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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신박한 사진방

1912년 남극 탐험대

작성자미션클리어|작성시간22.07.14|조회수467 목록 댓글 0

영국 해군장교 로버트 팰콘 스콧이 남극 탐사선 테라노바호의 지휘봉을 잡은 것은 1910년이었다. 바야흐로 극점을 향한 레이스가 달아오르고 있었다.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던 북극과 남극의 존재가 알려졌고, 1909년엔 미국인 피어리가 인류 최초로 북극점에 발을 디뎠다. 스콧 탐험대가 남극점 ‘정복’을 목표로 삼은 것은 당연했다. 같은 시각 북극점으로 향하던 노르웨이 탐험가 로알드 아문센도 배의 기수를 남쪽으로 돌린다.

그해 겨울을 로스 빙붕에서 난 스콧은 1911년 11월 남극점을 향해 출발한다. 개, 조랑말, 스키와 사람이 한데 섞인 탐험대였다. 북극 탐험대의 조언을 받아들여 짐을 끌게 하려고 개를 데려왔지만, 이들 영국인들은 ‘사람의 동반자’인 개에게 무거운 짐 지우기를 꺼렸다.

개를 다루는 기술도 부족했다. 대신 만주산 조랑말을 데려왔지만, 추위에 취약한 말들은 본격적인 탐험이 시작되기도 전에 죽어나갔다.

스콧을 포함한 5명의 정예 대원은 악전고투 끝에 이듬해 1월17일 남극점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들이 발견한 것은 눈보라 속에 나부끼는 노르웨이 깃발이었다. 아문센이 이미 5주 전 4명의 대원과 썰매개 18마리를 끌고 남극점을 다녀갔던 것이다.

알파레이디 리더십

포럼에 초대합니다쓸쓸한 귀환길엔 불운이 잇따랐다. 남극의 여름으로는 이례적인 영하 30~40도의 추위와 폭풍이 계속됐다. 식량이 떨어져 대원들은 굶주림에 시달렸다.

군인인 에반스가 괴혈병과 체력 저하로 먼저 숨을 거뒀다. 동상으로 발이 부풀어 신발을 신지 못하고 걸을 수도 없게 된 오츠는 “잠시 나갔다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텐트 밖으로 나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나머지 세 명도 비상식량 저장지를 18㎞ 앞두고 전진을 멈췄다. 8개월 뒤 스콧과 나머지 두 대원은 텐트 속에서 잠든 것처럼 죽은 채 발견됐다.

“영국인으로 최선을 다 했으나 불운은 이기지 못했다”는 스콧 탐험대의 메시지는 빠른 속도로 영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국민적 영웅’이 필요하던 시점이었다. 소년병들은 스콧의 일지를 가슴에 끼고 전선에서 죽어나갔다.

스콧은 지금도 영국의 대표적 국민 영웅이다. 그러나 그의 실패가 불운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경직된 군인 리더십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002년 ‘100명의 영국인’ 여론 조사에서 스콧은 54위로 밀려났다. 대신 남극 탐험 도중 배가 좌초했으나 2년간의 사투 끝에 27명 선원 모두를 무사히 살려 귀환한 인듀어런스호의 선장, 어니스트 섀클턴이 11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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