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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은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없다.

작성자라스트미션|작성시간21.04.14|조회수1,379 목록 댓글 2

​사람들은 통상 항일운동과 독립운동을 동일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항일운동이라고 하여 모두 독립운동은 아닌 것이다.

항일운동(抗日運動)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한 저항 운동이며, 독립운동은 국가의 독립권(獨立權)을 주장(主張)ㆍ쟁취(爭取)하려는 정치적 운동이다.

​항일운동은 일본군이나 일본에게 타격을 가하는 행위 전체를 포괄하는 뜻이지만, 독립운동은 자기나라를 독립시키기 위한 활동이기 때문에 행동의 주체와 그 목적이 다르다.

예를 들어 중국의 항일운동은 중국사람들이 일제 침략에 저항한 운동이고, 태평양전쟁은 미국이 일본과 벌인 전쟁이다. 그러나 일본과 적대행동을 했다고 하여 중국의 항일운동이나 미국의 대일전쟁을 우리나라 독립운동이라고 하지는 않는 것이다.

​청산리 전투의 주역인 김좌진장군이나 이범석장군의 대한독립군이나, 1940년 창설한 광복군은 조선의 독립이라는 목표를 명확히 한 무장부대이기 때문에 이들의 활동은 엄연한 독립운동이다.

​그러나 김일성이 한때 적을 두었다고 하는 동북항일연군은 중국에 대한 일제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한 중국 공산당의 유격대이며. 조선의 독립을 위해 존재했던 부대가 아니다. 따라서 김일성이 동북항일연군의 일원으로 했다는 항일운동은 중국공산당의 항일투쟁이지 조선의 독립운동이 아닌 것이다.

동북항일연군은 1931년 만주사변이 발생하고 만주가 일본에 피탈되자, 일본의 침략에 저항하여 1936년부터 중국의 동북지방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한 유격대이다.

​1935년 인민전선전술을 채택한 코민테른 제7차대회가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중국공산당 중앙은 '중국 소비에트 정부와 동북 각지의 항일정권을 단일적·전국적 국방정부로 조직하고, 홍군과 동북인민혁명군 및 각지의 반일의용군을 한 덩어리로 하는 전 중국적 항일연군으로 조직하라'는 8·1선언을 하였으며 이 선언에 따라 동북항일연군을 조직하게 된다.

​동북항일연군은 1936년부터 활동을 개시하였으며, 한 때 1만명 규모까지 세력이 확장되었으나 일본군과 만주군의 토벌로 1940년에 지휘관 양정우가 피살되고, 1942년 부대가 완전히 소멸되었다. 이 부대는 독립운동의 사령탑인 상해임시정부와도 별 관련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였던 동북항일연군이라는 중국공산당 부대는 북한 김일성의 우상화 과정에서 마치 조선독립군인 것처럼 호도되고 미화되기 시작했다. 김일성이 주동적으로 활약했다는 보천보사건이 보천보전투로 변조되면서 동북항일연군이 조선독립군의 주력인 것처럼 각색되었다.

심지어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사라면, '동북항일연군'은 우리 민족의 역사이다”라고 주장하는 종북노들도 나타났다.

“고구려는 중국의 역사이고 동북항일연군이라는 중국인의 부대가 우리민족의 역사”라고 하는 정신 나간 자들이 민족사를 연구한답시고 날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중국공산당의 지시로 창설되었고 중국인이 지휘한 중국부대가 왜 조선독립군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동북항일연군에 조선사람들이 대거 참가하였기 때문에 조선독립군이라고 하지만 이는 군대와 지휘의 기본 원칙조차 모르는 소리인 것이다. 어느 외국의 프로축구팀에 우리나라 선수들이 많이 활동한다고 하여 그 축구팀이 우리나라 축구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하겠는가?

​김일성은 1940년 소련 하바로스크로 이동하여 제88국제여단에 편입되었다. 제88국제여단은 소비에트 연방 극동군 소속 여단으로 김일성을 비롯한 60여명의 조선인들이 이 부대에서 소련을 위해 충성을 바쳤다.

​독일과 전쟁을 수행하든 소련은 1941년 일본과 일소중립조약을 체결하였다. 일소중립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소련은 독일과 일본은 미국과의 전쟁을 안심하고 수행할 수 있었다.

따라서 김일성이 소련군 88여단 근무 기간 중에는 항일투쟁 자체가 불가능하였다.

​이상과 같은 역사적 사실을 비추어 볼 때 김일성은 스탈린의 통제를 받은 중국 공산당부대의 일원으로 소규모 공산혁명투쟁을 했다고는 인정되나,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노력도 한 사실이 없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선열들은 일제의 온갖 방해책동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으로 대한민국의 독립의 필요성을 고양시킴으로써 1943년 카이로회담에서 유일하게 한국의 독립조항을 삽입시켰고 2차세계대전후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선열들의 빛나는 독립운동에 비한다면 보천보에서 민간인을 살상하고 물자를 약탈했다는 김일성의 유격대 활동은 태양 앞의 반딧불도 되지 않는 미미한 활동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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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산너머산 | 작성시간 21.04.15 항일운동과 독립운동이 다르다고? 극우놈들이 개발한 논리네. 김일성이를 좋아하던 싫어하던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마져 왜곡해선 안되지. 그렇게 말장난하면 사람들이 혹하고 넘어갈거 같니?
  • 작성자독도사랑~ | 작성시간 21.04.15 제가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정확한 판단을 할 수는 없지만 전 항일운동 했다는 것에 대한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물론 북한에서는 그것이 부풀려지고 우리나라에서는 역사교과서에 나오지도 않지만 6.25를 일으킨 장본인 이라는것과는 따로 분리할 필요는 있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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