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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유대문제의 포인트 (일본 쇼와편) ― 제34화 ― 쇼와천황의 진의 2022-01-11 seiryuu

작성자neowave|작성시간22.01.25|조회수3 목록 댓글 0

유대문제의 포인트 (일본 쇼와편)  ― 제34화 ―  쇼와천황의 진의

2022-01-11 seiryuu https://cafe.daum.net/flyingdaese/Vg7B/3435

 

 

 

 

ユダヤ問題のポイント(日本 昭和編) ― 第34話 ― 昭和天皇の真意
2022/01/11 seiryuu

 



                    유대문제의 포인트 (일본 쇼와편)  ― 제34화 ―  쇼와천황의 진의

                                                         2022-01-11 seiryuu  번역   오마니나


 쇼와천황은 매우 날카로운 지성을 가진 인물임에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다만, 서로 모순된 인물이 동시에 동거했던 것과 같은, 매우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이었다고도 생각합니다. 그것은 본인의 원래의 자질과 놓여진 입장의 복잡함이 낳은 것이기도 하겠지요.

 메이지부터 패전 전까지의 시기까지는, 천황은 현인신(現人神)으로, 일본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존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표면에 나와 있는 천황의 상위(上位)에는 이면천황이 존재합니다. 에도막부 말기에 일본은 영국령이 되어, 천황은 영국여왕의 부하가 되는 것이 결정되었으므로, 표면의 천황을 앉혀두고, 영국여왕의 부하가 아닌 불가침(不可侵)인 천황은 이면에서 움직이기로 한 것입니다. 영국령 일본을 운영하기 위해 메이지 유신이 있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1858년의 일영수호통상조약 이후의 일본의 2가지 지배구조

 이면천황이라는 하위(下位)이며 영국여왕의 부하, 그러면서도 현인신, 이런 복잡한 입장에서 쇼와천황은 대동아전쟁에 몸을 던졌던 것입니다. 대동아전쟁의 움직임을 보면, 쇼와천황에게는 명실상부한 아시아의 맹주다운 야망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쟁 중에 어느 정도의 축재를 증가시킨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그리고 패전에 즈음해, 자국민을 원폭의 피해자로 만든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이것 만을 잘라내면, 쇼와천황은 저주해야 할 만한 인물입니다.…그러나…쇼와천황은 진심으로 전쟁을 혐오하고, 일본국도 그렇지만 세계전체의 평화를 희구했었던 것도 사실로서 틀림없을 것입니다.

 쇼와천황에게는 이면천황이나 영국여왕의 부하로서의 해방을 구하는 것과 함께 일본과 세계의 평화도 구하고, 그것을 위해 아시아의 맹주가 되도록 희구해, 거기에 필요한 축재를 하고, 그리고 전쟁의 종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자국민의 희생을 강요한 것 같습니다.일본과 세계의 미래에 걸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은 "참기 어려운 것을 참고 참기 어려운 것을 참고…"라는 옥음방송의 말에 담긴 생각 그 자체에는 거짓이 없었을 것이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seiryuu)


                   유대문제의 포인트 (일본 쇼와편)  ― 제34화 ―  쇼와천황의 진의

원폭의 실제 총괄

1945년 8월 15일, 옥음방송의 의미있는 부분.

"적은 새롭게 잔학한 폭탄(원자폭탄)을 이용해,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살상해, 참해가 어디까지 번질지 알 수 없다.더우기 전쟁을 계속한다면, 종국에는 우리 민족의 멸망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인류 문명도 무너뜨리게 될 것이다."

전쟁을 계속한다면, 일본민족의 멸망뿐만 아니라 "인류 문명도 무너뜨리리게 된다."
....왜 그럴까?

