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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가축은 물론 생선·조개도 먹지 말라고 명령한 日 쇼군

작성자기라선|작성시간20.11.05|조회수280 목록 댓글 0


[숨어 있는 세계사]

가축은 물론 생선·조개도 먹지 말라고 명령한 日 쇼군

입력 : 2019.01.25 03:02

[17세기 일본의 살생금지령]
300여년 전 도쿠가와 막부 5대 쇼군, 100여개의 동물권법 만들었어요
도쿄돔 20개 크기의 유기견 시설 세워 개 산책 시켜주는 관리 따로 뽑기도

동물권 단체 '케어'의 박소연 대표가 그동안 200여 마리가 넘는 구조 동물을 안락사시킨 것으로 드러나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안락사 없는 동물 보호소'를 표방하며 후원금을 받아 온 단체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배신감이 더욱 컸지요. 이 사건으로 동물들의 안락사 문제에 대해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수백년 전 일본에서 동물들의 생명을 중시하여 개는 물론 조개도 잡아먹지 못하게 막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이누쿠보(犬公方·개장군)'이라고 불린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德川綱吉·1646~1709)입니다.

"살생을 금지해라"

일본은 군주국이지만 일왕은 상징적인 존재일 뿐 실권을 쥔 사람은 전국 영주들의 우두머리인 쇼군(將軍)입니다. 쇼군을 떠받치는 정부를 막부(幕府)라 해요.

흰 개를 쓰다듬고 있는 사람이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가운데)입니다.
흰 개를 쓰다듬고 있는 사람이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가운데)입니다. 그는 개는 물론 날짐승, 생선, 조개까지 먹지 말라는 살생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도쿠가와 쓰나요시는 17세기 일본을 재통일한 도쿠가와 가문의 5대 쇼군입니다. 조선 어부 안용복이 일본에 건너가 독도가 조선 영토라고 인정받았을 때 일본을 다스리던 사람이죠. 1680년 다섯 살 위의 형인 4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쓰나(德川家綱)가 병으로 사망한 뒤 34세에 쇼군이 됐어요.

쓰나요시는 쇼군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유학을 강조했어요. 유시마성당(湯島聖堂)이라는 유교 학교를 세워 고위 관료의 자제들이 유학을 배울 수 있게 하고, 자신이 직접 유학 경전을 강의하기도 했지요. 전국에 조사관을 파견해서 부정부패한 관리와 행실이 좋지 않은 신하들을 처벌하기도 했지요. 덕분에 쇼군의 권위가 강력해지고 정치도 안정됐어요. 경제도 크게 발달했고요.

그러던 쓰나요시가 1684년 쇼군에게 매를 헌상하던 관행을 금지시켰어요. 이듬해인 1685년에는 "쇼군이 지나갈 때 개와 고양이가 돌아다녀도 괜찮다. 앞으로는 묶어두지 않아도 된다"는 법령을 반포했고요. 원래 쇼군이 지나갈 때에는 백성은 좌우로 비켜서서 엎드리고, 동물들도 쇼군의 행차에 방해되지 않도록 묶어놨는데 그렇게 하지 말라는 지시였어요.

이 법령들이 뒤에 이어질 100개가 넘는 동물 관련 법의 시작입니다. 쓰나요시는 1687년 '동물을 불쌍히 여기는 법(生類憐れみの令)'을 발표합니다. 개나 가축에게 상처를 입히지 못하게 금하는 한편 먹기 위해 동물을 잡는 행위도 금지했어요. 처음에는 가축들을 잡아먹지 못하게 하다가 나중엔 생선·조개·새우 같은 어패류도 먹지 못하게 했지요. 살생을 직접 저지르지 않고 지켜보기만 해도 '말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했어요.

쓰나요시는 도쿄돔 20개 크기의 거대한 유기견 보호 시설을 세워 떠돌이 개 수만 마리를 돌봐주기도 합니다. 수용된 개를 산책시켜주는 관리도 따로 뒀어요.

그는 소나 말·고양이·개 등에게 사람처럼 호적대장을 만들어 줬어요. 기르던 개가 죽으면 주인이 직접 좋은 자리에 묻어주게 했고, 동물의 등에 짐을 싣는 행위도 금지했어요.

쓰나요시가 이처럼 동물 보호에 나선 이유에 대해 여러 설이 전해옵니다. 서른 넘어 얻은 아들이 다섯 살에 요절한 뒤 충격을 받아 모든 살아 있는 생명에 연민을 느끼게 됐다는 설이 있습니다. 후계가 없어 고민하는 쓰나요시에게 한 승려가 "전생에 살생을 많이 한 탓이니 동물을 보호해 덕을 쌓으라"고 충고했다는 설도 있고요.

쓰나요시의 살생 금지령이 현대 일본어에까지 흔적을 남겼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우리말에서는 날짐승과 들짐승을 모두 '마리'로 세지만 일본에서는 날짐승과 들짐승을 세는 단어가 달라요. 들짐승은 '히키(匹·ひき)'라고 하고, 날짐승은 '와(羽·わ)'라고 셉니다. 그런데 들짐승 중에서 토끼만 유독 날짐승처럼 '와'라는 단위로 셉니다.

쓰나요시 시절 배고픈 백성이 토끼를 잡아먹은 뒤 처벌을 피하려고 마치 토끼가 아니라 새를 잡아먹은 것처럼 속이던 데서 나온 관행이라고 해요. 다만 훗날 쓰나요시가 날짐승도 죽이지 말라고 금지했던 걸 생각하면 허점이 있는 주장입니다.

생명 존중 사상 퍼트리려는 뜻?

쓰나요시의 정책은 사람보다 동물을 위했던 법으로 보여요. 지금 당장 우리나라에서 닭과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면 난리가 나겠죠. 많은 백성이 쓰나요시의 법령으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동물을 불쌍히 여기는 법'을 계속 남겨 달라는 쓰나요시의 유언에도 그가 죽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법은 폐지됩니다.

하지만 일부 현대 학자들은 쓰나요시의 정책이 당시 일본 사람들에게 유교·불교를 바탕으로 생명 존중 사상을 갖도록 하려는 취지였다고 보기도 해요. 도쿠가와 막부 초기에는 무사들이 길을 걷다가 부딪쳤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칼로 베어 죽일 정도로 생명을 가볍게 봤거든요.

사실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에서 불교의 영향으로 사냥을 금지한 적이 있었답니다. 쓰나요시의 동물 보호 정책이 비록 극단적이었다고는 해도 동물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쓰나요시의 생각은 새겨볼 만합니다.

안영우 명덕고 교사  |   기획·구성=양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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