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3개
1/22
[통과하는 시간](시) - 교정본 B안
- 김정진
핏줄 따라 달달하게 되물림되는 즐거움의 유전자들
낮과 밤과 수다를 가득 채운 뒤
자식들의 웃음이
문득 멀어질 때
친근한 홀로와 쓸쓸함이 같이 사는
유서 깊은 적막의 집에서
나는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간다
발랄한 근황이 다정한 간격으로 나열된 표정과
명절의 온기는
창밖 풍경처럼 흘러가고
기차는
묻지 않고 마냥 달린다
상처와 기쁨의 내력 끊임없이 써 내려가는
인생은
함께였다가
각자의 이름으로 남는 것
짐짓 모른 척 돌아눕는 주름으로도 건너뛸 수 없는
이후의 시간은
설명되지 않은 채
몸으로 지나가야 하는 것
몇몇 허전과 처량이 함께 서식하는
외로움 대신
침묵을 데리고
하루의 무게를 견디는 것
쿵쿵 뛰는 생의 심장에 가닿기 위해
끝내 멈추지 않은 존재로
오늘의 나를 통과하는 것.
.2/22.
[기다림의 무게](시) - 교정본 B안
- 김정진
매정하고 냉혹한 시간의 손톱은
웅크린 저녁의 살갗 파고드는데
소식은 아직
길 위에 머물러 있고
뜨겁게 고집하는 절망이 눈뜨기 전에
새콤달콤한 그날의 속엣말과 달달한 상처 응시하며
무거운 하루
혼자서 등에 지고 간다
냉담하고 신경질적인 밤의 감정 앞에서
우리가 함께한 은유의 봄꽃은 피어나는데
말없는 그대의 침묵은 길어지고
가슴은
조금씩 안쪽으로 조여온다
그리움으로 유의미한 서사 이끌어 가고 싶어
사는 게 무엇이냐 묻는데
삶은 대답 대신
하루가 하루를 밀고 가고
보고픔으로 반짝이는 내일의 감각 풀어내며
나는 그 속을
조용히 건너간다.
.3/22.
[닮고 싶다](시) - 교정본 B안
- 김정진
거실엔
송산댁의 정감 어린 미소가
잘 익어 달콤한 초록의 풍경 입고
반짝이는 여름의 긴 손가락 노랗게 펴고 있는
한 묶음 해바라기로 앉아 있다
자식은 영원한 관심의 첫자리며 눈부시게 박제된
사진 속 어머니랑
오며 가며 스치는 하루가
자꾸 나를 돌아보게 한다
삶이 건네는 따스하고 비밀스런 기호 해석하며
잘 살고 있느냐고
말 대신 눈빛으로 묻는다
오후의 발걸음 정갈하게 하는 아름다운 기척 느껴져
가만히 어머니 앞에 서면
자꾸만 작아지는 자화상
어머니를 닮는 일,
절반의 햇살과 절반의 달빛 끌어와도
그건 아직 펼치지 못한 염원
태양의 문장과 해바라기 둘레를 배회하는
어머니의 뜨거운 숨결이
잠시 가슴속 파도 되어
밀려온다
유년의 뼈와 살이 통통하게 차오르던
아득한 보고픔의 경계에서
소회하는 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4/22.
[꽃씨](시) - 교정본 B안
- 김정진
입덧하는 풍습으로 두근거리는
열 달의 신전에서 빠져나온 핏줄의 문장들이
다정함으로 모두가 함께였다가
각자의 문패를 향하여 떠난 후
그 빈자리에 씨앗 하나 심어져 있다
몸속에 간절한 등 켜서 심장을 만들고
몸 안에 초승달 들여 눈망울 짓던
그리움의 시간은
설명되지 않은 채
일상은 물음표 달고
한낮을 접어 가며
오후로 건너간다
휩쓸려 가는 맨발로 허공 걸으며
어딘가로 흘러간 바람의 아가들을 찾아나선
한 자락의 바람과
한 줄기 햇살이
한 뼘 남짓한 빈 가슴에 와 닿자
눈뜨는 보고픔이라는 꽃잎
욱신거리거나 눈물겨운 생의 뼈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사랑의 목록 공유하는
자식들이 서로의 문패 앞에
도착하는 시간쯤이면
나는 꽃향에 취해
늘 핸드폰 만지고 있다.
