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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권중현(權重顯,) 농상대신

작성자길리성|작성시간19.12.07|조회수555 목록 댓글 1


권중현(權重顯, 1854~1934) 농상대신

구한말의 대신이자 군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2. 생애

    

1854108일 충청도 영동에서 출생했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호는 경농(經農)이다. 이름이 재형(在衡)이었으나 19035월 중현(重顯)으로 개명하였다. 대한제국기에 농상공부 대신, 의정부 찬정, 군부 대신 등을 역임하였으며 을사오적(乙巳五賊)’으로 지탄을 받았다. 일제강점기에는 자작의 작위를 받았으며, 중추원 고문·조선사 편수회 고문 등으로 활동하였다. 1934322일 사망했다.

 

임진왜란 때 팔도 도원수를 지낸 충장공 권율의 9대손인 아버지 권홍섭(權弘燮)과 충무공 이순신의 9대손인 어머니 덕수 이씨 사이에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친가, 외가 전부 일본에게서 나라를 지킨 충신 가문인 그런 집안에서 매국노가 나온 셈. 한편, 초명은 재형(在衡)이었는데, 1903년에 안동 권씨 경중대종중보소에서 31에서 60까지의 대동 항렬을 제정하는 데에 참여하면서 본인의 이름도 그 항렬자에 맞게 '重顯'으로 개명하였다

    

2.1. 관직 생활 

 

권중현의 가계는 위에서 언급했듯 공신 집안이었지만, 그의 6대조인 상기(尙琦) 대에 들어와서는 이렇다 할 관직을 배출한 조상이 없었다. 다만 그의 조부인 경호(景祜)1834년에 생원시에 급제하였을 뿐이었는데, 권중현이 태어난 이후인 1861년에 비로소 아버지 권홍섭이 무과에 급제하여, 음서로 참봉을 시작으로 1877년에는 오위장에까지 올랐다. 이에 권중현 또한 공신 가문의 후예인 점과 아버지가 벼슬길을 먼저 닦아놓은 덕분에, 음서로 관직 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2.1.1.1. 을사늑약

    

파일:을사늑약 당시.jpg

을사조약 당시에는 농상공부 대신을 지냈다. 농상공부는 현재의 농림축산식품부 및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해당되는 부처였다.

 

1905년 을사조약 때 당시 학부 대신 이완용의 조약 체결에 대일본제국이 조선의 백성들을 먹여살리고 입혀주신다면야 기꺼이 찬성할 것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억지 논리로 체결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며 을사오적에 합류하게 되어서 민족 반역자가 되었다

 

2.1.1.2. 조약 찬성 후 

 

조약 체결 이후 다른 을사오적들과 함께 조선 의사 및 민중들의 습격을 받아서 출퇴근 때도 일본군의 호위하에 돌아다닐 정도였으며, 죽을때까지 암살범의 습격을 받아 도망치면서 목숨을 연명하였다.

   

2.1.2. 일제강점기

    

한일병합 이후로도 친일 행적을 계속하게 되면서 1910년 한일병합 때 조선총독부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았다. 몇년 후 3.1 운동이 일어나자 이재곤과 작위 반납 의사를 밝혔지만 일본이 거절했다

 

2.2. 사망

    

1934년까지 유유자적한 말년을 보내고 자연사로 사망했다. 향년 79. 참고로 을사오적 가운데에서는 가장 오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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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바람의나라 | 작성시간 19.12.08 일본피신했다가 말년에 몰래귀국해서 섬에서 숨어살다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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