…이 상태가 되는 것은, 일본과 연합국측이 서로 원폭작렬이라는 응수 외에는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며, 실제로, 쇼와천황은 이것을 매우 우려하고 있었던 모양. 그래서 당시의 원폭에 대한 실제를, 다음과 같은 점에서 다시 조사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유대문제의 포인트(일본 쇼와편) ―제30화― 나치 독일제 원자폭탄

2021-10-05  seiryuu  https://cafe.daum.net/flyingdaese/Vz9V/467

 

유대문제의 포인트 (일본 쇼와편) ― 제31화 ― 나치스 원폭의 진짜 소유자

2021-10-12 seiryuu https://cafe.daum.net/flyingdaese/Vz9V/474

 

유대문제의 포인트(일본 쇼와편) ―제32화― 원폭투하의 전체상

2021-10-19 seiryuu https://cafe.daum.net/flyingdaese/Vz9V/476

 

유대문제의 포인트(일본 쇼와편) ― 제33화―  원폭투하, 천황에 대한 고발

2021-10-26 seiryuu https://cafe.daum.net/flyingdaese/Vz9V/478


     a.원폭제조의 과정, 그 실제
     b.원폭투하의 영향과 그 의미
     c.원폭과 쇼와천황의 관계

그 결과, 각각은 단적으로 다음과 같았습니다.

      a. 일본은 원폭연구에 있어서 세계보다 앞서 있기는 했다. 그러나, 쇼와천황의 의향으로 일본의 원폭연구는 거의 중단되었다.
    세계에서 원폭을 최초로 완성한 것이 "비밀우주프로그램"을 진척시켰던 나치스. 나치스 독일은 UFO를 제조한 비밀공장에서 원폭도 완성시켰다.


     b. 러시아 전선에서 패퇴한 나치스 독일은 전략을 변경, 원폭을 협상의 도구로 삼아 미국으로 이양. 원폭을 이양하는 표면인물은 롬멜 장군이지만, 실제로는 카나리스가 주체가 되어 나치스의 원폭을 미국으로 넘겼다.

    그 나치스의 원폭이 히로시마에 투하되었다. 일본에 대한 원폭투하가 지상세계에 있어서 "핵전쟁시대"의 막을 열었다.또한, 피폭자들은 실험동물을 대신하게 되었다는 측면도 있다.


       c. 쇼와천황은 영국의 육군원수이기도 해, 미국의 스팀슨 등과 통했다. 원폭의 투하에 대해서도, 요한센 그룹을 통해 그 "일시와 장소"를 지정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이면에는 이면천황 호리카와 다츠요시로의 존재가...

    원래 대동아전쟁의 목적의 핵심이 된 것은 이면천황의 막대한 황금 획득. 요한센 그룹도 이면천황의 부하였다.


                                                                         쇼와천황


                                                 이면천황 호리카와 다츠요시로(堀川辰吉郎)

                                                              요한센 그룹의 핵심인 3명

                                                             마키노 노부아키(牧野伸顕)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카바야마 아이스케(樺山愛輔)

                                                                       조지프 구루

                                                                        헨리 스팀슨

전체적인 큰 관점에서는 a. b.의 원폭제조와 투하, 이에 따른 핵전쟁 시대의 개막이란, 하이알라키 및 그 부하인 외계인 그룹의 목적 그 자체였습니다. 코브라 정보의 문언에서는, 원폭 투하로 인해 제2차 세계대전은 "지구물질계에 앵커를 내리는 은하전쟁의 일부"가 된 것입니다. 핵무기가 지상세계 뿐만 아니라 다른 천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외계인 그룹이 지상세계에 개입할 수 있는 절호의 빌미가 된 것입니다.
https://prepareforchange-japan.blogspot.com/2017/10/20171026-cobra-joint-michael-salla-dr.html

 

핵무기개발에 깊이 관여하기도 하는 "비밀 우주프로그램"은, 우주전체를 지배하고자 하는 사나트 쿠말라의 야망을 투영한 아마겟돈 계획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한편 c.에 대해, 쇼와천황이 일본에 대한 원폭투하에 능동적으로 관여했던 것도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복잡한 의미도 있어, 일본에 대한 원폭투하의 일본에서의 진짜 배후는, 이면천황인 호리카와 다츠요시로였을 것입니다.

일본도 원자폭탄을 보유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원폭에 관한 a.b.c.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일본이 일방적으로 원폭피해를 당하는 것이므로, 전쟁지속이 옥음방송의 "인류문명도 파괴한다."로는 이어지지 않습니다.

