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실문예창작 낯설기 문학회
(지도 교수 박덕은)
[한복·36](시) - 교정본
- 이서현
새벽빛은 흰 저고리 깃에 내려앉아
무구한 꽃잎 바라보고
검은 치마는 아픈 세월 품어
역사 갈피에 넣어둔다
두 손에 든 태극기
흑과 백의 혼 살라
민족 지키고 나라 살리는
등불 되었다
총칼의 이름은
점점 희미해지지만
만세의 함성 속에
그 기개는 사라지지 않았다
한 땀 한 땀 이어진 옷깃에
선열들의 의지 살아 있고
치맛자락 스치는 바람은
아름다운 우리 강토에 향그럽게 피어난다.
[고구마 한 알의 주소](시) - 교정본
- 윤석채
산수동 골목 끝
빈집 한 채
저녁 햇살 붙들고 서 있다
봄은 몇 번이나 다녀갔지만
제비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처마엔 거미가 세월을 매달고
문턱엔 참새 한 마리 숨을 고른다
잡초 우거진 마당 끝에
도리깨 휘두르던 아버지가 보인다
그 소리가
계절의 등을 두드리던 날들
낮은 초가지붕 아래
새끼 꼬는 소리가 밤을 잇고
산비탈을 일구어 심은 고구마가
여덟 식구의 겨울을 익혀 갔다
굽은 등 하나와 닳은 손마디로
아버지는 계절의 강을 건넜고
가족은 그 어깨 디디고
다음 봄으로 걸어갔다
온 동네를 쏘다니던 아들이
몰래 고구마 훔쳐먹던 날
꾸중 대신
주머니에 고구마 하나를 더 넣어 주고
말없이 먼 산을 바라보던 눈길 속에는
자기 몫보다 먼저
자식의 허기 살피던
긴 겨울 하나가 있었다
어린 시절 초가집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는 아직 비어 있지 않다
해질녘이면
산수동 빈집에도
온기 하나 귀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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