.5/22
[꽃의 언어](시) - 교정본 B안
- 김정진
제 몸이 뭉근하게 달아오른 더위가
심심한 풍경을 베개 삼아 잠에 빠져든
초여름
물방울 매단 꽃대가
서서히 빛을 들어 올린다
졸음이 묻어나는 하품의 꼬리 자르고
환한 식물성의 생각을 씨줄과 날줄로 엮은
아침은
주홍의 온도로 열리고
눈부심은 말보다 먼저
도착한다
호기심 가득한 지상의 표정은
알록달록한 꽃망울의 감정으로 들떠 있고
실바람에 실린 향기는 뜨겁게 공명한다
발랄한 낮의 슬하에서 태양의 문장 편애하는
정원은
소리 없는 환희로 흔들리고
보는 이들의 가슴에서는
침묵의 함성이 자란다
대지의 피 이어받은 따스한 혈육을 위해
하늘 향해
그리움 걸어둔 채
꽃잎마다 시간 새긴다
존재는
마침내 꽃으로 피어난다.
.6/22.
[어떤 넋두리](시) - 교정본 B안
- 김정진
말대꾸하듯 할 말이 많은 아침의 신념과
집요하게 고집스런 저녁의 욕구를
뜬구름이라
말하지 마
몽유의 낮과 밤을 돌아 나온 꽃시절이
눈물겨운 몸짓으로 뚝뚝 떨어진다고 해서
변하지 않은 건 없다고
말하지 마
예측할 수 없는 내일의 취향 존중해야 하기에
태양은 다시 떠오르지만
첫사랑으로 뜨거워졌던 달달하게 편향된 자아는
모두 사라지는 건 아니기에
시침과 분침 덧입고 그리움 증명하는
그날의 예법대로 침묵과 외로움 끌어당기며
그나마 살고 있는 거야.
7/23
[박덕은 미술관에서](시) - 교정본 B안
- 김정진
가는 길이 곱다
사계절의 빛 갈아입는 강천산
쏠리며 비스듬히 기울어지는 방식으로
친애하는 기슭과 비탈을 놓아 기르는
수려한 능선마다
예술의 숨결 머문다
확장되는 감성의 구체적인 서술이
색과 선과 추상으로 표정 짓는 그곳
박덕은 화백이 빚어낸 공간 하나
대자연을 화폭 삼아
글과 그림이 서로 손 잡고
스스로 즐거워하는 상상의 방향에서
내밀한 감각이 지상에 도착하면
빛은 색이 되고
색은 다시 바람이 되어
벽과 창을 지나 흐른다
몽환의 방에서 예민해진 촉수로 날을 세운
어느 뜨거운 열정이 살아 있기에
먼 길 돌아온 발걸음마저
홀연히 멈춰 서게 하는가
은밀하게 발화하는 서정의 목소리와
산빛에 마음 적시며
여태 풀지 못한 물음 하나가 옅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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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통과하는 시간](시) - 교정본 A안
- 김정진
자식들의 웃음이
문득 멀어질 때
나는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간다
명절의 온기는
창밖 풍경처럼 흘러가고
기차는
묻지 않고 마냥 달린다
인생은
함께였다가
각자의 이름으로 남는 것
이후의 시간은
설명되지 않은 채
몸으로 지나가야 하는 것
외로움 대신
침묵을 데리고
하루의 무게를 견디는 것
끝내 멈추지 않은 존재로
오늘의 나를 통과하는 것.
2 [기다림의 무게](시) - 교정본 A안
- 김정진
소식은 아직
길 위에 머물러 있고
무거운 하루는
혼자서 등에 지고 간다
말없는 그대
침묵이 길어질수록
가슴은
조금씩 안쪽으로 조여온다
사는 게 무엇이냐 묻다
대답 대신
하루가 하루를 밀고 갈 때
나는 그 속을
조용히 건너간다.
