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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왕,황후행세를 하고있는 일본배우들!

작성자석류조아| 작성시간06.07.30| 조회수8117| 댓글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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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 [오즈의맙소사] 작성시간06.07.30 님 제 말이 곧 그말입니다. 님이 말씀하신 '네티즌과 함께 풀어보는...'등은 이미 얼마전에 읽었던 책이고요. 다만 저는 백제부흥 운동 실패후 백제가 완전히 멸망한 시기를 기준으로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일본은 백제가 완벽히 멸망한 후 삼한백제를 자처하거나 백제를 계승한 것도 아닌...'일본'이라는 독자적인 길을 선택했습니다. 일본이 독자적인 길을 선택하기 전에는 삼한백제.한성백제등의 관계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오즈의맙소사] 작성시간06.07.28 일본 왕가가 또한 백제와 관련이 있고 또한 일본서기는 어차피 일본 지배층 조상이 백제와 관련있기 때문에 (삼한)백제의 영향이나 시각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백제의 서적도 참고했고, 저자중 백제인도 한명 정도 참여했기에 분명 백제의 영향이라고 저는 분명 말했습니다, 하지만 백제부흥 운동 실패후, 일본자체를 곧 백제라고 볼수는 없습니다. 일본의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해 일본서기가 고대역사적 시각으로는 삼한백제를 말할지 모르나...여러모로 당시 일본의 다각적인 사회변화를 보면 삼한백제나 백제계승 의식이 아닌 '일본'이라는 독자적인 나라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오즈의맙소사] 작성시간06.07.28 한.일 관계를 연구하는 호사카 교수도 "한국과 일본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백제뿐만 아니라 가야.신라.고구려등 어느하나 뗄레야 뗄 수 없다. 또한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백제부흥 운동이 실패로 끝난 이후를 기준으로 왜는 한반도와의 관계를 끊고, 내실을 기하는 동시에 국내의 힘을 응집하기 위해 '일본'이라는 독자적이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다.또한 다각도로 변화를 모색했다. 바로 이때가 백제를 부정하고 대부분의 문화와 선진기술을 독자적인 일본만의 것으로 확립하는 첫 시작이였다."
  • 답댓글 작성자 [오즈의맙소사] 작성시간06.07.28 "또한 이때부터 일본은 고조선 이전에 일본열도에 9명의 천황이 존재했었다느니 단군을 아마테라스의 동생이라느니 왜곡하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참고로 열도로 건너간 (삼한)백제나 한반도의 (한성)백제나 결국은 같은 부여계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오즈의맙소사] 작성시간06.07.28 제가 2ch에 "중국이 이젠 한국의 부여사마저 중국사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라는 글을 올렸더니 일본인들이 뭐라고 하는줄 아십니까? "한국의 고대사는 중국사다. 기자조선 위만조선 모두 중국인이다!!.", "한국은 부여사를 중국에 돌려줘라!" "중국의 주장이 맞다. 남의 것을 자기것이라 우기는 더러운 조센징들"이라고 하더군요. 어이 없죠. 백제가 부여에서 갈라져 나와 한반도에 정착했고 백제인들은 분명 부여계승의식이 있었으며, 백제인중에 일본에도 상당수 건너갔음에도 불구하고...부여사를 중국에 주라니...-_-
  • 답댓글 작성자 [오즈의맙소사] 작성시간06.07.29 일본은 백제를 계승한 나라가 아닙니다. 혈통만으로 보면 한국과 일본은 동족, 우리와 같은 고조선의 후예(일본은 유전전적으로 보면 일본본토인보다 한반도 도래인이 절대 다수라고 합니다.), 또 하나의 백제라고 볼 수도 있지만 민족을 혈통만으로 간단히 단정지을 수 없기에 저들은 '일본국'이 세워진 이후로 우리와는 완전 남남입니다. 지들 본뿌리도 제대로 자각 못하고 은혜도 원수로 값는 것들이 무슨 백제계승??