쇼와천황은, 일본이 핵무기를 연구소지하는 것을 혐오하고 있으며, 표면적으로는 일본군부는 원폭개발을 중지켰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본군부는 원자폭탄의 연구를 계속해, 우라늄의 확보에도 분주했습니다. 일본의 원폭연구에서 유명한 것은 니시나 요시오(仁科芳雄)박사의 사이클트론이었지만, 실제로는 그 이외에 타지에서, 즉 만주와 조선반도에서 그 연구는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누구의 의도로 그 대륙에서의 원폭개발이 추진되었는가?
만주를 지배했던 사람이 누구였는가?

또한, 메이지 이후에 조선반도를 경유하면서 중국대륙지배에 일본이 나아갔던 경위를 돌이켜보면 분명할 것입니다. 임천황그룹이라고 보면 틀림없을 겁니다. 그리고, 전쟁말기에는 일본의 원자폭탄도 거의 완성에 가까운 단계를 맞았던 것 같습니다.

"★아수라♪게시판" 에 투고된 자료입니다만, 1999년 8월 6일에 "서일본 신문"이, "구일본군이 종전직전, 원폭실험" 조선반도 동해안 앞바다에서 GHQ에 극비정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낸 바 있습니다.
https://shanti-phula.net/ja/social/blog/wp-content/uploads/2022/01/6e24be65b8f041fea5a764b28af64369.pdf

 

기사는, 미국립공문서관에서 지지통신이 입수한 미군기밀문서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내용은, 패전 직전인 8월 12일 이른 아침에, 현재 북조선의 흥남 앞바다에서 구 일본군이 원폭실험을 행해, GHQ가 그 조사를 실시했다는 것입니다. 2019년에 로버트 윌콕스의 『성공했던 일본의 원폭실험:은폐된 핵개발사』가 나와 있는데, 내용적으로는 이 "서일본신문"의 기사를 상세하게 저술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https://www.amazon.co.jp/%E6%88%90%E5%8A%9F%E3%81%97%E3%81%A6%E3%81%84%E3%81%9F%E6%97%A5%E6%9C%AC%E3%81%AE%E5%8E%9F%E7%88%86%E5%AE%9F%E9%A8%93%E2%80%95%E9%9A%A0%E8%94%BD%E3%81%95%E3%82%8C%E3%81%9F%E6%A0%B8%E9%96%8B%E7%99%BA%E5%8F%B2-%E3%83%AD%E3%83%90%E3%83%BC%E3%83%88%E3%83%BB%E3%82%A6%E3%82%A3%E3%83%AB%E3%82%B3%E3%83%83%E3%82%AF%E3%82%B9/dp/4585222464

기사에 의하면, 흥남에는 비밀의 대규모 화학공장이 설립되어 있고, 다른 실험과 더불어 원자력 관련 실험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흥남 앞바다의 원폭실험은 어느 정도 성공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미 소련군이 침공해 오고 있어,관여한 과학자들은 소련에 억류되고, 흥남도 같은 날 소련군이 점령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북조선에는 풍부한 지하자원이 있어, 흥남의 대규모 비밀화학공장에서 원폭실험이 진행되었다고 하는 것은 무리가 아닙니다.

또한, "소련에 의한 흥남점령 후, 비밀시설이 소련군에 접수되어, 일소 양국 과학자의 공동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GHQ의 정보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몇 년 동안, 미소가 핵개발 경쟁을 벌였는데, 소련은 어떻게 핵 기술을 입수했을까요?

하나는 독일에 남아 있던 과학자를 접수하고 나서도 그로부터 기술을 입수할 수 있었겠지만, 이 흥남에서의 원폭실험을 했던 일본의 과학자로부터 핵기술을 입수했다고 보면 논리는 맞습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것처럼, 한국전쟁 때에 미군은 이 비밀시설을 표적으로 삼아 폭격하여 시설의 95%를 파괴한 것이지요.

"서일본신문"의 기사내용과 당시와 그 후 소련 등의 상황을 감안하면, 전쟁말기에는 일본도 원폭기술을 거의 보유하고 있었다고 봐도 틀림없을 것입니다. 다만, 그 원폭기술을 전쟁을 계속해 실전에서도 사용할 수 있었는가?는 큰 의문이 듭니다.

