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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허들링]

작성자낭만대통령|작성시간26.06.23|조회수0 목록 댓글 0

시 [허들링 Huddling ]

 

       - 박덕은

 

눈보라 속에서 펭귄들이 한데 모여 있다

몸을 녹인 안쪽이 밖으로 나가면, 바깥쪽에서 추위에 떠는 쪽이 안으로 들어와 추위를 이겨낸다

서로의 몸을 밀착해 겹겹의 동그라미를 만든다

저 겹겹의 동그라미는 강추위를 무너뜨리고 강풍을 흩어지게 한다

눈보라와 겨울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겹겹의 동그라미가 안녕을 먹여살린다

발등에는 갓 태어난 알이 얹혀 있고 움찔움찔 자라는 소리가 있고 즐거운 상상으로 내일을 끌어당기는 고요가 있다

극한의 추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에서 몸으로 체온을 옮기며 천천히 자리바꿈을 한다

때때로 사는 게 힘들어 폭삭 늙어버리고 싶다며 넋두리를 쏟아놓기도 한다

폭삭 늙으면 아픔도 폭삭 늙어 슬픔의 기력이 없어질 거라고 한다

입구에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겹동백꽃이 피어 있다

매서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꽃은 겹겹으로 꽃잎의 몸을 밀착해 피어 있다

거기서 깊숙이 밀봉된 젊음과 한때의 설렘이 흘러나와 입꼬리를 올라가게 한다

눈보라는 다시 불어닥치고 발등에 놓인 알을 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겹겹의 동그라미를 만든다

뭉클과 울컥 같은 걸음으로 느릿느릿 자리바꿈을 한다

겹동백꽃의 꽃잎 같은 몸으로 나눔정신 같은 사랑으로 안으로 안으로 다시 밖으로 밖으로 따스한 동그라미를 그리며 추위를 이겨내고 있다

눈보라와 강추위는 계속 불어오지만 발등에 보금자리를 튼 알에서 눈밭을 걷는 뒤뚱뒤뚱과 꼼지락거리는 호기심이 자라 어느 날, 알을 깨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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