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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런 문학회 2026년 06월 18일(목)

작성자낭만대통령|작성시간26.06.18|조회수0 목록 댓글 0

한실문예창작 싱그런 문학회
(지도 교수 박덕은)
[호박](시) - 교정본

- 강대문

담장에 기대놓은 바자 사이로
지친 잎새 매달고
허공 향한 저 가냘픈 손짓으로
가만히 뻗어 오른다

신록 움트던 그 계절
홀로 달빛 향해 기도하며
방향 잃은 어린 날 이끌어 주던
땀내음 가득 배인 저 등 너른 그림자

세월의 기둥 감아 돌며
묵묵히 자리 지킨 땀방울
그 지극한 체온으로
넝쿨마다 노랗게 꽃 피우며
둥글게 영글어 간다.



[갈매못 성지](시) - 교정본

- 강점숙

붉은 바다
하늘 삼키고 있다

번뜩이는 망나니들
무딘 칼날에 연꽃잎 날리고

오성五星의 용오름
온 바다 삼키니

은빛 오홍五虹
천지 밝힌다.



[나의 호수](시) - 교정본

- 소정희

뿔뿔이 흩어진다
종종걸음으로 모여들어
돌리고 돌리다 보면

겹쳐진 말들
불규칙한 맥박처럼
비틀거리고

소란 잠들 때
달빛 품고 살랑살랑
춤추는 물고기들

밤낮으로
온갖 재주 부린

진짜 멋진 시인.



[장미](시) - 교정본

- 임순이

담장 울타리마다
휘어감은 화려한 몸짓들
햇살의 이마 위로 올라선다

흠뻑 취해 흔들던
젊은 날의 초상화
불그스름히 지문에 펴 바른다

휘황히 곧추세운 마디 사이
숨어 우는 외침
꺾어져 정열로 나지막이 깔린다

현란히 부벼오는 오늘
안으로 까슬한 낯설음 감싼 채
하늘에서도 붉은 속내 드러내다가

고혹한 꽃잎들이
시선의 정수리에 널브러져 바람 부르면
연정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다.


[노처사의 꿈](산문) -박희순

 

 

 

[영수증](시) ㅡ교정본 

        ㅡ 전예라

긴 종이띠 뜯어낼 때 
드르륵, 찌개 끓는 소리가 났다 
오전 아홉 시의 구두굽 소리
오후 두 시의 식은 커피 한 잔이 
하얀 줄 위에 차례로 눕는다

숨 지나간 자리는 
빈칸으로 밀려나고 
붉은 리더기 불빛이 스칠 때마다 
짧게 긁히는 바코드, 
그 검은 줄들 사이로 
누군가의 갈비뼈가 잠깐 보인다 

잠시 만져졌던 약속은 접히고 
삼켜진 말들은 
잉크가 닿기 전에 혀 밑으로 번진다
 
품목명과 합계만 
마른 체온처럼 선명하다
계산대 벗어날 때 
카트의 바퀴가 무거워지고  
휴대폰으로 잔액 조회한다 

화면 구석에 남은 작은 얼룩들
오늘 덜어낸 표정이 
같은 화면 위에서 잠시 어두워진다
 
손바닥 안에는 
흰 여백 하나가 말려 있다
‘교환·환불은 영수증 지참시 가능’

지갑 속 문장들이 흐려지는 동안 
나는 그 조건 아래에 
오늘의 침묵을 접어 넣는다
“영수증은 버려 주세요”

주머니 속에서 
이름 접힌 자리마다 
다른 가격으로 구겨진다.



[귀래재歸來齋에 들며](시) ㅡ교정본 

           ㅡ 조휘문(계칠)

나에게로 돌아오는 길은
끝에 있거나 먼 데 있는 줄 알았다

내려앉을 바닥을 외면하고
푸른 하늘만 좇아
끊긴 연처럼 정처없던 지난 날들

비어 가는 마을
지워지는 낡은 문패들
대문까지 사라진 마을 어귀 돌담집
이제 겨우 남은 불씨 아홉 개만이 깜빡이는 마을

쓰러져 가는 고향집 
서까래와 대들보를 일으킨 뒤
내 노래와 시로 벽을 세웠다

별들이 
감나무까지 내려와 놀다가는 마당
바닥은 받아준다는 걸
가장 안전하게 안아준다는 걸
귀래재* 문턱을 넘으며 고개 끄덕인다

구름 흐르고 
바람 노래하여 사과 한 알 단물 드는 
그곳으로 돌아가리

시간은 흐르는 물 위에서 
새로이 반짝일 때
나는 햇살 소복한 한낮의 마당을 쓴다.

