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ㆍ신박한 사진방

한번도 도굴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 경주 왕릉이 최근 발굴되었다.

작성자싸인은나중에|작성시간24.07.29|조회수258 목록 댓글 0

 

최근 발굴이 진행된 서악동 고분군 4호분의 모습이다. 매장문화재조사기관인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지난 4월15일부터 보름가량 태풍으로 무너진 4호분 봉분 북서쪽 단면의 정밀발굴조사를 진행했다.

지난달 3일엔 현장설명회를 열어 2단의 호석들이 밀집된 상태로 받침석과 함께 드러난 조사현장을 학계 관계자들에게 공개했는데, 이후 고고학계에서 무덤 성격을 둘러싸고 첨예한 논란이 시작됐다.

2년 전 발생한 태풍 힌남노 덕분에 신라 왕릉급 고분의 무덤 얼개를 둘러싼 논란의 물꼬가 터졌다. 2022년 서악동 고분군의 4호분 북서쪽 봉분 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과정에서 현장 시찰을 나온 한 문화재 위원이 무너진 봉분에서 삐져나온 호석으로 추정된 돌들의 모양새를 보고 발굴조사를 조언한 것이 계기

서악동 고분군은 6세기 중반 이후의 돌방(석실)무덤으로, 돌무지덧널무덤인 전대 5세기의 마립간 시기 왕릉급 무덤들이 있는 대릉원과는 두부모 자르듯 구분된다는 게 기존 학계의 단정적인 견해였다.

그런데 이런 기존의 예상을 깨고 시내 대릉원에서 볼 수 있는 돌무지덧널무덤의 흔적인 2개의 단으로 촘촘하게 쌓은 호석층의 돌무더기들이 확인돼 학계 관계자들을 경악시킨 것이다. 신라의 무덤 역사에서 돌무지덧널무덤이 시내 외곽의 산기슭의 6세기 석실 무덤으로 변모한다는 게 그동안의 확고한 역사적 통설이었는데, 통째로 이런 가설이 흔들리게 되었다.

고분군 중 동쪽 고지대에 있는 표주박 모양의 표형분인 48호분이 유력한 발굴 대상 유적으로 지목된다. 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돌무더기가 중첩된 적석목곽분 유적이기 때문에 일본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여러 도굴범들의 침입을 받았으나 무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동관이나 유리 유물 같은 여러 고급 부장품들이 나올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왕릉 주인은 신라 법흥왕으로 추정한다.

조사는 현재 진행 중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