3. [염원을 펼치다](시) - 교정본 A안
- 김정진
거실엔
송산댁의 정감 어린 미소가
한 묶음 해바라기로 앉아 있다
사진 속 어머니랑
오며 가며 스치는 하루가
자꾸 나를 돌아보게 한다
잘 살고 있느냐고
말 대신 눈빛으로 묻는다
평범하게 산다는 일은
생각보다 오래
접어 두어야 하는 염원 같은 거
끝내 건너지 못한 강을
자식에게 대물림하는 거
가만히 어머니 앞에 서면
자꾸만 작아지는 자화상
어머니를 닮는 일
그건 아직
펼치지 못한 염원
잠시
어머니의 숨결이
가슴속 바다 되어
밀려왔다가
아득한 경계에서
소회하는 나는 다시
하루처럼 제자리로 돌아온다.
4. [꽃씨](시) - 교정본 A안
- 김정진
자식들의 웃음이
남겨 놓은 그림자 뒤에
일상의 시간으로 서 있다
명절의 온기는
창밖 풍경처럼 흘러가고
시간은 고요로 앉아 있다
모두가 함께였다가
각자의 문패를 향하여
떠난 후 빈자리
약속할 수 없는 시간은
설명되지 않은 채
일상은 물음표 달고
시간을 접어 가며
순간을 건너간다
한 자락의 바람결과
한 줄기 햇살 같은
한 뼘 남짓한 가슴에
꽃씨인가
서로의 문패 앞에
도착하는 시간쯤이면
나는
늘 핸드폰 만지고 있다.
5. [꽃의 언어](시) - 교정본 A안
- 김정진
물기 스민 초여름
물방울 매단 꽃대가
서서히 빛을 들어 올린다
아침은
주홍의 온도로 열리고
눈부심은 말보다 먼저
도착한다
실바람에 실린 향기
정원은
소리 없는 환희로 흔들리고
보는 이들의 가슴에서는
침묵의 함성이 자란다
하늘 향해
그리움 걸어둔 채
꽃잎마다 시간 새기며
존재는
마침내 꽃으로 피어난다.
6. [인생](시) - 교정본 A안
- 김정진
뜬구름이라
말하지 마
변하지 않은 건 없다고
말하지 마
태양은 다시 떠오르지만
모두 사라지는 건 아니기에
그나마
살 수 있는 거야
그래,
그렇지.
7 . [세방낙조](시) - 교정본 A안
- 김정진
먼 길 달려와
전망대에 서면
섬과 섬 사이
어깨춤 추며 달려온다
섣달의 하루가 서서히
자신을 접자
데크 위 솟대가
한 줄로 서 있다
겨울바람에 조여드는 하얀 아픔
따스한 시선 모으면
해조음 따라
바다의 울음 닮은 당신
경계 없는 물빛
사방으로 풀어놓은
손가락 섬 발가락 섬이
물꽃으로 피어
깊은 심장 흔드는 파도
붉은 노을이
물 위에 닿는 동안
바다는
아무 말 없이 저물어 간다.
8. [고요가 머무는 저녁](시) - 교정본 A안
- 김정진
햇살이 꺾인 자리
주홍빛 불을 단 꽃들이
저녁 향해
가만히 서 있다
오종종 모인 빛
사방은 서녘으로 기운
시간 속에서
그리움은
소살소살 피어오른다
등을 내민 고요
그 한가운데서
톡
꽃잎 하나 떨어진다
저녁은 그 순간
더 깊어진다.
9. [흔들리는 쪽](시) - 교정본 A안
- 김정진
속마음은
보일 듯 말 듯
언제나 한 박자 늦게
도착한다
애가 타는 시간
말은 쉽게 닿지 않고
바람이 지나가며
그 자리 흔든다
흔들리는 것들은
저녁의 나무들처럼
먼저 몸 기울인다
기다림은
소리 없이 익어가는 것
나는 그 안에서
내가 흔들리고 있음을 안다
방향의 바람이
나만을 스치지 않는다는 것을.
10. [울 엄마](시) - 교정본 A안
- 김정진
봄꽃들이
여일하게 피고 지고
그때는 좋았어
무더운 여름 한바탕 소동은
이제 기억조차 힘들어
아흔셋,
한창 심한 무더위
정신줄 놓았다
"조실아"
살림하는 여자는
집안일에 게을리하면
안 된다
어미가 좋아도 일주일 뒤 틈틈히 오거라
말씀은 그리 해놓고
아파트 창가 앉은뱅이
의자 위에 무거운 몸
내려놓은 채
늘
기다린다
엄마 손 놓치면
내민 손 허공에 저을까 봐
이틀이 멀다 하고
상무 길 달려간다
고운 살결 이쁜 몸매
어디 갔는지
지난 세월 훈장인 듯
흔들거린 몸매 고치려
안간힘 쓸 때
먼 훗날
내 모습 보는 듯 바라보는
자식 마음
너무 아프다.