…그런데 의문을 해소하는 정보도 있기는 합니다.

정말 인류 문명이 파멸될 위기가?

내용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참고 정도로 해 주셨으면 합니다만, "전 야타가라스(元八咫烏)"라고 자칭하는 노인이 여러가지 이야기를 주장하는 일련의 동영상이 있습니다.말하는 내용은 상식적으로는 완전히 "말도 안된다"입니다. 그러나, 허튼소리로 치부할 수 없는 내용도 많습니다. 적어도 그 노인은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고,자신의 경험을 말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을 얘기되는 동영상이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WWNsISURwxGoz5-9PAeiiA/search?query=%E5%85%AB%E5%92%AB%E7%83%8F


★ 롯코산(六甲山"효고현 고베 근처)의 지하 깊숙한 곳에 우주인(지저인)그룹의 기지가 있고, 거대한 UFO가 출입하고 있었다.
★ 그 기지 안에 들어가려면 완전 소독을 해야 했지만, 기지의 외계인들은 야타가라스(八咫烏)와는 동지 관계였다.
★ 그 기지에는 수많은 초무기가 있었고, 중성자 폭탄도 있었다. 자신들 야타가라스는 본토결전을 하게되면, 미군에게 이 중성자 폭탄을 사용할 예정이었다.
★ 그러나 "더이상 전쟁은 싫다. 그런 일(중성자 폭탄의 사용)을 하면 인류가 멸종하기 때문에 용인받지 못한다는 쇼와천황의 요청으로 단념하게 되었다.
★ 유럽에 거주하던 쇼와천황은 정말로 전쟁을 싫어했다. 이면에 있는 우리에게 맡겨주면, 전쟁에는 이길 수 있지만, 야타가라스는 천황의 제안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 우리가 전쟁을 주도한다면 일본은 승리했을 것이지만, 그렇게 되면 군인 이외의 인간은 쓰레기로 취급하게 되어 그것이 좋은 일이 되었을 지는 알 수없다.

이 전 야타가라스라는 노인이 말하는 내용에 대해서 입니다만, 고대 이스라엘의 일부가 지저인 그룹에 받아들여진 사실과, 녹룡회의 두령이 블랙로지 수령인 카난을 알현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롯코산 지하 깊숙한 곳에 지저인(우주인)그룹의 기지가 있던 것도 간단하게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또한, 노인은 다음과 같은 말도 했습니다.

★야타가라스는 태어나면서부터 살인(암살)연습만 한다.
★ 유럽에는 2, 3?의 비밀결사가 있지만,일본에는 5개의 비밀결사가 있다.

일본의 5개 비밀결사란 오룡회를 가르키는 것입니다. 이 노인은, 정말로 야타가라스 내에 있던 사람이 아니면 말할 수 없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https://shanti-phula.net/ja/social/blog/wp-content/uploads/2020/11/201103_1100_2.jpg

 

그리고 중요 부분, 옥음방송의 "인류의 문명도 무너져"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대통령과 만난 외계인'에, 1945년에 지구가 소멸위기로 우주에 큰 손해를 미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https://www.amazon.co.jp/%E5%A4%A7%E7%B5%B1%E9%A0%98%E3%81%AB%E4%BC%9A%E3%81%A3%E3%81%9F%E5%AE%87%E5%AE%99%E4%BA%BA%E2%80%95%E3%83%9A%E3%83%B3%E3%82%BF%E3%82%B4%E3%83%B3%E3%81%AE%E5%AE%87%E5%AE%99%E4%BA%BA%E6%A5%B5%E7%A7%98%E5%A0%B1%E5%91%8A-%E3%81%9F%E3%81%BE%E3%81%AE%E6%96%B0%E6%9B%B8-%E3%83%95%E3%83%A9%E3%83%B3%E3%82%AF%E3%83%BB-%E3%82%B9%E3%83%88%E3%83%AC%E3%83%B3%E3%82%B8%E3%82%BA/dp/4884818296

 

이 해에 2발의 원폭투하 외에 맨해튼 계획과 흥남에서의 원폭실험도 있었지만, 이것 만으로 지구소멸의 위기가 된다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그러나 확실히 노인의 말처럼, 중성자 폭탄사용의 준비가 진행되었다면 지구소멸의 위기입니다.

