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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보통사람은 모두 친일파였다고?

작성자기라선|작성시간20.10.22|조회수111 목록 댓글 0


보통사람은 모두 친일파였다고? 

 

 “1945년 8월16일, 나는 전날과 다름없이 제 시간에 출근하여 국기 게양대 앞에 섰다. 그런데 게양대 위로 올라가는 깃발은 우리 히노마루가 아니었다. 낯선 깃발이 올라가는 동안 조선인 동료들은 ‘반딧불이’(스코틀랜드 민요 올드랭사인을 번안한 일본 동요) 곡조에 맞춰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불렀다. 나도 부동자세로 서서 깃발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비로소, 그동안 조선인들의 마음이 어땠을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일본인의 회고)

그는 매일 아침 국기를 바라보고 동방요배를 하며 조회 때마다 황국신민의 서사를 낭송하는 조선인들을 보면서, 그들도 ‘덴노 헤이카’의 적자(赤子)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남의 국기를 바라보며 경배하는 처지에 놓였을 때에야, 그동안 자기들이 조선인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1945년 농사는 풍작이었다. 게다가 공출은 중단되었고, 일본인 지주에게 소작료를 바칠 이유도 없었다. 일본 본토와 전선으로 반출되던 쌀도 고스란히 국내에 남았다. 그럼에도 쌀이 부족했다. 친일 지주들과 유력자들이 속죄하는 잔치를 베풀었기 때문에 엄청난 양의 쌀이 떡과 술로 변해 사라져 버렸다. 사죄하는 자와 사죄받는 자 사이, 즉 친일파와 보통사람 사이의 경계선은 분명했다.

그런데 근래 일제강점기에 산출된 텍스트들을 통해 ‘보통사람’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려는 연구자들 중에는, 텍스트로 표현되지 않은 문제는 ‘없는 문제’인 양 취급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일제강점기에도 보통사람들은 신문물에 열광하고 경제적 성취에 몰두했을 뿐, 독립운동이니 민족문제니 하는 것에는 아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본다. 이런 결론은 다시 “민족주의라는 색안경을 쓰고 역사를 본 결과 일제강점기의 민족문제가 실제보다 과도하게 인식되었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일제강점기에 살았던 99% 이상의 한국인들은 1%도 안되는 독립운동가들과는 다른 세상에서, 다른 생각, 다른 생활을 하며 ‘정상적’으로 살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한국인들은 ‘민족문제’에 대해 말하기 싫었거나 관심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던 것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총독정치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면 바로 ‘불령선인’으로 낙인찍혀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 억압 상황이어서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며, 그 ‘말할 수 없음’에 익숙해진 것뿐이다. 압제 속에서 표현된 것이 속마음이 아니라 압제의 사슬에서 벗어났을 때 표현된 것이 속마음이다.

그럼에도 최근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이자 일본군의 정신적 동지”였다거나 “1%의 독립운동가 때문에 99%의 ‘보통사람’들이 죄인 취급 받는 건 불합리하다”는 등의 발언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그들은 압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공개적으로 표현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통사람’으로 호명(呼名)하고서는, 그들을 ‘말할 수 없는 상태’에 묶어 두었던 식민통치의 하수인들과 한편으로 묶는다. 그러고 다시 독립운동가들을 ‘보통사람’의 평온한 삶을 교란하거나 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죄인의 자리에 배치한다. 그들의 주장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격렬히 저항하지 않았다면 성폭행이 아니라 화간(和姦)’이라는 주장과 똑같다. 성폭행범이 피해자의 목에 칼을 들이댔든, 피해자가 14~15세의 소녀든 그들에겐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겐 강자가 약자의 입을 틀어막고 손발을 묶는 게 ‘정상적’인 상황이며, 그 상황에 순응하는 게 ‘보통사람’의 도리이고, 그에 저항하는 것은 ‘죄’이다.

‘민족주의 과잉’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정작 ‘국가주의 과잉’의 노골적 표현인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적극 찬동하는 황당한 아이러니가 연출되는 것도 이 때문일 터이다. 그들의 속마음에 자리 잡은 건 이런 생각이 아닐까? 인간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상황이 ‘정상 상황’이 되고 권력의 요구에 무조건 순응하는 획일적 인간이 ‘보통사람’이 되는 쪽이 자기에게 유리하다는 것.

 

 

 http://news.nate.com/view/20150922n50006

 

 

 

"위안부는 성노예 아니다…일제 땐 모두가 친일파" 고려대 경제학 교수, 수업 중 상습 '망언'



고려대 교수가 수업시간에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다” “그 시대(일제강점기)엔 모두 친일파였다”는 등의 발언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고려대 경제연구소 정안기 연구교수(51·사진)는 지난 15일 ‘동아시아 경제사’ 수업시간에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다. 어마어마한 돈을 벌고 있었고 몇 달만 일하면 고국으로 돌아갈 비행기삯을 구할 수 있었지만 (돈을 벌기 위해) 남은 것” “그 시대엔 모두가 친일파였다. 당시 시대상을 이해해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고 당시 수업을 들은 고려대 학생과 관계자 등이 18일 밝혔다. 정 교수는 이날 수업시간에 아베 담화를 옹호하는 내용의 서울대 이영훈 교수의 ‘한국인, 당신들은 누구인가?’ 칼럼을 복사해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정 교수의 문제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해 11월6일 익명으로 제보를 올릴 수 있는 페이스북 페이지 ‘고려대학교 대나무숲’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의 글이 올라온 바 있다. 익명의 고려대 학생은 이 글에서 “2학기 정안기 교수님의 ‘경제학개론’ 수업에서 (교수님이) 식민사관을 가지고 계셨고 그것을 수업시간에 이야기하신다”면서 “‘일본이 우리나라를 수탈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고 일본은 우리나라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거나 ‘야스쿠니신사가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발언을 하셨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18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 문제와 관련해) 지나치게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있어 실체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우리가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려는 건데 끊임없이 과거라고 하는 문제가 우리 발목을 잡고 사람들의 세계관, 역사관을 왜곡시킨다는 것은 이상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시 (일제에 저항한) 독립운동가 1명 때문에 99명의 ‘보통’ 사람들이 모두 죄인 취급을 받는 것은 불합리하다”면서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기 위해 역사교과서 개혁, 국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1990년 고려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교토대 경제학과에서 석·박사과정을 거친 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원을 지냈다. 그는 2005년 서구식 근대화에 맞서 동아시아식 근대화를 주장한 식민지 근대화론 성향의 나카무라 사토루(中村哲)의 책 <근대 동아시아 역사상의 재구성>을 국내에 번역하기도 했다.

 

 

http://news.nate.com/view/20150919n02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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