11 . [사랑하게 된 것들](시) - 교정본 A안
- 김정진
삶에 결정적인 순간이라
부를 만한 날들은
대개
설렘의 얼굴을 하고 온다
나는
나를 갈고 다듬는
연습 속에서
또 하루를 낳는다
그리움과 맞서는 동안
詩 하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마음 먼저 기운 쪽으로
길이 열리면
망설임 데리고
그 길 나선다.
12. [홍매실 발효액](시) - 교정본 A안
- 김정진
늦은 유월
탐스런 홍매실 가지가
지지직거린다
민낯이 마냥 수줍은 듯
발그라니 웃는 얼굴들
널따란 옹기에 버무려
초록 바람 한 바가지 부어
계절이 통과하는 동안
살아 있는 생명체인 듯
주홍빛들이
뽀글뽀글 올라온다
백일의 낮과 밤이
노을로 가라앉은 너
"사람에게 이로우면 발효,
쓸모없거나 해가 되면 부패"
이처럼
인간도 인간에게
이로워야 하지 않을까
우리 집 푸른 식탁에
새콤한 향기 머금은 채
여름은 가족의 건강 위해
발효로 달리고 있다.
13. [봄의 숨결](시) - 교정본 A안
- 김정진
차가운 물방울이
마음문 두드리는 날
구도로 접어드는 길
좌우로 물오른
벚나무 산수유
젖은 기운 머금은 채
스쳐지나며
봄 건넨다
대지의 숨이 풀리는 계절
이십곡리 지나
운곡마을로 접어드는 길
낯익은 정겨움이
발걸음마다 스민다
숲은
겨울의 깊은 숨 덮어두고
대지의 맥박처럼
고요히 숨쉬고 있다
나의 生 일대기의 빛깔은
과연 어떤 색일까
지금
대지는 봄으로 피어나고 있다.
14. [빛 한줌 놓아준 자리](시) - 교정본 A안
- 김정진
아득한 계절이 바뀌는 사이
잠시
발걸음 멈추었다
스쳐간 날들의 잔영이
고요히 내려앉은 즈음
저만치
햇살 같은 얼굴
따스한 기척으로 서 있다
너와 나
마주선 자리
먼 길 에둘러 돌아올 때
서로의 어깨에
빛 한 줌
가만히 놓아 주고 싶다.
15 . [숲길의 말](시) - 교정본 A안
- 김정진
가슴이 타들어 가는지
평온이 자꾸 무너진다
어제와 오늘 사이
이토록 멀게만 느껴지는 길
누굴 탓하랴
나를 돌아보는 시간
사랑은 숲길 같아서
걷지 않으면
서서히 사라진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물음표 같은 마음 하나
서로의 자리에서
말을 아끼며 서 있다
견디는 거
이 또한 사랑인가.
16. [꿈의 외벽](시) - 교정본 A안
- 김정진
임자도 목섬 선상에 오르면
큰 섬, 작은 섬
낯선 그리움 안고
손짓한다
주머니 속에
남 모르게 만져보는 시간
따스하게 있다
높고 낮은 에움길
재원도 둘레길
정겨운 개망초 무리
발목 잡고
달아오른 얼굴도
지친 걸음도
생의 한 모퉁이
손 잡는다
휘돌아오는 포구
언제나 부딪히며
다시 출발하는
향긋한 설렘으로 남아 있다.
17 . [마음에 꽃씨](시) - 교정본 A안
- 김정진
거실에 사진 한 점
미소가 꽃송이로 있다
사진 속 얼굴
오며 가며 거실에
시작되는 하루
고요가 낮은음자리로
아득한 과거가 가깝게
내려앉은 자리
스침으로 끌어당기는
필연처럼
길목마다 마주한다
생전의 그 모습
괄호 안에 별을 달고
거실은 날마다
미소가 꽃 피는 봄
송산댁 내 어머니는
언제나 꽃씨로 거기 있다.
