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에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며칠 전 새벽길에 선선한 바람을 맞았습니다. 계절의 변화에 새삼 감탄이 나왔습니다. 한 밤 중에도 땀범벅이 되게 하던 열대야는 어디로 갔나! 누군가는 ‘처서의 매직’이라고 합니다. 아버지 말씀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아무리 여름이 더워도, 광복절만 지나가면 꺾인다고요. 자연의 이치에 다시 겸손해집니다. 또 이렇게 아직까지 계절의 구분이 뚜렷한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 감사해집니다. 예수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 16:2-3)
예수님을 적대시하던 당시 기득권자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며, 예수님이 구세주라면 표적을 보여달라고 할 때, 하신 말씀입니다. 이미 예수님은 그들에게 많은 표적을 보여주셨지만 그들은 또 보여달라고 떼를 썼습니다. 즉 그들은 표적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받아들이기 싫었던 겁니다. 그런 그들에게,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왜 영적인 표적은, 징조는 분별할 줄 모르느냐고 탄식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지난 여름, 세상은 이상 기온으로 소란했습니다. 비가 전혀 안 오는 곳에 폭우가 내리고, 가뭄이 없던 곳에 가뭄이 닥치고, 산불은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또 코로나 바이러스는 끝이 안보입니다. 이 모든 것이 과학기술 만능사상에 빠져, 인간의 능력을 과신하는 자만에 빠져, 하나님을 멸시한 인간에 대한 경고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잘난 척하는 인간은 한 시간만 비가 쏟아지면 모든 것이 마비되는 처지에 살고 있습니다.
우주적 종말이 아니더라도, 벌써 가을인 시간의 빠름 속에서, 개인의 종말을 되새기며 더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면서 말입니다. 오늘 내게 주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어떻게 살 것을 원하시는지,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서 말입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서 어느 수도원에 붙어있다는 금언이 생각났습니다.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네 차례’ 그렇습니다. 가을이 선선한 바람처럼 옵니다. 가을은 사색하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기도하기에도 좋은 계절입니다. 그 언젠가, 후회의 탄식으로 눈을 감지 않도록 오늘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2022년 8월 28일 주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