 방송에 나왔던 그 밥그릇으로 세 끼 모두 식사를 하신다면, 하루 식사량이 족히 저의 2배는 되겠다 싶더군요. 돌이켜 보면, 돌아가신 저의 할머니도 식사량이 그 정도 되셨고, 제가 일반 밥그릇으로 밥을 먹으면 그만큼 먹고 어떻게 힘 쓰냐며 제가 평소 먹는 양의 2배 정도는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이걸 대식 문화가 아니었다고 말할 순 없겠죠. 어떤 이유로 대식 문화가 생겼든간에, 우리나라에서는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대식 문화가 퍼져 있었다고 보는 게 옳다고 봅니다.
  • 답댓글 작성자 좋은사랑 작성시간17.10.10 p.s.
    참고로.... 조선의 재분배정책은 동시대의 중국이나 일본, 아니 세계 전체를 놓고 봐도 꽤 우수한 편이었습니다. 중앙정부에서 어떤 식으로든 식량의 재분배를 매우 중시했으니까요. 즉, 평균적으로 생각할 때 조선인이 세계의 다른 나라 사람보다 더 굶주렸을 가능성은 적다는 거죠. 오히려 일본이나 중국에서 식량부족 사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작 식량이 덜 부족했을 조선에서 먹을 게 부족해 폭식문화가 유독 발달했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 작성자 창으로보는정의 작성시간17.10.10 일본애들하고 중국애들은 먹을게 풍족했네요 우리보다 부자였군요.. 역시... 병신같은분석임.
  • 답댓글 작성자 좋은사랑 작성시간17.10.10 사실 임진왜란 같은 전쟁시기나 경신대기근 같은 기근 시기, 정부의 통제력이 무너져 일부 관리들이 탐학하게 수탈하던 조선 말기 등의 경우는 일반 백성에게 식량 자체가 절대적으로 모자라는 경우도 있기는 했지만 그런 경우 이외에는 전반적으로 백성들이 ('있을 때 먹어야 한다' 라며) 먹을 것만 보이면 눈이 뒤집혀 폭식을 해 댈 정도로 식량사정이 어려운 건 아니었지요.

    한 예로 조선 후기에 영조 대에 (영조 본인도 술을 안 마시던 스탈이라) 곡식 아끼자는 취지로 금주령을 내렸다가 정조 때에 이걸 슬그머니 풀어 주는데, 사람들이 술과 안주를 너무 먹어대어 문제라는 지적이 당시 기록에 자주 나옵니다.
  • 답댓글 작성자 좋은사랑 작성시간17.10.10 특히 사람들이 술을 마셔도 소주를 선호하다 보니 문제가 되었는데, 발효주인 청주나 탁주(막걸리류)와 달리 소주는 증류주라서 발효주를 소줏고리에 넣고 끓여서 얻는 것이다 보니 똑같의 양의 술을 만들 때 소주에 제조시 곡식 양이 훨씬 많이 듭니다. 게다가 당시 분들이 안주빨들을 엄청 세우셔서 생선과 건어물류가 엄청나게 소비되었을 뿐 아니라 닭이나 돼지 등 고기안주까지 엄청나게 소비되었다고 하는데 이게 '부유한 일부 계층' 의 이야기가 아니라 주막에서 평민 계층이 그렇게 소비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지요.

    요컨대 당시에 일상적으로 식량이 모자라 굶주리는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거지요.
  • 답댓글 작성자 불꽃투혼 작성시간17.10.10 좋은사랑 그래서 요점이 조선인들은 그냥 많이 먹었다 인가요?? 저도 역사좀 공부했지만 조선말부터 근대까지 조선에 식량사정이 서민들에게 여유로왔다는 예기는 첨들어봅니다.
    조선 경제의 붕괴는 국가가 경작 토지의 60프로를 조정 또는 관료가 차지하면서 일반 농민들의 대대로 소작농외에는 잡역일 박에 할수 없는 구조가 지속되면서 세대를 거쳐 오랜시간 삶이 각박해지고 여유가 없어진거 사실 입니다.
    근대화에 들어서 이러한 국가소유의 경작토지를 일본인들에게 팔아처먹은 관료들로 인하여 더욱 악화된것도 있고요 조선인들의 과식문화를 일부 부유층도 그러했다해서 그냥 단순히 그냥 많이 먹는 민족이라고 말하는것도 이해가
    잘안갑니다.
  • 답댓글 작성자 좋은사랑 작성시간17.10.11 불꽃투혼 조선의 대식 풍습이 과연 식량 부족에 기인한 것('있을 때 먹어치우자')인지 비교해 보자는 겁니다.