18. [오월, 다시 환해지는 건물](시) - 교정본 A안
- 김정진
지구의 한 모퉁이가 환하다
화순 자치샘로 19번지 건물
한때는 청춘을 빗질하다
어느덧 반세기 지나
비바람에 온몸이 지친
당신
빛바랜 모습에 측은한
시간들
민낯의 얼굴 다시 붓질한다
금 간 벽 사이로 스미던
지난 계절의 한숨
낡은 창문마다
오래된 웃음이 햇살처럼 깃든다
푸른 숨결 날개 달아
봄빛에 말려 가며
새롭게 단장해 가는 자화상
오월의 초록보다
당신의 몸짓이 더 환하다.
19. [일상 위에 간밤](시) - 교정본 A안
- 김정진
이른 아침 일어나 따끈한
물 한 잔으로 목 축인다
거실에 나와 보니 눈이
다 녹았다
화순읍 봄 오일장
시장 상인들만 뜸뜸히 보이고
진눈깨비는
숨바꼭질하듯 창밖에 날린다
새벽부터 거리에
사람들이 피워 가는 꽃
구도로 버스 길에 산수유꽃이
아득하고 고요하여
별 같은 아침인데
춥고 긴 뒤척이던 간밤은
길 위에 오고 가는 애증
숨바꼭질한 저 눈송이였나.
20. [옛집의 추억](시) - 교정본 A안
- 김정진
우리 집에서
일직선으로 바라보면
커다란 옛집 대문이
손때 묻은 채 굳게 닫혀 있다
노을빛으로 물든 집
우리가 걸어온 시간의 방향을 틀면
밀려오는 회한의 잔상들
붙들지 못한
계절이 몇 해 지나가고
변하지 않은 것은 구 주소뿐
무수한 감정이 덧칠하며
피고지는 시간꽃으로
행간의 무늬 이루고
추억이 환히 대문 열고 나온다
한생 붙잡으면
과거와 현재는 일생을 이룬다
느린 시간에 머물고 싶은 게
인생
산다는 건 어제와 오늘을 잇는 일
풋풋한 그리움이
매화꽃 향기 따라 퍼져 간다
추억이 기억하는 반세기가
옛집 거기에 있다.
21. [강진 남미륵사](시) - 교정본 A안
- 김정진
시 한 줄 건져 보려고
친구와 둘이 남미륵사 가는 길
도로변 좌우에 심어진 유채꽃이
길손을 반겨 맞고
노란 빛은 온통 들녁을 밀어내고 있다
멀리 아미타불의 존엄한 눈빛
붉은 영산홍과 수서 해당화에 닿아
피안의 세상을 이루고 있다
영산홍은 서로 다투는 듯
담장 너머로 기웃거리고
우리의 발걸음까지 물들인다
만발했다거나
막판 흐드러졌다거나
하는 환호는
고작 인간의 감성일 뿐
그 찬란함에 숨이 멎는다
꽃멀미 일으키는 터널은
루미나리의 환상처럼
피부가 아릴 만큼 진하게 휘감는다
마치 환희의 문이 열리듯
만개한 꽃들의 향연
산문 밖까지
아득한 계절이
바연하게 물들이고
빛의 반대편으로 어둠이 들면
꽃을 읽었던 마음에
詩가 들어오듯
별이 내린다.
22. [사랑이 머문 자리](시) - 교정본 A안
- 김정진
고요가 허공 층층이
집을 짓는다
한 귀퉁이
웃음꽃 피어나던 곳
손길 머물던 인형과
솜사탕 같은 웃음
작은 발자국 따스한 기척이
산처럼 울려 퍼진다
할머니
품 안에 포근히 잠들던
그날의 오후
마음 한 켠
소리 없이 젖어 오고
오월의 햇살처럼
따스했던 기억들
커튼 너머
아직도
물결처럼 일렁인다.
