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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미국의 "진주만 공격"에 대한 역사인식의 변화(기사 모음) 2021-12-29 江崎 道朗

작성자neowave|작성시간22.01.10|조회수82 목록 댓글 0

미국의 "진주만 공격"에 대한 역사인식의 변화

2021-12-29 江崎 道朗 https://cafe.daum.net/flyingdaese/Vg7B/3426

 

 

 

 

 

 

「日本は米国を騙し討ちした悪い国」80年経っても変わらない日本のメディアの思考停止 戦争番組は今年も同じ内容だった…

2021-12-29 江崎 道朗

 

 

 

 

  "일본은 미국을 기습공격한 나쁜 나라"8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일본언론의 사고정지

 

 

                                       2021-12-29 江崎 道朗(에사기 미치오)     번역 오마니나

1941년 12월 8일의 "진주만 공격"이래 80년이라는 시기를 맞이해, 신문이나 텔레비전이 크게 보도했다. 평론가인 에사키 미치오씨는 "일본의 언론은 종래와 그대로 '비겁한 기습"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기밀정보가 공개되어, 역사의 시각은 변하고 있다"고 말한다 ――.

 

"진주만 공격의 날"을 일본의 언론은 어떻게 보도했는가

 

2017년 11월 3일, 미국 대통령이던 도널드 트럼프가 하와이의 진주만에 있는 애리조나 기념관을 방문한 뒤 트위터로 "Remember Pearl Harbor(진주만을 잊지마라)"고 중얼거려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일본의 언론은, 트럼프는 "일본 기습을 잊지마라"는 말을 쓴 것이라고 받아들였지만, 이 "리멤버 펄 하버"의 의미도 미국에서는 크게 변하고 있습니다.

 

진주만 공격으로부터 80주년을 맞이한 2021년의 언론 보도도, 이 말을 여전히 같은 의미로 계속 썼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계속 재검토되고 있습니다. 본 고에서는, 미국에서 진주만 공격이 어떻게 논의되고 수정되어 왔는 지를 소개하겠습니다.

 

1941년 12월 8일(현지시간은 7일, 일본군이 진주만공격을 했던 당시는, 그것은 틀림없이 미국에게는 "비겁한 기습공격"이었습니다.

 

그런데 1948년, 미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찰스 비어드 박사가『 President Roosevelt and the Coming of the War, 1941 : A Study in Appearances and Realities』라는 책을 간행합니다(번역『 루스벨트의 책임 』 후지와라 서점, 2011년).

 

이『루스벨트의 책임』에 의해,"당시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암호해독에 의한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을 알고 있었는데도, 대일 참전을 단행하기 위해, 일부러 일본군의 공격을 하와이의 미군사령관에게 알리지 않았다"라는"루즈벨트 모략론"이 등장합니다.

 

그 후에도 미국에서는 진주만 공격에 대한 논의가 계속됩니다.

 

미국에서 진행된 역사의 검증

 

그리고, 진주만 공격 50년인 1991년 12월 7일에 애리조나 기념관 방문객 센터에서 열린 기념식전에서, 하나으 ㅣ문제가 떠올라 논란이 되었습니다.

 

행사의 명칭을 "진주만공격(Pearl Harbor attack)50년 식전"으로 할 지, 아니면 "진주만 50년 식전"으로 할지의 논의였습니다. 문제가 된 것은 "공격(attack)"라는 말이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 후의, 소련을 상대로 했던 냉전에서는, 일본은 미국의 동맹국입니다. 그 일본을 비난하는 듯한 행사의 명칭으로 관계없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특히 하와이에서는 일본인들이 다수 활약하고 있므로, 일본을 적대시하는 듯한 명칭의 행사는 삼가해야 할 것이라는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50년이나 지난 일이고, "공격"라는 말은 빼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일본의 "기습공격"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느 때에 외국으로부터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 국방의 중요성의 이해를 깊게하는 기념식으로 그 취지를 변경해야 한다는 논의가 행해졌습니다.

 

전함 미주리

사진=iStock.com/NNehring

 

행사는 축승회(祝勝会)...왜 일본에 대한 원망의 말은 들리지 않았을까

 

이 진주만 50년 식전에 나도 참석했습니다만, 진주만공격에서 살아남은 군인과 그 유가족들이 참석한 식전에서는 "우리는 이긴 것이다"라는 승전축하회와 같고, 일본에 대한 원한 같은 어두운 모습은 거의 못봤습니다.

 

결과적으로, 식전의 명칭에서 "공격"이라는 말이 삭제되었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기념연설도, 일본을 비판하는 문언은 아니고, 국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되었습니다.

 

내가 2017년 9월, 오랜만에 애리조나 기념관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애리조나 기념관 방문객 센터의 전시담당자의 설명을 들으며 역사전시를 관람했습니다만, 입구에 장식되어 있던 한장의 해설판이 특히 눈에 띄었습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다가오는 위기" 아시아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옛 세계의 질서가 바뀌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라는 두개의 신흥대국이, 세계를 무대로 주도적인 역할을 하려고 대두한다. 양국 모두가 국익을 추진하려고 한다. 양국 모두 전쟁을 회피하기를 바라고 있다. 양국이 일련의 행동을 취해, 그것이 진주만에서 맞붙게 된다》(필자 번역)

 

