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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독도를 조선 땅으로 그린 지볼트의 ‘일본왕국도’

작성자기라선|작성시간20.11.27|조회수167 목록 댓글 0



[최선웅의 고지도이야기|일본왕국도]

독도를 조선 땅으로 그린 지볼트의 ‘일본왕국도’

  • 최선웅
  • 입력 : 2018.05.29 10:47



    19세기 초 일본 에도막부江戶幕府는 쇄국정책으로 외국과의 교류를 금지하고 있었으나, ‘요츠노구치四つの口’라고 대외무역을 위해 나가사키長崎와 쓰시마對馬, 사쓰마薩摩, 에조蝦夷 네 곳을 외국에 개방하고 있었다.


    1823년부터 1829년까지 나가사키에 머물렀던 독일인 의사 지볼트는 귀국 후 일본 자료를 집대성한 책 <일본Nippon>을 1832년에 간행하고, 1840년에는 일본 전역과 울릉도·독도까지 포함한 ‘일본왕국도Karte vom Japanischen Reiche’를 제작했다.


    지볼트Philipp Franz Balthasar von Siebold는 1796년 독일 뷔르츠부르크Wurzburg의 의학계 명문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한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외숙부 밑에서 자랐다. 1815년 뷔르츠부르크대학에 입학해 의학을 전공하면서 동식물과 지리학을 공부했는데, 특히 식물학에 심취했다. 1820년 졸업하면서 개업했으나, 동양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동양에 가기 위해 1822년 네덜란드 헤이그로 향한다.


    국왕 시의侍醫의 알선으로 네덜란드령 동인도 육군병원의 군의관이 된 지볼트는 로테르담을 출항해 1823년 3월 바타비아Batavia (자카르타)의 포병연대에 배속되었다.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동인도 총독에게 일본에 갈 것을 청원해 그해 8월 일본 나가사키에 도착했고, 일본의 대외 무역 창구인 데지마出島의 네덜란드 상관의商館醫로 근무하게 되었다. 그의 일본행은 네덜란드 무역 강화를 위한 종합적이고 과학적인 연구의 사명을 띠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일본 도착 이듬해에 나가사키 교외에 나루타키쥬쿠鳴?塾라는 사숙을 개설해 일본 각지에서 온 의사나 학자들에게 서양의학을 가르쳤는데, 이때 다카노 조에이高野長英, 니노미야 게이사쿠二宮敬作, 이토 겐보쿠伊藤玄朴와 같은 제자들을 길러내게 되었다. 1825년에는 데지마에 식물원까지 만들어 일본을 떠날 때까지 1,400종 이상의 식물을 재배하기도 했다.


    1826년 4월에는 네덜란드 상관장의 에도막부 방문 때 수행하면서도 일본의 식생과 기후, 천문 등의 조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에도에 도착해 제11대 대장군 도쿠가와 이에나리?川家?를 만났고, 탐험가 모가미 도쿠나이最上??와 천문학자 다카하시 카게야스高橋景保 같은 학자들과도 교류했다.


    에도에 머물던 지볼트는 모가미 도쿠나이로부터 ‘에조지蝦夷地(홋카이도) 지도’를 받았고, 다카하시 카게야스가 사할린 동해안의 자료를 요구하자 러시아의 해군탐험가 크루젠슈테룬Adam Johann von Krusenstern의 <세계 주항기世界周航記>를 주는 조건으로 이노 타다타카伊能忠敬가 제작한 대일본연해여지전도大日本沿海輿地全圖의 축도본縮圖本을 받았다.


    1828년 9월, 지볼트가 귀국 채비를 할 때 나가사키항에 정박해 있던 네덜란드 선박이 태풍으로 파손되자 수리를 위해 적하물을 하역하던 중 지볼트의 짐에서 국외 반출이 금지된 일본지도가 발견되었다.