~~~~~~~~~~~~~~~~~~~~~~~~~~~~~~~~~~~~~~~~~~~~~~~
원본
1 통과 하는 시간
자식들의 웃음이
문득 멀어질 때
나는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 간다
명절의 온기는
창밖 풍경처럼 흘러가고
기차는 묻지 않고 달린다
인생은
함께였다가
각자의 이름으로 남는 길
이후의 시간은
설명되지 않은채
몸으로 지나가야 하는것
외로움 대신
침묵을 데리고
하루의 무게를 견딘다
끝내 멈추지 않은 존재로
오늘의 나를 통과한다
2 기다림의 무게
소식은 아직
길 위에 머물러 있고
무거운 하루는
혼자서 등에 지고 간다
말없는 그대
침묵이 길어 질수록
가슴은 조금씩 안쪽으로
조여온다
사는게 무엇이냐 묻다
대답 대신
하루가 하루를 밀고가고
나는 그 속을
조용히 건너 간다
3. 염원을 펼치다
거실엔
송산댁의 정감 어린
미소가
한 묶음 해바라기로 있다
사진속 어머니
오며 가며 스치는 하루가
자꾸 나를 돌아보게 한다
잘 살고 있느냐고
말 대신 눈빛으로 묻는다
평범하게 산다는 일은
생각보다 오래
접어 두어야 하는 염원같은거
끝내 건너지 못한 강을
자식에게 대물림하는 일인지 모른다
가만히 어머니 앞에 서면
자꾸만 작아지는 자화상
어머니를 닮는 일
그건 아직
펼치지 못한 염원
잠시
어머니의 숨결이
내 안에 바다가 되어
밀려 왔다가
아득한 경계에서
소회하는
나는 다시
하루가 제자리로 온다
4. 꽃씨
자식들의 웃음이
남겨 놓은 그림자 뒤에
일상의 시간으로 있다
명절의 온기는
창밖 풍경처럼 흘러가고
시간은 고요로 있다
모두가 함께였다가
각자의 문패를 향하여
떠난 후 빈자리
약속할 수 없는 시간은
설명되지 않은채
일상은 물음표를 달고
시간을 접어 가며 순간을
건너 간다
한자락의 바람결과
한 줄기 햇살 같은
한뼘 남짓한 가슴에
꽃씨인가
서로의 문패 앞에
도착하는 시간 쯤이면
늘 나는
핸드폰을 만지고 있다
5. 꽃의 언어
물기 스민 초 여름
물방울을 매단 꽃대가
서서히 빛을 들어 올린다
아침은
주홍의 온도로 열리고
눈부심은 말보다 먼저
도착한다
실 바람에 실린 향기
정원은
소리없는 환희로 흔들리고
보는 이들의 가슴에서는
침묵의 함성이 자란다
하늘을 향해
그리움을 걸어 둔 채
꽃잎마다 시간을 새기며
존재는
마침내 꽃이 핀다
6. 인생
뜬 구름이라 말하지말아요
변하지 않은 건 없다고
말하지 말아요
태양은 다시 떠오르지만
모두 사라지는것은 아니기에
그나마
살수 있는 거야
그래,
그렇치
7 . 세방낙조
먼 길 달려와
전망대에 서면
섬과 섬 사이
어깨 춤 추며 달려온다
12월의 하루가 서서히
자신을 접고
데크 위 솟대가
한 줄로 서 있다
겨울 바람에 조여드는 하얀 아픔
따뜻한 시선 모으면
해조음 따라
바다의 울음 닮은 당신
경계없는 물 빛
사방으로 풀어 놓은
손가락 섬 발가락 섬이
물꽃으로 피어
깊은 심장을 흔드는 파도
붉은 노을이
물위에 닿는 동안
바다는
아무 말 없이
저물어 간다
8. 고요가 머무는 저녁
햇살이 꺾인 자리
주홍빛 불을 단 꽃들이
저녁을 향해
가만히 서 있다
오종종 모인 빛
사방은 서녘으로 기운
시간 속에서
그리움은
소살 소살 피어 오른다
등 을 내민 고요
그 한가운데서
툭
꽃 잎 하나 떨어진다
저녁은 그 순간
더 깊어 진다
9. 흔들리는 쪽
속 마음은
보일듯 말 듯
언제나 한 박자 늦게
도착한다
애가 타는 시간
말은 쉽게 닿지 않고
바람이 지나가며
그 자리를 흔든다
