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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독립운동 하면 3대가 망한다

작성자기라선|작성시간20.10.12|조회수102 목록 댓글 0

 

 

 

도마 안중근

 

그의 가족은 평탄히 살지를 못했다.

안중근 의사 일가 중 독립운동을 한 사람만도 40명을 넘는다.

최고 훈장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은 안중근 의사를 비롯,

안 의사 동생 안정근·안공근,사촌 안명근·안경근,

조카 안춘생·안봉생·안원생·안낙생 등....

 

하지만 일제는 황해도에서 러시아까지 안의사 일가를 추적했고

1911년 여름 안중근의 맏아들 우생(분도)은 6살에 독살당했다.

부인 김아려 여사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중국에서 숨을 거뒀고

귀국한 안 의사 일가들은 대부분 김구 선생과 같은 계열에서 활동하다가

탄압받고 안의사 유족들은 해외로 뿔뿔이 흩어졌다.....

 

안중근- 하얼빈 의거후 사형

아들 안우생(분도)- 6세때 일제에 의해 독살

김아려 의사- 돌아오지 못하고 중국 상하이에서 사망

사촌동생 안경근 - 독립운동후 5.16 군사정권에 의해 투옥

조카 안민생-5.16 군사정권에 의해 투옥

안명근- 일제에 의해 서대문 형무소 투옥

조카 안진생-전두환 정권에 의해 탄압 투병중 사망.

 

안민생 (중국 옌지 거주 사촌 동생 경옥씨에게 보낸 편지)

과거 우리는 안중근 집안이라는 이유로 왜놈에게 죽어야 했는데,

광복 뒤에는 왜놈의 앞잡이 노릇을 한 주구들이 권력을 잡게 됨으로써

애국자의 피해는 여전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도자 도산 안창호일가

가족 모두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과 왕래가 없음

 

 

1936년 뤼순 감옥에서 숨을 거둔 단재 신채호

 

일제가 만든 호적신고를 거부하고 1912년 망명길에 올랐던 신채호의 대한민국 국적은 아직도 회복되지 않고있다.

아들 신수범씨는 은행에서 일했지만 신채호가 이승만에 반대한것 때문에 자유당 정권에서 신변을 위협받고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고 넝마주이·부두 노동자 등 떠돌이로 살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비서장 차리석

 

차리석은 1945년 9월9일 해방후 귀국을 준비하다 과로로 쓰러져

해방된 조국 땅을 밟지 못한 채 숨졌다.

 

아들 차영조씨

김구가 암살 당하자 임시정부에서 일한 사람들의 가족은

친일파 후손이 떵떵거리는 사이 몰래 숨어 지냈다

어머니는 좌판과 행상을 해 가족들 입에 풀칠을 했고

아들의 성을 차(車)에서 신(申)으로 바꾸어 학교에 입학시켰다.

초등때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지고 아들 차영조씨는

동냥,문전걸식 등 19살때까지 신씨로 살며 안해본일 없이 살았다.

 

 

 

 

상하이 임시정부 외무장관 장병준 선생 장손 하정

(스리랑카 양아들 오산다 씨의 도움을 받고 있음)

 

장병준의 4형제는 모두 독립운동을 했다.

구한말 신안군 장산도 일대에 염전과 전답을 가지고 있던 천석꾼의 재산은 모두 독립운동 자금으로 들어갔다.

독립운동을 한다고 자식 교육은 뒷전으로 장병준의 후손들은 가난을 대물림 받아 쓸쓸한 말년을 보내고 있다.

 

 

 

 

조선의열단,조선의용대 임시정부 운암 김성숙

 

김성숙은 독립운동후 자유당 시절 이승만 독재에 반대하는 정치활동을 펼쳤다가

궁핍한 생활을 벗어나지 못했다.

 

<김성숙이 일기장에 남긴 글귀>(1955년 2월23일)

 

오늘 200원을 꾸어 쌀을 사왔다.

내가 독립운동을 하고 정치를 한다고 돌아다니면서도 가족을 굶기고 살고 있구나.

아들 김정봉 -일제 때 강제징용후 돌아왔으나 정신이상으로 경제생활을 거의 하지 못했다.

 

손자 김덕천씨(68)

 

가끔 할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한다.

할아버지가 이승만을 추종했더라면 잘 먹고 잘살았을 텐데....

(덕천씨는 암으로 보훈병원에 갔었지만

독립유공자에 대한 조항때문에 해당사항이 안되어 치료 받지 못했다)

 

 

■ 1919년 서울 4대문 사건의 주동자로 옥고를 치렀던 이원근 열사

손자 이승봉씨는 경비 일을 한다.

 

■ 조선 총독 암살 계획으로 옥고 치른 방한민 열사

손자 방병건씨 최근까지 경비원으로 일했다.

 

“독립군 할아버지 저는 배를 곯아요”

 

 

독립유공자 유족 6283명 가운데 직업이 없는 사람이 60%를 넘고,

봉급생활자는 10% 남짓이며, 중졸 이하 학력이 55% 이상이다.

이들은 대부분 비참하게 산다. 일부는 친일파 후손에 밀려 외국으로 피했다.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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