 

옥음방송에 나와 있듯이, 인류멸망을 피하기 위해 쇼와천황은 전쟁을 막으려고 한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https://shanti-phula.net/ja/social/blog/?tag=seiryuu 

 

             

                                      [재독연구가] "일제 흥남 앞바다서 원폭실험"

1996.08.22 19:39

# 패전직후 「스넬보고서」 인용 당시상황 묘사 #.

2차대전 종전 당시 일본이 북한 흥남에서 원자폭탄을 개발중이었다고 최근 일본 언론이 보도한 가운데, 일본이 패망 직전 흥남에서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일으키고있다. 지난 5년동안 일본의 원자탄 개발사를 연구한 재독 연구가 김정양씨(55)가 최근 출간한 「21세기 핵시대의 여명」(누림간)에서 이같은 주장을 편 것.

일본이 2차대전 직전에 흥남에서 원자폭탄을 개발했다는 주장은이번에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다. 종전 직후 24범죄수사대 요원으로한국에서 활동했던 데이비드 스넬이 1946년 8월26일자 미국 「애틀랜타 컨스티튜션」지에 쓴 「스넬 보고서」나, 이를 토대로 미국의 언론인이자 작가인 로버트 윌콕스가 출간한 「일본의 비밀스런전쟁」(모로우간·1985년)에서도 이같은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김씨는 이들의 주장과 미국과 독일에서 최근 해제된 각종 비밀문서, 일본인의 관련저서를 바탕으로 「일본이 미국본토를 폭격하기 위해 흥남에서 원자폭탄을 개발, 1945년 8월12일 실험에도 성공했지만소련군이 진주하고 패전이 임박하자 자료 대부분을 파기했다」고 적고 있다.

「스넬 보고서」는 스넬이 1945년9월 일본의 핵무기개발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흥남일대에서 일본인 해군장교를 취조한 내용을 토대로쓴 것으로, 바다에서 실시한 핵폭탄 폭발실험 광경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1945년)8월12일 새벽, 비교적 커다란 배 한척 안에 무슨 로봇처럼 생긴 기계가 움직이는 것이 멀리 보였다. 그 배의 탑승객은원자폭탄뿐이었다. 약 20마일(32㎞)정도 떨어진 거리에 구경하는 일본인들이 있었다. 수평선에서 태양이 올라오려는 그때, 부둣가에 번개불과 같은 섬광이 비치고 얼마후에 큰 폭음이 났다. 직경 1천야드(914m)정도 되는 불덩이가 하늘로 치솟았다. 버섯 모양의 구름이 성층권을 향해 올라갔다. 폭음이 난 자리의 바닷물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김씨는 세실 니스트중령이 1946년 5월21일 미국 공군에 보고한 정보보고서도 제시했다.

『최근 정보부는 전쟁중 일본의 핵무기개발에 대한 경위를 밝혀내는데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흥남 일대를 조사한 보고서들은 이구동성으로 일본의 원자탄 개발을 그장소에서 완성한 흔적이 있다고 한다. …(일본인 장교의 진술에 의하면) 원자탄개발에 대한 작업은 일본 본토에서 하고, 원자탄제조를 위한 시설은 흥남에 세웠다고 한다』.

이밖에도 하사가와 히데요의 저서 「흥남 함락 직전의 기억」(1972년)과 각종 정보기관의 비밀문서등을 인용했다. 그러나 의구심은 여전히 남는다.

무엇보다 흥남 바닷가에서 핵실험을 했다는 것이 「스넬 보고서」외에 당시 어느 기록에서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이 특별편성한 조사단(「그룹 쓰리」)이 45년9월 일본과 흥남을 돌아보았지만그들은 『일본에 공식적인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결론내렸다. 흥남에서 원폭실험을 했는데도 「그룹 쓰리」가 그곳에 남았을 방사능 낙진을 놓쳤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아무리 새벽이었어도 그만한 폭발음과 섬광을 흥남 주민 그 누구도 목격하지 못했다는 것 역시 의문이다.