흔들리는 것들은
저녁의 나무들처럼
먼저 몸을 기울인다
기다림은
소리없이 익어 가는것
나는 그 안에서
내가 흔들리고 있음을 안다
방향의 바람이
나 만을 스치지 않는다는 것을
10. 울 엄마
봄 꽃들이
여일하게 피고 지고
그때는 좋았어
무더운 여름 한 바탕 소동은
이제 기억조차 힘든 나
아흔 셋,
한창 심한 무더위
정신줄 놓으셨다
" 조실아"
살림하는 여자는
집안 일에 게을리 하면
안됀다
어미가 좋아도 일주일 뒤 틈틈히 오거라~
말씀은 그리 해놓고
아파트 창가 앉은뱅이
의자위에 무거운 몸
내려놓은 채
늘
기다리신다
엄마 손 놓치면
내민 손 허공에 저을까봐
이틀이 멀다 하고
상무 길 달려 간다
고은 살결 이쁜 몸매
어디 갔는지
지난 세월 훈장인듯
흔들거린 몸매 고치려
안간힘 쓰실때
먼- 훗날
내모습 보듯 바라보는
자식 마음
너무 아프다
자연의 섭리라지만
11 . 사랑하게 된 것들
내 삶에
결정적인 순간이라 부를만한 날들은
대개
설램의 얼굴을 하고 온다
나는
나를 갈고
다듬는 연습 속에서
또 하루를 낳는다
그리움과 맞서는 동안
詩 하나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림하나 끝내 놓지 못했다
마음이 먼저 기운 쪽으로
길은 열리고
망설임을 데리고
그 길을 나선다
12. 홍매실 발효액
늦은 유월
탐스런 홍매실 가지가 지지직 거린다
민 낯이 마냥 수줍은듯
발그라니 웃는 얼굴들
넓다란 옹기에 버무려
초록 바람 한 바가지 부어
계절이 통과하는 동안
살아있는 생명체 인듯
주홍빛 기포들이 뽀글 뽀글 올라 온다
백일의 낮과 밤이
주홍빛 노을로 가라앉은
너
"사람에게 이로우면 발효요 쓸모없거나 해가 되면 부패라 했다"
이 처럼 인간도 인간에게 이로워야 하지 않을까
우리집 푸른 식탁에 새콤한 향기 머금은 채
여름은 가족의 건강을 위해
발효의 속도로
안으로 달린다
13. 봄의 숨결
차가운 물 방울이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날
구도로 접어드는 길
좌우로 물오른
벗나무와 산수유
젖은 기운을 머금은 채
스쳐 지나며
봄을 건낸다
대지의 숨이 풀리는 계절
이십곡리를 지나
운곡마을로 드는 길
낯 익은 정겨움이
발걸음 마다 스민다
숲은
겨울의 깊은 숨을 덮어 두고
대지의 맥박처럼
고요히 숨 쉬고 있다
나의 生 일대기의 빛깔은
과연 어떤 색일까
지금
대지는 봄이 피어나고
있다
14. 빛 한줌 놓아준 자리
아득한 계절이 바뀌는 사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스쳐 간 날들의 잔영이
고요히 내려앉은 즈음
저 만치
햇살 같은 얼굴
따스한 기척으로 서 있다
너와 나
마주 선 자리
먼 길 에둘러 돌아올 때
서로의 어깨에
빛 한 줌
가만히 놓아 주는 일
15 . 숲길의 말
가슴이 타들어 가는지
평온이 자꾸 무너진다
어제 와 오늘 사이
이토록 멀게만 느껴지는 길
누구를 탓하랴
나를 돌아보는 시간
사랑은 숲길 같아서
걷지 않으면
길은 서서히 사라진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물음표 같은 마음 하나
서로의 자리에서
말을 아끼며 서 있다
견디는건
이 또한
사랑이라 믿어야 하는지
16. 꿈의 외벽
임자도 목섬 선상에
오르면
큰섬, 작은 섬
낯선 그리움 안고
손짓 한다
주머니 속에
남 모르게 만져보는 시간
따뜻하게 있다
높고 낮은 에움길
