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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대동여지도서 독도는 울릉도 남쪽 섬..지리정보 재정립"

작성자기라선|작성시간20.10.17|조회수136 목록 댓글 0


      

    

이상균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지도학회지에 논문

 울릉도와 독도 18세기 지도는 강원도 지도, 19세기 지도는 1861년 목판본 대동여지도다. 붉은색 동그라미 안이 독도로 추정된다.

울릉도와 독도 18세기 지도는 강원도 지도.

19세기 지도는 1861년 목판본 대동여지도다. 붉은색 동그라미 안이 독도로 추정된다.

김정호가 19세기 후반 편찬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서 독도는 남쪽에 표시한 섬이며, 이는 조선시대 후기 혼란에

빠진 울릉도와 독도 관련 지리 정보를 재정립한 결과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아울러 조선시대 사람들이 사료와 지도에 독도를 '우산도'로 기재했고, 대동여지도에 독도가 없다고 보는 학계 시각을

비판적으로 고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리학자인 이상균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17~19세기 조선의 독도

인식과 지도표현의 변천사'에서 "김정호가 제작한 '동여도'와 대동여지도에 독도는 명확하게 표현됐다"고 강조했다.

조선시대 독도 인식에서 18세기에 큰 변화가 나타났다고 했다. 이전엔 울릉도와 우산도라는 2도 체제로 울릉도 주변을

파악했다면, 이후에는 독도와 우산도에 '독섬'(독도), 관음도를 추가해 4도 체제로 인식했다고 분석했다.18세기 팔도지도 울릉도 옆에 우산도가 표시된 2도 체제 지도다.

18세기 팔도지도 울릉도 옆에 우산도가 표시된 2도 체제 지도다.

4도 체제가 처음으로 기록된 사례는 18세기 '강원도 지도'다.

이 지도에는 울릉도 북동쪽에 우산도가 있고, 남쪽에 초록빛으로 칠한 섬과 한 쌍의 섬 등 섬 5개가 표현됐다.

우산도는 초목이 두드러지지만, 독섬으로 추정되는 한 쌍의 섬은 형태만 그려졌을 뿐 명칭도 없고 초목도 없다.

당시에는 본토에서 울릉도로 건너가기도 쉽지 않았고, 독도는 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87㎞ 이상 떨어져 있어 훨씬 더

멀게 느껴졌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즉 강원도 지도에서 우산도는 오늘날 죽도이며, 남쪽 초록빛 섬은 관음도이고, 한

쌍의 섬이 바위섬인 독도라는 것이다. 우산도를 독도로 간주한 기존 학설을 뒤집는 주장이다.

조선은 섬에 주민을 보내지 않는 공도정책을 펼치면서 울릉도 주변 지리 정보가 퇴보했고, 지도에도 부정확한 내용이

실렸다고 판단했다. 그는 김정호도 초기에는 울릉도 주변을 그릴 때 울릉도 오른쪽에 '소위(所謂) 우산도'라는 큰 섬을

넣고, 아래쪽에 부속 도서를 3개가 아닌 5개 표시하는 등 오류를 범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김정호는 1861년 목판본 대동여지도에는 우산도를 없애고 울릉도 남쪽에만 자그마한 섬 3개를 그렸다.

"세 섬은 죽도와 이전까지  왜곡된 관음도, 독도"라며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제작하면서 지리 정보를 수정하고 이를

지도 제작에 반영했으며, 울릉도와 부속 도서를 명확히 알고 섬의 규모와 형태에 맞게 그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동여지도 중에 울릉도 오른쪽에 우산도를 표시한 지도는 1861년 이전 판본으로 보면서 "김정호는 다양한 지도와

지리지를 고증해 불분명했던 울릉도와 주변 섬들에 관한 지리 정보를 대폭 바로잡았다"고 평가했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한 것으로 추정하는 자료 중에 대동여지도 울릉도 부분을 그리고 울릉도에 죽도(竹島)·석도(石島)

를 합쳐 울도군으로 승격한 대한제국 칙령을 적은 지도도 의미를 지닌다고 덧붙였다.

오늘날에도 울릉도 지도 하단부 공간에 편의상 거리가 먼 독도를 그린다고 지적하면서 "중요한 사실은 사료를 현대인의

관점이 아니라 당대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접근하고 검토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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