『저 역시 의문점이 많습니다. 만약 원자폭탄이 흥남에서 개발됐다면 북한의 핵보유능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일지도 모릅니다. 그 책임을 일본이 피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김씨는 미국 수트랜드의 「국립자료보관소 분원」에 있는 「흥남관련비밀자료」 등을 참고해 자신의 주장을 더욱 정교화시키겠다고 밝혔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1996/08/22/1996082270324.html

 

 

 



「旧日本軍が終戦直前、原爆実験?」 朝鮮半島東岸沖合 GHQに極秘情報(西日本新聞)
1999年8月6日(金) 10時45分

 

    "구일본군이 종전직전 원폭실험?" 조선반도 동해 앞바다 GHQ에 극비정보(서일본신문)


1999年8月6日 (金) 10時45分


 [워싱턴 5일 시사] 구 일본군이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직전, 현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조선)령으로 되어있는 조선반도 동안(東岸)의 흥남앞바다에서 원폭실험을 실시했다는 정보를 미군이 파악해, 전후 일본을 점령통치한 연합국군총사령부(GHQ)등이 비밀리에 조사했다는 사실이 미국립공문서관에서 시사통신이 입수한 미군기밀문서(약 300 페이지)로 밝혀졌다. 1947년의 미군방첩기관의 보고는 "원폭과 유사한 폭발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지만, 진상은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들 문서를 통해, 미군은 흥남에 있던 화학콤비나트에서 일본해군이 비밀리에 핵개발을 추진했을 것으로 보고, 조선전쟁(50~53년)을 틈 타 의혹시설을 철저히 폭격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미군범죄 조사부대의 데이비드 스넬씨는, 구 일본군이 45년 8월 12일 새벽, 흥남 앞바다 30여 킬로미터의 해상에서 원폭 실험을 실시해, 거대한 버섯구름이 생겼다는 정보를, 서울에서 전 일본군 정보장교로부터 입수. 퇴역 후인 46년, 미국 조지아주 아틀란타의 신문에 공표했지만, 일소에 부쳐졌다.

 그러나, 주한미군사령부 방첩부대가 47년 1월 16일자로 작성한 보고는, 조사결과로서, "일본군은 조선 북부 동해안 앞바다에 띄운 작은 배에서 폭파를 수반하는 실험을 했고, 원폭과 유사한 폭발이 일어났다. 관여한 과학자들의 이름도 (스넬 보고는)정확하다"고 지적, 과학자들은 구소련군에 의해 소련에 억류되었다고 전했다. 흥남은 8월 12일, 진공한 소련군에게 점령되었다.


 흥남에서의 일본군의 핵개발설에 대해, 45년의 GHQ문서는

 

 (1)일본군 복원자에 의하면, 흥남의 화학공장 현장에서 원자력 관련실험이 진행되었다

(2)일본해군은 흥남 화학공장의 비밀부문으로, "NZ계획"이라고 불리는 수소화합물에 의한 제트연료 실험을 실시했다 (3)소련에 의한 흥남 점령 후, 비밀시설이 소련군에 접수되어, 일소 양국 과학자의 공동연구가 행해지는 등의 정보를 들어, 철저조사를 명했다.


흥남에는 전쟁 전, 일본질소비료(칫소의 전신)의 대형 화학공장이 있어, 해군과 공동으로 중수 등을 생산했다.

 한편, 조선전쟁 중의 미군문서(1950년 12월 29일자)에 따르면, 미군은 흥남의 화학공장 시설에 공습을 가해, 시설의 95퍼센트를 파괴했다고 한다.[서일본신문 1999년 8월 6일]

            http://news.yahoo.co.jp/headlines/nnp/990806/loc_news/10450000_nnpnws01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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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문제의 포인트(일본 쇼와편) ― 제33화―  원폭투하, 천황에 대한 고발

2021-10-26 seiryuu https://cafe.daum.net/flyingdaese/Vz9V/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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