재원도 둘레길
정겨운 개망초 무리
발목을 잡고
달아오른 얼굴도 지친
걸음도
생의 한 모퉁이
손을 잡는다
휘 돌아 오는 포구
언제나 부딧치며
다시 출발하는 향긋한
설램으로 남아 있다
17 . 마음에 꽃씨
거실에 사진 한 점
미소가 꽃송이로 있다
사진 속 얼굴
오며 가며 거실에
시작되는 하루
고요가 낮은 음자리로
아득한 과거가 가깝게
내려 앉은 자리에
스침으로 끌어 당기는
필연처럼 길목마다
마주한다
생전의 그 모습
괄호 안에 별을 달고
거실은 날마다
미소가 꽃 피는 봄
송산댁 내 어머니는
언제나 꽃씨로 있다
18.오월, 다시 환해지는 건물
지구의 한 모퉁이가 환하다
화순 자치샘로 19번지 건물
한때는 청춘을 빗질하다 어느덧
반세기가 지나 비바람에 온 몸이 지친
당신
빛 바랜 모습에 측은한
시간들
민낯의 얼굴을 다시 붓질한다
금 간 벽 사이로 스미던
지난 계절의 한숨
낡은 창문마다
오래된 웃음이 햇살처럼 깃든다
푸른 숨결 날개 달아
봄 빛에 말려가며
새롭게 단장해 가는 자화상
오월의 초록보다
당신의 몸짓이 더 환하다
19. 일상위에 간밤
이른 아침 일어나 따끈한
물 한잔으로 목 축인다
거실에 나와 보니 눈이
다 녹았다
3月의 화순읍 오일장
시장 상인들만 뜸뜸히 보이고
진눈개비는
숨바꼭질 하듯 창밖에
날린다
새벽부터 거리에
사람들이 피워 가는 꽃
구도로 버스 길에 산수유 꽃이
아듯하고 고요하여
별 같은 아침인데
춥고 긴 뒤척이던 간밤은
길 위에 오고 가는 애증
숨바꼭질한 저 눈송이였나
20. 옛집의 추억
우리집에서
일직선으로 바라보면
커다란 옛집 대문이 손때 묻은채 굳게 닫혀있다
노을 빛으로 물든 집
우리가 걸어온 시간의 방향을 틀면
밀려오는 회환의 잔상들
붙들지 못한
계절이 몇 해 지나가고
변하지 않은 것읏 구 주소 뿐이다
무수한 감정이 덧칠하며
피고 지는 시간꽃으로
행간의 무늬를 이루고
추억이 환하게 대문을 열고 나온다
한 생을 붙잡고
과거와 현제는 일생을
이룬다
느린 시간에 머물고 싶은 그게
인생이란다
산다는 것은 어제와 오늘을 잇는 일
풋풋한 그리움이
매화꽃 향기따라 퍼져 간다
추억이 기억하는 내 반세기가
옛 집에 있다
21. 강진 남미륵사
시 한줄 건져보려고
친구와 둘이 남미륵사 가는 길
도로변 좌우에 심어진 유채꽃이 길손을 반겨 맞고
노란 빛은 온통 들녁을 밀어 낸다
멀리 아미타블의 존엄한 눈빛
붉은 영산홍과 수서 해당화에 닿아
피안의 세상을 이루게 한다
영산홍은 서로 다투는 듯이 담장 너머로 기웃거리고
우리의 발걸음까지 물들인다
만발했다거나
만판 흐드러졌다거나 하는 환호는
고작 인간의 감성일 뿐
그 찬란함에 숨이 멎는다
꽃멀미 를 일으키는 터널은
루미나리에 환상처럼
우리를 감싸는데
피부가 아릴 만큼 진하게 나를 휘감는다
마치 환희의 문이 열리듯
만개한 꽃들의 향연을
무엇으로 필설할까
산문 밖까지 우리네 삶을 선연하게 물들이고
빛의 반대편으로 어둠이 들면
꽃을 읽었던 내 마음에
詩가 들어 오듯
별이 내린다
22. 사랑이 머문자리
고요가 허공 층층
집을 짓는다
한 귀퉁이 웃음꽃 피어나던 곳
손길 머물던 인형과
솜 사탕 같은 웃음
작은 발자국 따스한 기척이
산처럼 울러 퍼진다
할머니~
할머니~
내 품안에 포근히 잠들던
그 날의 오후
마음 한 켠 소리없이
젖어 오고
오월의 햇살처럼 따스했던 기억들
커튼 너머
아직도
물결처럼 일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