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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안중근의사 사진복원에 6년간 매달린 형님!

작성자기라선|작성시간20.10.12|조회수318 목록 댓글 2

 

 

1909년 10월 겨우 서른의 안중근은 친구인 우덕순과 함께 블라디보스톡에서 


독립운동가들의 대부로 불리는 최재형과 대동공보를 운영하던 유진률의 후원을


받아 일주일 전쯤 하얼빈으로 들어갑니다.


친구인 우덕순과 또 다른 동지인 유동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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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이 최재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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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얼빈에 도착하고 마지막으로 동지들과 함께 깨끗한 양복을 맞춰 입고 


거사 전 마지막으로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중 하나로 추정됩니다.


최대한 화질개선과 컬러로 복원해봤습니다.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우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러시아 헌병에 투항해


체포당하지만, 모두 아시는바와 같이 아무 저항도 하시지 않고, 꼬레아 우라~를


외치기만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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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헌병에 체포된 당시만 하더라도 입술에 상처도 수염옆에 상처들도...


폭행이나 구타에 의해 생긴 상처는 크게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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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헌병대에게 신병이 넘어가고 며칠간 혹독한 조사를 받습니다.


하얼빈에서 안중근 일행을 물심양면으로 돕던 이강과 조덕선의 가족 그리고 현지에


살던 교포들까지 강제로 체포되어 그 과정에서 엄청난 수의 동포들과 교포들이 돌아


가셨지만 아직도 우리는 모르고 있는 희생자들이 수백수천...입니다.


한달도 안 된 짧은 기간동안도 어떤 고초를 겪으셨는지 사진만 봐도 보일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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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플과 몇가지의 사진 편집프로그램으로 치열과 어두운 입안의 최대한 확대하고, 


보정에 보정을 거쳤더니 저 빈 부분과 입술라인의 불균형은 조사과정중 이가 부러졌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오른쪽 위와 아래 두개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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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진과 이 사진이 찍힌 시간의 차이는 불과 3~4개월의 시차라는게 믿어지시나요?ㅠㅠ


일본이 테러리스트로 안중근의 사진을 일본과 전세계의 언론에 보도한 사진은 이 사진이


제일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책에서 접해 온 사진들도 대부분은 늙고 엉망으로 망가진 콧수염이


트레이드 마크 중 하나였던 안중근의 모습이였습니다.


모두 매국보수를 앞세워 초기 대한민국정부를 수립한 이승만과 그 앞잡이들의 시나리오중


일부 였을 겁니다.


그리고 또 사진을 복원하면서 흑백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그런 느낌을 받았던 놀라운


사진이 사형직전 수의를 입으신 마지막 사진입니다. ㅠㅠ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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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눈빛과 눈동자 그리고 입술과 슬픈 표정들까지....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리고 몇시간이 지난 지금도 억울해서 참을 수 없는 느낌 밖에는 없습니다.ㅠㅠ


많은 분들이 보시고 느낄 수 있도록 추천 많이 부탁드립니다..


(추가합니다)

 

제가 6년 가까운 시간을 공들이는 본업이 있어 자료준비중 알게된 사실의 하나...


?안중근의사님의 하얼빈의거 전의 많은 시간의 행적들이 직접 쓴 자서전에서 조차 


쓰지 않으시고 전혀 의외의 자료에서 전혀 의외의 인물들의 미행한 일본의 정보원들의


문서나 메모에서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자료중 하나에서 언급된 일화입니다.

 

하얼빈에 도착한 안중근과 일행은 일종의 전투복으로 깨끗한 양복을 하나씩 사셔서


당시의 헌병들과 공안들의 눈을 피해 변장도 하셨습니다그리고 첩보나 정보수집을


주로 하던 독립군요원들도 늘 수의라고 생각하고 좋은 옷들을 입으셨던 분들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안의사도 대규모의 환영인파 속을 무기를 숨기고 들어가셔야 하셨기때문에 당시론


꽤 비싼 고급양복과 코트를 입고 계셨지만러시아 헌병대에 체포되면서 입고,소지하고


계셨던 옷들은 증거로 압수당하고 러시아 헌병들이 지급한 수용자들이 입던 옷을 지급


받고 입으신 옷들이 모두 우리가 보는 안의사님의 사진에서 보는 저런 공산당 복장같은


옷들 입니다.


그리고 여순의 형무소에서도 지급받으신 옷들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안의사의 이미지가


.... 일본놈들은 이것까지고 영웅을 초라한 테러리스트처럼 영원히 남기려는 의도이고,


당시 보수정부는 이를 이용했던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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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손지오름 | 작성시간 20.10.12 ㅜㅜ
  • 작성자손지오름 | 작성시간 20.10.12 너무나 건강했던 청년의 용모셨네요
    사진이 생생해서 보고 있자니 뭔가 죄스러움까지 밀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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