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후퇴는 보통 상식적으로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진
종공군의 기습적인 인해전술로 어쩔 수 없이 당해내지 못하고 퇴각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패배한 전투에 대해서는 소홀 하는 경향이 있는 듯싶네요.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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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맥아더에 대해 알아두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맥아더는 오랜 시간 아시아에서 중앙정부의 통제를 거의 받지 않으면서 군인으로 있던 인물입니다. 아더 맥아더(맥아더 부친)때부터 중앙정부와 충돌이 많았습니다. 태평양전쟁에서는 전략적인 이유보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일본 본토방향 공격이 아닌 필리핀 탈환 후 공격을 주장하기도 했었습니다. 정치적입지가 탄탄하여 당시 극동사령관에 있었으며 나이는 70.. 장군으로 반평생을 지내며 고집스러운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중앙정부의 정치인들과 관계는 좋지 못했습니다. 맥아더는 한국 전쟁 때 한국에서 하룻밤 묵은 적이 없으며 전부 일본에서 지휘를 하게 됩니다.
북한이 남침을 시작하고 오랫동안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과 싸우고 국공내전을 치러냈던 중공군은 압록강 너머에 비상시를 대비하여 병력을 배치해둡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3.8선을 맥아더가 넘어서 북진하게 되죠.
그러자 중국은 한국전쟁 참전을 선언하고 22개 병단 30만 중공군을 도하시킵니다.
또한 미 정보부에 의해 압록강에 모인 중공군에 대한 정보도 들어갑니다.
북진을 하면서 중공군과 산발적인 교전을 하게 되고 중공군 포로를 통해서 구체적인 부대이름까지 모두 들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맥아더는 '신뢰도가 낮은 정보다', '믿을 수 없다' 라고 하면서 유엔군에게 계속 북진을 명령합니다.
따라서 미8군과 미10군단 그리고 국군 등의 유엔군은 계속 북진을 하게 됩니다. 병력간 거리가 너무 멀었고 통신도 서로 되지 않았으며 단지 압록강까지 진군 하게 되면 크리스마스 이전에 전쟁을 끝날 수 있다는 분위기로 넘쳤다고 합니다.
빠른 북진으로 인하여 유엔군에게는 탄약이 부족했고 월동장비도 부족했다고 합니다. 대대 사이로 적 사단이 지나가도 모를 정도로 엉망인 북진을 하고 있었던 거죠. 그리고 이 유엔군들은 멀리 떨어진 도쿄사령부로 부터 지휘를 받고 있었습니다.
유엔군들은 중공군이 압록강의 발전소를 보호하기 위해 소수 도하하여 있으며 선제공격을 받기 전까지는 절대 공격해선 안 된다는 명령을 받고 있었다고 하네요.
왠지 점점 재앙이 가까워 오는 것 같죠?
이렇게 국군 선두부대가 수통에 압록강의 강물을 뜰 때쯤.. 이미 중공군은 유엔군에 대한 포위를 다한 상태였습니다.
11월 1일 운산에서 중공군 115사단과 116사단이 미8기병연대와 국군18연대를 포위 공격하여 유엔군은 병력 절반이 사상자가 되어버리는 대패를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중공군은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유령처럼 사라집니다.
미8군사령관 워커장군은 도쿄에 '지적이고 훈련이 잘된 부대가 매복 및 기습 공격 감행. 일부는 중국 공산군.' 이라는 보고를 합니다.
워싱턴 행정부는 중국 공산당의 한국전쟁 개입에 대한 대응책을 맥아더에게 물어봅니다.
맥아더는 걱정하지마라 한국전쟁은 거의 끝나가고 있다. 라고 답변하게 되죠.
따라서 이후에도 유엔군은 계속 북진하게 되지만.. 산악지형으로 이루어진 한반도 북부에서 계속 포위공격을 당하게 됩니다.
청천강에서는 미2사단이 중공군40군에게, 안주에서는 미1군단과 미9군단이 중공군 13총군에게... 각각 연대 대대 등으로 나뉘어서 북진하던 유엔군은 중공군의 덫에 걸려 철저하게 각개격파. 사단지휘부고 뭐고 죄다 모래알처럼 무너져 내립니다.
이 와중에 미1해병사단이 스미스장군의 지휘아래 훌륭하게 싸우는데 KODEF 안보총서 히든제네럴 스미스장군 편에 잘 나와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은 참고하세요.
맥아더는 즉시 친분 있는 언론을 통해 변호기사를 내기 바빴고.. 이런 패배에도 미 언론은 올해의 인물로 맥아더를 거론할 정도라니 정치적인 영향력이 굉장히 강했다 는걸 알 수 있습니다. 또한 8군과 미10군단을 통합하여 운용하라는 브래들리 합창의장의 명령도 거부합니다.
맥아더와 가까운 관계였던 워커 미8군사령관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미군 내에서 유능한 장군이라고 이미 평가받고 있던 리지웨이 장군이 미8군사령관으로 부임합니다. 그는 맥아더와 싸우는걸 두려워하지 않았던 장군이죠. 그는 한반도내 무너진 미군실태와 맥아더의 중국과 전면전을 하고자하는 생각에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맥아더의 만주 핵폭격 주장은 중공군의 참전을 막는 용도가 아닌 중국과 미국의 전면전을 이끌어내고자 했던 의도라는 게 학자들의 생각이라네요. 중국전 사령관의 영광을 자신이 누리려고요.)
결국 맥아더는 해임이 되고... 미 의회에서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단지 사라질 뿐이다' 라는 말을 남기게 됩니다.
결국 인천상륙작전은 맥아더의 마지막 군사적 성공이 되었습니다.
리지웨이 장군은 무너진 유엔군으로 평택 선에서 중공군을 저지해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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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에 대비하여 동서 폭이 좁은 곳에서 북진을 멈추고 중공군과 싸웠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진할때 미행정부는 북진하는 미군이 너무 강함을 염려하여 병력을 유럽쪽으로 옮기려고 했고
보급선도 다른 곳으로 돌렸다네요.
중공군에게 항복하는 미군
중공군의 모습
이 엄청난 패배로 유엔군과 국군은 압록강에서 평택까지 밀리게 된다.
동부전선 흥남철수
참고서적
KODEF 안보총서 히든제네럴
콜디스트 윈터 : 한국전쟁의 감추어진 역사
사진출처
http://blog.ohmynews.com/gompd/146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