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섶에 오르다]
- 박덕은
누에가 섶에 올라 하얗고 둥근 집을 짓고 있다
누에는 성숙이라는 생生의 집 한 채 짓기 위해, 여러 번 허물 벗는 과정을 거친다
철 지난 옷 같은 욕심과 고집을 벗고, 어느 곳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곡선의 걸음을 이어간다
저 곡선의 걸음에는 꿈꾸는 환생을 향한 몇 령의 잠이 있고, 푸르게 사각거리는 뽕잎이 있고, 결 고운 한줌의 생각이 스며 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누에의 머리를 돌리며 토해내는 봄의 신트림 같은 젖빛 실이 곱다
성숙의 섶에 올라 '생의 아름다움'이라는 한 채의 집을 완성한다
비움의 철학으로 아름다운 삶을 보여 준다
누군가를 등에 업는다는 건 자신의 뼈와 심장을 빌려주는 일
업고 업히면서 완벽한 하나의 심장과 뼈가 되는 일
윤슬은 늙지도 않아 반짝이는 빗살문자를 수면 가득 써 내려가는데, 치매에 걸린 먼먼 기억 그 어디쯤에 물결체 가득한 냇가의 문장들이 살아 있을 거라 여기며 길을 걷는다
정겨운 고향 풍경을 온몸으로 필사한다
누에가 입으로 고치실을 뿜어내듯
봄밤을 빗질하는 빗소리 같기도 하고 여름날의 소나기 같기도 한 흰빛 실을 뿜어낸다
드디어 희고 둥근 집 한 채를 짓는다
따스한 저 발자국 소리를 따라가면 어린 시절이 냇물 속으로 첨벙 뛰어들던 풍경을 만날 수 있을까
깔깔깔 웃는 웃음소리가 유년의 섶에 오른다
행복이라는 집 한 채의 창밖에 보름달이 떠 있다
밤은 고요의 섶에 오르더니 달빛 실을 뿜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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