*귀래재(歸來齋):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얻은 이름으로 고향 옛집을 다시 세우고 붙인 당호


[노을꽃](시) ㅡ교정본 

            -조순주(순향)

은빛 서리 내리고 
가슴에 아린 봄 머물고 있는  
황혼의 장미

사랑은 
뜨거운 맹세 아닌 
말없이 내미는 따스한 손길

메마른 심장에 
은은한 향기 심어 주고 
너른 이해로 외로움 품어 준다

세월의 꽃송이 청춘보다 
더 진한 열정으로 
남는 생 마르지 않는 강 되리.



[밤꽃](동시)ㅡ교정본 

            - 정이성

아기자기한 꽃들 
어깨 부비며

울긋불긋 
이야기 나눈다

덩치 큰 나무 
꽃은 만발해도 친구가 없다

향기 찾아 꿀 따는 벌들 
입맞추며 다독 다독.

 

 

 

[귀래재(歸來齋)를 글방 이마에 붙이며](산문) - 교정본

            조휘문(계칠)

한때 이 마을은 옥천 조씨의 집성촌이었다. 앞산에는 조상 묘가 줄지어 섰고, 들판에서는 서른세 가구가 저마다의 삶을 일구었다.
서로의 이름과 얼굴을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고, 대문을 두드리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던 곳이었다. 같은 흙을 딛고, 같은 날숨과 바람을 마시며 살아온 마을이었다. 그러나 세월은 먼저 떠났다. 젊은 이들은 도시로 향했고, 한때 북적이던 마을은 소멸 대상 1호가 되었다. 논두렁과 골목길은 고요해졌고, 일곱 가구 가운데 아홉 명만 남았다. 고령화는 더 이상 통계가 아닌 현실이 되었고, 빈집은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
그제야 알았다. 마을이 사라진다는 것은 집이 비는 일이 아니라 기억과 뿌리가 묻히는 일이라는 것을. 사람과 땅 사이의 끈이 끊어지고, 집과 이름 사이의 언어가 멎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돌아왔다.
누구의 요구도 없었다. 어떤 명분도 없었다. 다만 남아 있는 책임과 기억이 나를 불러세웠다. 후손이 고향을 잊고 산다 해도, 누군가는 기억의 불씨를 남겨야 한다고 믿었다.
본가를 수리하기로 했다. 낡은 기둥과 지붕을 손으로 만지며 오래된 온기를 확인했고, 그 옆에 이층 건물을 새로 올렸다.
처음에는 형제와 자식, 손자들이 머물 수 있는 쉼터로 생각했으나, 그 공간은 차츰 문학과 클래식, 성악과 오페라, 우리 가곡과 시낭송이 머무는 방으로 변해갔다. 조상이 이 땅에서 곡식을 길렀다면 나는 이 땅에서 노래와 시를 길러보려 했다.
손수 마을을 지키고 가꾸며 건축을 하기까지의 여정은 길고 험했다. 가족도, 형제도, 지인도 선뜻 긍정하지 않았다. 혹한과 폭염 속에서 포크레인이 흙을 뒤섞었고, 그 과정에서 사고도 아픔도 있었다.
그러나 헛되다고 여긴 적은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나를 밀어올린 것은 문학의 힘이었다. “월든”은 젊은 날과 험난한 삶의 등불이 되어주었다. 숲과 호수, 밤하늘의 별과 달, 달빛이 창문을 들여다보며 미소로 화답하던 그런 산천을 찾아 기억과 뿌리를 찾아 자리를 잡은 것도, 언젠가 진정한 삶을 살지 않았음을 깨닫고 통곡하는 신세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만남의 자리를 인생이라 부르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자류동(自流洞)과 귀래재(歸來齋) 완공이 가까워질수록 이유는 더욱 선명해졌다. 이 마을이 떠나려던 이유도 있다. 아침이면 어르신들이 천천히 길을 걷고, 가을이면 감과 밤이 떨어진다.
외부에서는 이곳을 사라질 마을이라 부르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 있는 마을이라 믿는다. 사람이 떠난다고 뿌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이름이 희미해진다고 터전의 의미까지 지워지는 것도 아니다.
지키기로 했다. 끝까지 지키기로 했다. 후손이 돌아오지 않아도, 기억의 자리가 남아 있다면 충분하다. 지금은 이해되지 않더라도, 언젠가 삶이 그들을 다시 이끌지도 모른다.
뿌리를 파고 묻는 사람이어야 미래를 얻는 법, 그 길이 멀고 먼 길이기 때문이다.
이제 본가 옆 건물 글방 이마에 ‘귀래재(歸來齋)’라는 호를 걸려고 한다. 글을 쓴다는 사람으로서 오래전부터 홀로 펜을 들고 책을 읽는 방을 꿈꾼 적이 있었다. 뜻밖에 얻은 서재라 더욱 감회가 깊다.
빈 공간에 빈 마음을 앉힐 수는 없었다. 이 방을 드나들 때마다 나를 돌아보라는 뜻으로 당호를 붙이기로 했다. 지나친 도연명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며 “새도 날다가 지치면 둥지로 돌아온다”고 읊었다 한다. 나는 버릴 벼슬도, 내려놓을 명예도 없는 서생에 불과하지만, 순창 싱그런 문학회 문우들과 함께 시문학을 익힌 시간 속에 켜켜이 쌓인 생각들은 묵직하였다.
이제 그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다시 나에게로 돌아가려 한다. 남에게 보이는 나도, 남에게 보이고 싶었던 나도 아닌, 글과 시를 읽으며 조용히 본디의 나를 되찾는 나로. 그러하여 ‘귀래재’라 쓴다. 돌아오는 것은 마음도, 후손도 아니다.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오늘도 시와 문화 예술의 공간을 꿈꾸며, 빵 굽는 마을의 은은한 커피 향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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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꽃이 슬퍼요(동시)ㅡ원본 