애리조나 기념관은, 진주만공격은 일미양국이 각각의 국익을 추구한 결과로 일어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즉, 일본을 "침략국"이라고 몰아붙인 도쿄재판을 사실상 부정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일본이 일방적으로 전쟁을 일으켰다는 논란은 없어지고, 다양한 배경이 있어 전쟁이 되었으므로, 일본을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전시(展示)는 바꿔야 한다는 것은 미국국립공원 담당국, 역사학자들, 미군, 그리고 하와이 주정부 4자회담에서 결정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일본에서는 패전후, 줄곧 일본은 진주만 공격으로 상대를 속이고 기습한 나쁜 나라다, 같은 역사관을 가져 왔는데, 상대인 미국은 훨씬 옛날에, 그러한 역사관과는 다른 견해를 내놓기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에노나 문서의 공개에 의한 근현대사의 재검토

 

그리고, 이 근현대사의 개편을 가속시키는 것이, 비에노나 문서의 공개인 것입니다.

 

비에노나 문서는, 미국정부의 국가안전보장국(NSA), 연방수사국(FBI), 중앙정보국(CIA)에 의해서 공개된 기밀문서들로, 1940년부터 1944년에 걸쳐 주미 소련의 스파이들이 본국과 암호 전문으로 교환했던 것을, 당시의 미국육군이 감청해, FBI와 영국정보부의 협력을 얻어 해독되었습니다.

 

비에노나 문서의 연구서인『스탈린의 비밀공작원』은, "진주만 공격의 배후에 소련의 공작이 있었다"라면서ㅡ,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소련에 의한 정치공작은, 소련이 우리의 동맹국이며, 반공 방호 조치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은 제2차 세계대전중에 가장 현저했다. 이것은 끔찍할 정도 타이밍이 좋았다. 친소파의 음모가 미국의 참전에 결정적 역할을 했으니까. 이런 의미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진주만 공격에 앞서 공산주의자와 친소파가 가진 복잡한 작전이다. 이 1941년 12월 7일의 일본군의 기습공격으로, 2천명 이상의 미국인이 생명을 잃고, 미국은 비참한 전쟁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야마우치 치에코 번역)

 

루즈벨트 민주당 정권과 코민테른의 관계

 

재검토되고 있는 것은, 진주만 공격에 이르는 경위뿐이 아닙니다.

 

에사키 미치오『일본인이 모르는 근현대사의 허망』(SB신서)

 

"제 2차 세계대전에서 문제인 것은 소련의 비밀공작이 아닌가. 또한 그 비밀공작에 걸려 버린 루즈벨트 민주당 정권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며,『스탈린의 비밀공작원』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상당한 양에 이른 데이터가 나타내는 것처럼, 강력하고 사악한 적이, 1940년대 중반까지 미국정부(및 기타 영향력 있는 직책)에 무수한 비밀공작원과 동조자를 배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 공작원들은 정부 속에서 소련의 국가 목적에 봉사하고, 미국의 국익을 저버릴 수 있었다》(야마우치 치에코 번역)

 

이처럼 소련과 코민테른은, 상대 정부와 언론노동조합 등에 첩보및 공작원을 들여 보내, 배후에서 그 나라를 조종하는 비밀공작을 획책해 왔습니다. 이 비밀공작을 전문용어로 "영향력 공작"이라고 합니다.

 

비에노나 문서의 공개와, 소련 등에 의한 비밀공작이 국제관계, 미국정치에 끼친 영향에 대해 연구가 진행되므로서, 미국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평가가 지금 크게 바뀌고 있습니다.

 

역사는 끊임없이 검증되고, 기밀정보의 공개나 연구가 진행되면서 재검토도 행해지고 있습니다. 인텔리전스 히스토리라고 불리는 장르가, 지금까지의 역사인식을 업데이트합니다. 지금의 국제사회를 읽고 해석하는 데도 중요합니다.

 

한편, 일본인들은 여전히 기존의 역사관에 얽매여 있습니다.졸고 『일본인이 모르는 근현대사의 허망』이 근현대사를 배우는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https://president.jp/articles/-/53217?page=4

 

 

(해설)바이든 '태평양 전쟁 중 일본계 미국인 강제수용 사죄'의 이면

2021-02-21 https://cafe.daum.net/flyingdaese/Vfr0/6791

 

진주만 공격에서 시작하는 패권의 분석
2014年12月12日 田中 宇 https://cafe.daum.net/flyingdaese/Ff32/405

 

진주만 : 획책된 이벤트?
2020年12月7日 Paul Craig Roberts http://cafe.daum.net/flyingdaese/Vz9V/22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배신한 시어도어 루즈벨트
2020-08-31 櫻井春彦 https://cafe.daum.net/flyingdaese/SfFI/4962

 

류큐병합에서 진주만공격으로의 길을 선도한 미영의 금융자본은 지금도 일본을 조종한다

2021-12-08 櫻井春彦 https://cafe.daum.net/flyingdaese/Vfr0/9338

 

"맥아더의 대일 5대혁명으로 전후 일본인은 다시 태어났다"

2021年12月3日 増田俊男 https://cafe.daum.net/flyingdaese/Vg7B/3410

 

GHQ(연합군사령부)에 의해 말살된 역사
2020年12月11日 nihon https://cafe.daum.net/flyingdaese/Vg7B/3262

 

시장론・국가론 18. 태평양전쟁의 수수께끼  일본은 패할 것으로 알고 있는 일미개전을 왜 단행한 것인가?

2021-04-27 tasog https://cafe.daum.net/flyingdaese/Vz9V/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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