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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선인 자살특공대원

작성자길리성|작성시간20.07.08|조회수237 목록 댓글 0





탁현경 , 조선인 독고다이

13세기 고려, 몽골의 "여몽연합군" 이 일본을 점령할
위기였는데 태풍이 와서 중단된 사건을 상징하는 것이다

세우려던 위령비의 주인공은 경남 사천의
미쓰야마 후미히로입니다. 창씨개명 전의 한국 이름은 '탁경현'. 조선인 가미카제 특공대원 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은 그가 친일파라는 이유로 위령비를 반대했습니다.

2001년 일본에서는 영화 <호타루>가 만들어졌습니다. 친구였던 조선인 가미카제 특공대원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의 영화입니다.(호타루 뜻: 반딧불이)
거의 3300기의 자살폭격기가 출격했지만 성공률은
겨우 11.6%. 하지만 살아 돌아올 확률은 0%.

급강하 폭격은 비행전문가도 어려운 것인데,
일본은 훈련병들에게 자살을 부추겼습니다.
(실제로 직업군인은 몇 안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실패율이 높고, 실제 목표인 항공모함은
실패하고 작은 피해만 입혔을 뿐입니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요? 정말로 친일파였을까요?
아직은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확인된 숫자만도 18명이나 되는 조선인 중
한 명인 그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죽어서도
일본 제국주의에 묶여버린 이들을 알아보려고 한다

너무나 가난해서 여섯 살 나이에 부모와 함께 일본으로 간 탁경현은 판자촌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몇 개 없던 약학전문대학에 들어가며
엘리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일본 순사가 찾아와서 입대를
강요했습니다. 자원입대를 하지 않으면
생선 가게를 못하게 해서 먹고 살 수 없게 하겠다는
협박도 있었습니다.

그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마음으로 자원입대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약 2년 간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훈련소에는 일본인과 조선인 학도병들이 있었습니다. 1945년 일본의 패망이

짙어가자 이들 조선인도 가미카제 자살특공대 희망서류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분위기는 희망하지 않겠다고 할 수 없는
강압적 분위기였고 결국 그는 24세에
자살특공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자살폭격에 나서기 전날, 강압이 드러날까 봐
가족에게 편지도 못 쓰게 하자 식당에서 아리랑을
부르며 혼자 슬퍼했다고 합니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탁경현이 친일파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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