            -정이성

아기자기한 꽃들 어깨 비비며
울긋불긋 이야기 나누는데

덩치 큰 나무 
꽃은 만발해도 친구  없어요

향기 찾아 꿀 따는 벌들 
입맞추며 다독거려요



[노을에 물든 꽃]ㅡ원본 

            -조순주(순향)

은빛서리 내리고 가슴에 아린 봄 머물고 있는  황혼의 장미

사랑은 뜨거운 맹세 아닌 말없이 내미는 따뜻한 손길로 곁에서 묵묵히 지켜준다

메마른 심장에 은은한 향기 심어 주고 넓은 이해로 외로운 마음 품어준다

세월의 꽃송이  청춘보다 진한 열정으로 남는 생 마르지 않는 강이 되리라.



귀래재(歸來齋)에 들며/원본

           조휘문(계칠)

나에게로 돌아오는 길은
끝에 있거나 먼 데 있는 줄 알았다

내려앉을 바닥을 외면하고
푸른 하늘만 좇아
끊긴 연처럼 정처없던 지난 날들

비어가는 마을
지워지는 낡은 문패들
대문까지 사라진 마을 어귀 돌담집
이제 겨우 남은 불씨 아홉 개만이 깜빡이는 마을에

쓰러져가는 고향집 서까래와 대들보를 일으켰다
내 노래와 시로 벽을 세웠다
별들이 감나무까지 내려와 놀다가는 마당

바닥은 받아준다는 걸
가장 안전하게 안아준다는 걸
귀래재* 문턱을 넘으며 고개 끄덕인다

구름 흐르고 
바람 노래하여 사과 한 알 단물 드는 
그곳으로 돌아가리라

시간은 흐르는 물 위에서 새로이 반짝이고
나는 햇살 소복한 한낮의 마당을 쓴다

*귀래재(歸來齋):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얻은 이름으로 고향 옛집을 다시 세우고 붙인 당호


1. 영수증 / 전예라/원본 

긴 종이띠를 뜯어낼 때 드르륵, 찌개 끓는 소리가 났다 오전 아홉 시의 구두굽 소리와 오후 두 시의 식은 커피 한 잔이 하얀 줄 위에 차례로 눕는다

숨이 지나간 자리는 빈칸으로 밀려나고 붉은 리더기 불빛이 스칠 때마다 짧게 긁히는 바코드, 그 검은 줄들 사이로 누군가의 갈비뼈가 잠깐 보인다 잠시 만져졌던 약속은 접히고 삼켜진 말들은 잉크가 닿기 전에 혀 밑으로 번진다 품목명과 합계만 마른 체온처럼 선명하다
계산대를 벗어날 때 카트의 바퀴가 무거워지고 휴대폰으로 잔액을 조회한다 화면 구석에 남은 작은 얼룩들과 오늘 덜어낸 표정이 같은 화면 위에서 잠시 어두워진다 손바닥 안에는 흰 여백 하나가 말려 있다

‘교환·환불은 영수증 지참 시 가능합니다’

지갑 속 문장들이 흐려지는 동안 나는 그 조건 아래에 오늘의 침묵을 접어 넣는다

“영수증은 버려주세요”

주머니 속에서 이름 하나가 접힌 자리마다 다른 가격으로 구겨진다

 

 

 

귀래재(歸來齋)를 글방 이마에 붙이며

            조휘문(계칠)