    이 사건으로 지볼트와 막부의 천문방이던 다카하시 카게야스 외 수십 명이 체포되었다. 지볼트는 심문받을 때 “과학적인 목적으로 일본지도를 요구한 것이다”라고 진술해 체포된 사람들의 대부분이 풀려났으나, 일본지도를 건넨 다카하시는 끝내 옥사하고 말았다.


    이듬해 지볼트는 추방당하면서 재입국 금지 처분까지 받았다. 뒤에 이 사건은 막부의 기밀 담당이었던 마미야 린조間宮林?의 밀고 때문임이 밝혀졌다.


    지볼트는 1830년 7월 7일 네덜란드에 도착한 뒤 네덜란드 정부 후원으로 일본에서의 연구 자료를 집대성한 <일본>을 간행했고, 1851년에는 <일본지도집Atlas von Land-und Seekarten vom Japanischen Reiche>을 출간했다. 이 지도집에는 ‘일본왕국도’와 ‘일본변계약도日本邊界略圖, Japen mit seinen Neben-und Schutzlandern’외에 11매의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일본왕국도는 이노 타다타카의 측량지도와 일본 내에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제작된 지도로, 서구사회에 처음 알려진 최신의 일본지도였다. 지도의 크기는 가로 76cm, 세로 59.8cm이고, 축척은 대략 220만 분의 1이다. 내도곽의 경도 표시는 그리니치를 기준으로 했으나, 지도에는 미야코Miyako, 都(천황의 궁전)를 표준자오선으로 그렸다.


    지도에 그려진 일본은 혼슈와 시코쿠, 규슈 등 당시의 영토만 나타냈고, 지도 왼쪽 상단에는 혼슈 북쪽의 커트도가, 우측 하단에는 나가사키항의 확대도가 있고, 그 위에는 일본의 지리용어를 독일어로 표기하는 설명이 있다. 지도 하단에 있는 두 개의 그림 중 위의 것은 규슈 서쪽 해상의 단조군도男女群島이고, 아래 것은 나가사키반도 끝의 노모곶野母崎과 다카시마高島 섬을 그린 것이다.


    지도 좌측에는 조선의 일부와 울릉도·독도가 그려져 있는데, 울릉도는 ‘Takasima(I. Argonaut)’라 쓰고 경위도 좌표(37° 52′ N.B. 129° 50′ O.L.)와 브로튼Broughton이 병기되고, 독도는 ‘Matsusima(I. Dagelet)’라 쓰고 경위도 좌표(37°25′ N.B. 130° 56′ O.L.)와 라페루즈de Lapirouse가 병기되었다. 울릉도에 표기된 ‘아르고노트 섬’은 1797년 영군 해군사관인 브로튼William Robert Broughton이 동해상에서 울릉도로 보이는 섬을 발견한 뒤 붙인 이름이었으나, 이후 근거 없는 것으로 판명되어 지도상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지볼트는 일본왕국도를 제작하면서 일본 해안선에는 2~3mm 굵기의 청색 선을 채색해 일본 영토임을 표시했고, 인접국인 조선의 일부와 울릉도·독도의 해안선에는 채색을 하지 않았다. 이것으로 보아 지볼트는 당시 일본의 영역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볼트의 저서 <일본>에는 그가 나가사키 데지마에서 조선 표류민들을 만나 면담한 내용과 어민과 조선 배의 그림, 조선 언와 문자, 조선의 제도와 관리, 천자문 등 총 8장으로 구성된 조선 편이 수록되어 눈길을 끈다. 그가 만난 조선인과 조선에 대한 문물은 매우 제한적이었지만, 조선을 유럽사회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854년 일본이 개국되면서 지볼트는 1859년 일본을 재방문하지만 결국 막부로부터 추방당해 귀국한 뒤 1866년 패혈증으로 뮌헨에서 일생을 마쳤다.


    필자 한국지도학회 부회장, 한국지도제작연구소 대표, 한국산악회 자문위원.

    월간산[583호] 2018.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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