  • 답댓글 작성자 __3__ 작성시간06.07.29 네 그렇죠. 2ch나 네이버제팬은 왠만하면 가지 마세요..ㅎㅎ 정신건강에 해롭습니다. 걔들은 어떻게 하면 한국인들을 화나게 할까만 생각하죠. 님말대로 670년에 일본이라는 국호를 만들고 삼한백제는 역사속으로 사라집니다. 물론 일본 독자적인 길을 가죠. 다만 일본서기만이 남아서 백제의 찬란했던 역사를 우리가 엿볼수 있는거죠. 님말대로 일본이 백제다 라는 저의 명제는 좀 어폐가 있네요. 사실 백제를 계승한건 한반도에 있던 우리 조상님들 그리고 우리들이죠. 정확히 말하면 일본은 자기들 자신을 지워버린겁니다. 왜 그렇게 까지 자신의 본류를 지워야 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__3__ 작성시간06.07.29 아마도 패배한 자신들의 역사가 부끄러워서 아닐까요? 일본서기에 보면 나중에 발해왕 무의 사신이 일본에 옵니다. 사신은 고려왕무 라는 발해의 칙서를 가지도 오지요. 그리고 방패를 가져와서 그걸 활로 쏘아서 뚫을것을 제안합니다. 일본측에서 여러명이 나섰지만 그 방패를 관통하지는 못했는데 마지막에 어떤이가 나타나서 활로 방패를 관통합니다. 일본왕은 기쁨을 애써 감추고 다음날 그자를 불러서 상을 내립니다. 위의 일화에서 보듯이 발해와 일본은 어떻게 사신교류를 하는지 아주 자연스럽게 알고 있습니다. 이런것은 몇백년간의 긴 교류가 있어야 생기는 거죠. 근데 이 일화를 보면서 슬픈맘도 듭니다. 저렇게 교류하였던
  • 답댓글 작성자 __3__ 작성시간06.07.29 고구려와 백제가 이제는 쓰는 말도 완전히 달라졌고....이상이나 추구하는바도 또 인종적으로도 많이 달라진 전혀 다른나라가 되었으니까요.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까요. 미래에는 우리 한민족이 중심이 돼서 이모든 역사의 매듭을 풀었으면 합니다. 대고려국을 우리가 만들수 있는겁니다. 역사는 그래서 중요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 [오즈의맙소사] 작성시간06.07.29 "미래에는 우리 한민족이 중심이 돼서 이모든 역사의 매듭을 풀었으면 합니다. 대고려국을 우리가 만들수 있는겁니다."<---멋진 말씀이네요. ^^
  • 작성자 천국으로 작성시간06.07.27 이해가 안가는게 곤룡포는 임금(대한제국시절엔 황제)만 입던게 아니던가요?? 순종이후에 조선에서 황제가 있었던가요?? 들어보니깐 영친왕과 일본여자(이름을 모름)의 사랑이야기라던데 영친왕이 조선의 황제였던가요??
  • 답댓글 작성자 arandel 작성시간06.07.28 세자나 세손도 곤룡포를 입긴합니다, 근데 용의 발톱숫자가 달랐다고 합니다.
  • 작성자 진정한 강함 작성시간06.07.27 일본이 백제와 한국의 문물의 영향을 받아 불교 등이 전파되고 성행한 것은 역사 스폐셜을 보신 분이시라면 알게 됩니다.일본이 백제를 계승한 나라라는 것이 아니라 일본황가가 백제계와 가까운 이들이었으며 일본이 한때 백제의 영향하에 있는 나라였을 가능성이 크며 영향을 받은 것 역시 크다는 말이지요.
  • 작성자 엄훠나 ? 작성시간06.08.07 아주그냥 자기들끼리 죽여놓고 자기들끼리 연극하네^ ^? 누구염장지르나-_-. . . 엎어버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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