한때 이 마을은 옥천조씨의 집성촌이었다. 앞산에는 조상 묘가 줄지어 섰고, 들판에서는 서른세 가구가 저마다의 삶을 일구었다.
서로의 이름과 얼굴을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고, 대문을 두드리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던 곳이었다. 같은 흙을 딛고, 같은 날숨과 바람을 마시며 살아온 마을이었다. 그러나 세월은 먼저 떠났다. 젊은 이들은 도시로 향했고, 한때 북적이던 마을은 소멸 대상 1호가 되었다. 논두렁과 골목길은 고요해졌고, 일곱 가구 가운데 아홉 명만 남았다. 고령화는 더 이상 통계가 아닌 현실이 되었고, 빈집은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
그제야 알았다. 마을이 사라진다는 것은 집이 비는 일이 아니라 기억과 뿌리가 묻히는 일이라는 것을. 사람과 땅 사이의 끈이 끊어지고, 집과 이름 사이의 언어가 멎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돌아왔다.
누구의 요구도 없었다. 어떤 명분도 없었다. 다만 남아 있는 책임과 기억이 나를 불러세웠다. 후손이 고향을 잊고 산다 해도, 누군가는 기억의 불씨를 남겨야 한다고 믿었다.
본가를 수리하기로 했다. 낡은 기둥과 지붕을 손으로 만지며 오래된 온기를 확인했고, 그 옆에 이층 건물을 새로 올렸다.
처음에는 형제와 자식, 손자들이 머물 수 있는 쉼터로 생각했으나, 그 공간은 차츰 문학과 클래식, 성악과 오페라, 우리 가곡과 시낭송이 머무는 방으로 변해갔다. 조상이 이 땅에서 곡식을 길렀다면 나는 이 땅에서 노래와 시를 길러보려 했다.
손수 마을을 지키고 가꾸며 건축을 하기까지의 여정은 길고 힘났다. 가족도, 형제도, 지인도 선뜻 긍정하지 않았다. 혹한과 폭염 속에서 포크레인이 흙을 뒤섞었고, 그 과정에서 사고도 아픔도 있었다.
그러나 헛되다고 여긴 적은 없다. 그럴 때마다 나를 밀어올린 것은 문학의 힘이었다. “월든”은 젊은 날과 험난한 삶의 등불이 되어주었다. 숲과 호수, 밤하늘의 별과 달, 달빛이 창문을 들여다보며 미소를 화답하던 그런 산천을 찾아 기억과 뿌리를 찾아 자리를 잡은 것도, 언젠가 진정한 삶을 살지 않았음을 깨닫고 통곡하는 신세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만남의 자리를 인생이라 부르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자류동(自流洞)과 귀래재(歸來齋) 완공이 가까워질수록 이유는 더욱 선명해졌다. 이 마을이 떠나려던 이유도 있다. 아침이면 어르신들이 천천히 길을 걷고, 가을이면 감과 밤이 떨어진다.
외부에서는 이곳을 사라질 마을이라 부르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 있는 마을이라 믿는다. 사람이 떠난다고 뿌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이름이 희미해진다고 터전의 의미까지 지워지는 것도 아니다.
지키기로 했다. 끝까지 지키기로 했다. 후손이 돌아오지 않아도, 기억의 자리가 남아 있다면 충분하다. 지금은 이해되지 않더라도, 언젠가 삶이 그들을 다시 이끌지도 모른다.
뿌리를 파고 묻는 사람이어야 미래를 얻는 법, 그 길이 멀고 먼 길이기 때문이다.
이제 본가 옆 건물 글방 이마에 ‘귀래재(歸來齋)’라는 호를 걸려고 한다. 글을 쓴다는 사람으로서 오랫전부터 홀로 펜을 들고 책을 읽는 방을 꿈꾼 적이 있었다. 뜻밖에 얻은 서재라 더욱 감회가 깊다.
빈 공간에 빈 마음을 앉힐 수는 없었다. 이 방을 드나들 때마다 나를 돌아보라는 뜻으로 당호를 붙이기로 했다. 지나친 도연명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며 “새도 날다가 지치면 둥지로 돌아온다”고 읊었다 한다. 나는 버릴 벼슬도, 내려놓을 명예도 없는 서생에 불과하지만, 순창 싱그런 문학회 문우들과 함께 시문학을 익힌 시간 속에 켜켜이 쌓인 생각들은 묵직하였다.
이제 그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다시 나에게로 돌아가려 한다. 남에게 보이는 나도, 남에게 보이고 싶었던 나도 아닌, 글과 시를 읽으며 조용히 본디의 나를 되찾는 나로. 그러하여 ‘귀래재’라 쓴다. 돌아오는 것은 마음도, 후손도 아니다.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오늘도 시와 문화 예술의 공간을 꿈꾸며, 빻 굽는 마을의 은은한 커피 향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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