    조선의 대식 풍습이 식량의 일상적 부족에 따른 굶주림에 의한 것이라면,
    - 사회계층적으로 식량이 부족하지 않은 계층에게는 대식 풍습이 없어야 할 것이다.
    - 시기적으로 풍년일 때에는 대식 풍습이 나타나지 않고 흉년일 때 주로 대식 풍습이 나타나야 할 것이다
    - 국제적으로 조선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유독 1인당 확보 가능한 식량의 양이 적고, 다른 나라들은 조선보다 1인당 확보 가능한 식량의 양이 많아야 할 것이다.

    라고 비교할 수 있는데, 실제로 따져 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죠.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대식풍습은 일반적이
  • 답댓글 작성자 좋은사랑 작성시간17.10.11 불꽃투혼 었고, 풍년이나 흉년 또는 보릿고개나 추수철을 가리지 않고 대식 풍습은 항상 나타났습니다. 또한 조선의 1인당 식량이 다른 나라보다 부족하지도 않았죠. 조선인들 상당수가 병작농으로 힘들게 살았다고는 하지만, 중요한 건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식량 사정이 더 나빴는지입니다. 그렇지 않아 조선인이 세계적으로 유독 굶주린 민족이 아니었다면 대식 풍습이 식량 부족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복지수준과 비교하면야 조선의 재분배정책이라는 게 보잘 것 없겠습니다만, 빈민구제라든가 식량가격 안정화에 대해 조선이 기울인 관심이 동시대 다른 나라보다 나았다는 걸 부정하긴 힘듭니다.
  • 답댓글 작성자 좋은사랑 작성시간17.10.11 불꽃투혼 그리고 하나의 문화적 현상은 한 번 발생하면 그것이 존속해야 할 합리적 이유가 없어도 장기적으로 유지-존속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문화가 장기적으로 존속하는 데에 꼭 합리적 이유를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문화 현상을 잘못 이해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qwerty 키보드가 타자기 시대를 넘어 컴퓨터 시대에도 보편화된 게 다른 자판 배열보다 더 효율적이어서가 아니고, 오히려 가장 비효율적인 자판 배열이어서 꼭 유지되어야 할 합리적 이유가 없음에도 유지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조선시대의 대식 풍습에 어떤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린 그걸 모르죠.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게 뭐 어떻습니까?
  • 작성자 불꽃투혼 작성시간17.10.10 조선경제의 붕괴로 구글이나 크롬 검색 해보시면 왜 조선의 민중이 걸신들린 거지처럼 살아야 했나에 대하여 자료가 많이 있습니다.
    유료서적 자료도 있으니 구별하여 검색하세요
  • 답댓글 작성자 좋은사랑 작성시간17.10.11 조선의 민중들 삶이 힘들었다고 할 때 그 비교 대상이 무엇이냐로 따져야죠. 동시대 다른 나라들보다 더 힘들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지금 이 논의는 '조선의 대식 풍습이 조선인들의 일상적 굶주림에서 비롯되었다' 라는 주장이 옳은지에 대한 논의입니다. 불꽃님이 '맞다. 조선인들은 일상적으로 굶주렸다' 라고 말씀하신다면, 당대에 조선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유독 더 굶주리는 나라여서 다른 나라에는 없는 대식 풍습이 조선에만 나타났다고 보아야 할 텐데 과연 그리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조선보다 더 굶주리는 나라들도 있는데 그 나라에서는 딱히 대식 풍습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식량부족이 대식 풍습의 원인이라
  • 답댓글 작성자 좋은사랑 작성시간17.10.11 말하긴 쉽지 않을 겁니다.
  • 답댓글 작성자 불꽃투혼 작성시간17.10.11 좋은사랑 팩트는 "조선인은 많이 먹었다" 이고 사랑님 말씀은 월래 조선인은 많이 먹었다 ..그리고 저의 예기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도 있었다 입니다..문제를 보는 관점이 서로 다른상황이라 더이상 이야기 해봐야 끝나지 않을거 같고요 저는 계속적으로 사회 구조적 문제도 조선인의 식습관을
    만들었다고 생각할겁니다. 사랑님은 사랑님 주장처럼 생각 하시길, 저 개인적으로는 조선인은 많이도 먹었지만 사회구조적으로도 영향이 있었다 두가지 측면을 다 보아야 할듯 합니다, 그리고 조선보다 더굶주린 나라?? 구체적으로 어느나라이고 몇개국인지 궁금 하네요 국가명도 올려주시죠
    조선 근대화당시 소득이나 상황이 어떠했나 비교좀 한번 해보고 싶네요
  • 작성자 적혈구 작성시간17.10.10 황교익의 신뢰도가 없어서 내용의 신뢰도도 현저히 떨어지는 느낌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
카카오 이모티콘
사용할 수 있는 카페앱에서
댓글을 작성하시겠습니까?
이동시 작성중인 내용은 유지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