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말씀을 듣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작성자윤재|작성시간26.06.09|조회수21 목록 댓글 0


말씀을 듣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어느 주일학교에서 선생님이 어린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한 아이가 머뭇거리며 손을 들지 못하고 있자, 선생님이 그 아이에게 다정하게 물었습니다.
“너는 천국에 가고 싶지 않니?”
“네, 가고는 싶은데…. 엄마가 주일학교 끝나면 바로 집으로 오라고 하셨어요.”


웃음을 주는 이 유명한 이야기는, 말은 듣지만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때,
얼마나 엉뚱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지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오늘 복음이 전해주는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도 이와 비슷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서 주시겠다는 ‘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여기서의 ‘물’은 영혼의 목마름을 채워주고 영원한 생명의 원천이 되는 은총이었지만,
사마리아 여인은 목마를 때 갈증을 해소하고, 육체적 생명을 유지해 주는, 문자 그대로의 ‘물’로 알아들었습니다.


우리도 사마리아 여인처럼 주님의 말씀을 올바로 알아듣지 못한 채 엉뚱한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네가 행복하길 바란단다. 나를 믿고 내 말을 따른다면 행복하게 될 거야.”
“네. 당신을 믿고 따르겠으니 이제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게 해 주세요.”


주님께서는 사랑과 친교에서 비롯되는 영원한 행복을 약속하시지만,
우리는 물질적 소유와 세속적 성공과 같은 덧없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고 희망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타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을 요구하시지만,
우리는 이기심이 낳은 독점욕, 지배욕, 집착을 사랑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주님께서는 정의 위에 세워지는 평화를 바라시지만,
우리는 불의에 대한 침묵과 갈등의 은폐로 이룬 위선적 안정을 평화라 착각하기도 합니다.


주님 말씀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우리지만, 그 어리석음과 나약함에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대화하기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당신 말씀을 잘 알아들을 때까지 끊임없이, 그리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당신 말씀을 건네실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물의 영적 의미를 알아듣지 못하고,
유다인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의 첨예한 논쟁인 예배 문제로 화제를 돌렸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의 몰이해 앞에서 불쾌해하지도 않으시고, 대화를 멈추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녀의 관심사에서 시작하여, 다시 영과 진리에 대한 주제로 대화로 이끄셨습니다.


진리를 이해하는데 더딘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끝까지 기다려 주시는 주님의 인내와 사랑에 의탁한다면, 주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며, 하느님 영광에 참여하는 날을 맞이할 것입니다.


글 : 崔晶勛 Paul 神父 | Catholic 大學校 聖神校定 敎授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이제야 시작된 하느님과의 대화


저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님의 신앙 안에서 자라온, 소위 말하는 ‘천주교 진골(?) 신자’입니다. 
어릴 때부터 다녔던 성당은 제 삶에서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해 왔고,
초등부 복사단을 시작으로 중·고등부 학생회장, 청년 전례단장까지 다양한 직무를 맡아 봉사하며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불혹을 지나며, 믿음이 시간만큼 성숙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맡은 역할에는 충실했지만, 말씀 앞에서는 여전히 머뭇거리는 신자였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불교 신자였다가 개신교로 개종한 친구로부터 표지가 해질 때까지 성경을 여러 차례 완독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오랜 신앙 경력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 앞에서
유아세례를 받은 천주교 신자라는 자부심이 얼마나 껍데기에 불과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매주 미사에서 수동적으로 듣고 있던 독서와 복음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온 겉모습만 신자였습니다.


두꺼운 성경을 곧바로 펼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끄러움과 조급함을 내려놓고 어린이 만화 성경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성경 요약서를 탐독했고, 신부님께서 진행하시는 유튜브 성경 강의를 꾸준히 시청했습니다.
성경을 배경으로 한 명화들도 감상하며, 말씀에 조금씩 친숙해지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밑판을 다지고 성경을 펼치자,
말씀은 제 삶과 무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저에게 말을 거는 살아 있는 음성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했습니다.
“사비노야, 드디어 우리가 대화할 시간이 되었구나. 과거를 증명하지 말고, 오늘을 나와 함께 살아보자."


하느님께서는 이 작은 결심에 ‘과외’까지 붙여 주셨습니다. 회사 가톨릭 교우회에서 진행하는 성경 공부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점심시간마다 신부님께서 들려주시는 성경 이야기는 바쁜 일상에서도 하느님께 시선을 돌리게 해주는 소중한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가끔 일상에 밀려 말씀을 놓칠 때도 있지만, 분명히 알게 된 한 가지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시간은
언제나 ‘지금’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느님께 늦은 시작은 없습니다. 저도 하느님과의 대화가 이제 시작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아직 말씀을 펼치지 못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저처럼 작은 용기를 내어 성경에 친숙해지는 시간부터 가져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조금만 찾아보면 주변에는 이미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성경 공부 콘텐츠와 나눔의 자리가 있습니다.
“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시편 119,105) 그 빛 앞에 서는 순간이 바로 시작입니다.
오늘,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글 : 김지완 Sabinus | SBS A&T News 技術 T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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