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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아리의 역사

작성자熊劍愛人(13기 한성구)|작성시간04.02.27|조회수1,114 목록 댓글 3
우선 이 글은 동아리 일원으로써 우리가 있기까지 우리 동아리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앎으로 해서 훌륭한 역사와 전통을 계승해 좀더 발전되 웅검회를 만들어 나가고자 여러 선배님들의 말씀과 문서를 참고로 해서 동아리 역사를 천명해 볼까합니다.
동아리 일원이라면 당연히 읽고, 우리 동아리가 어떤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았음 합니다. 나아가 이런 좋은 관례가 있었으니 앞으로도 웅검인들 모두 이런 글을 이어나갔음 합니다.
이런 글들이 모여지면 웅검회의 길라잡이가 될테니까요... (매해 동아리 행사는 많이 되풀이 되는 것을 가만하면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래의 글들은 선배님들께서 써놓은 글을 참고로 한 것임///

*劍道는 劍의 理法수련에 의한 人間形成의 道이다. 고로 劍道의 향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精神修養"과 검도의 기본을 理解하지 않으면 안된다. 검도는 하나의 武術이기 이전에 자기 자신에 대한 覺省과 修養을 전게로한 심신의 수양이기때문이다. "몸가짐"과 "마음가짐"의 겉과 속이 일치될 때 검도의 준비는 성립된다.
우리가 검도를 하기 위해서는 모든일에도 순서가 있듯이 그것에 대해 槪略的이긴 하나 몇 자 적었다. 그래서 앞으로 검도를 배우고사 하는 사람에게 귀감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우리 公州師範大學(현 공주대학교의 전신)劍道部는 위의 정신을 닦고자 검도부의 활성화를 위해 양춘성 사범(교사8단->현 범사 8단)님의 배려하에 윤공균(현 교사7단)사범님을 모시고 1988년도 부터 본 격적인 노력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1989년 수원에서 열린 제 70회 전국 체육대회에 충청남도 대표로 출전하게 되었다. 승부를 떠나 앞으로 百年大計를 바라보는 공주사대(현 공주 대학교),충남, 한국의 검도계의 발전을 위해 작은 출발을 보였다는 데에 대해 의의를 갖는다. 앞으로 검도부에 들어오는 신입회원과 正會員은 자신의 심신 수양과 공주사대 발전을 위해 학교에 다니면서 나중에 교사 생활을 하면서도 검도의 정신을 생활화하고 技術을 硏磨하는데 있어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초기 공주사대 검도의 발전을 위해 物心兩面으로 애써주신 현규섭 교수님, 이철원교수님, 양춘성 사범님, 윤공균 사범님께 심심한 감사의 뜻을 전한다. 덧붙여 앞으로 공주사대 발전을 위해 웅검회를 만든다.

1989년 11월 낙엽지는데서 지은이 씀(지은이가 누군지 모르겠습니다...죄송)


*나(13기 한성구)의 생각: 이 글을 미루어보면 우리 웅검회는 1989년도 전국체전을 참가했었답니다. 당시는 전국적으로 보면 성균관대학교, 경희 대학교, 대구 대학교, 조선대학교 등이 1부 리그 선수들이 활동하던 새대였기에 1부와 2부의 별구분없이 대회를 치뤘다고 합니다. 게다가 우리 웅검회 선배들이 충남의 대표로 출전했다는 자체가 웅검회의 일원으로 너무나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劍道部 熊劍會가 태어난지도 7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그러나 지금와서 돌아볼 때 검도부가 어떻게 생기고, 어떠한 과정을 통해 성장/발전 해왔는가를 알아볼만한 기록이 거의 없다.
우리가 지금까지 거쳐온 국민학교(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각각 학급일지가 있어서 날마다의 일을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검도부에는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은 아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그러한 기록의 필요성을 느껴 부회장을 맡게 된 사람이 이 책에 각각의 달에 있었던 행사나 중요한 일을 계속 적어 나가기로 했다.
앞으로 이 책에 기록을 맡게되는 사람은 한치의 소슬함도없이 임무를 수행하기 바란다.
1992년 3월 21일 토요일에........



1985년
* 검도부(웅검회) 탄생= 당시는 현재의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돌집 1층에 동아리 방이 있었다. 그 동아리 방도 검도부 만의 동아리 방이 아니라 낚시부와 같이 동아리 방을 사용하고 있었다.
여기서 현재 우리가 동아리방을 편하게 사용하게 된까닭은 선배님들께서 치열한 투쟁(술과 운동으로...)으로 쟁취를 하신 것이다. 낚시부 편에서 보면 우리 선배들이 워낙 와일드하기도 하시지만(?) 엄청난 검도부에 대한 애정과 검도데 대한 열의에 무릎을 꿇은 것이라 생각된다.

1986년∼1987 자세한 기록 없음

1988년
*윤공균(전 경희대학교 검도부 코치, 현 서울 대인관 관장)사범님을 모시고, 본격적인 활동시작

1989년
*조치원 고등학교와 합숙훈련
*수원에서 열린 제 70회 전국체전에 충남 대표로 참가
참가자: 2기 명달호, 서홍철, 윤태화, 황거성
3기 이현우
4기 박재인, 김수한, 남상인

1990년
*개강모임 및 신입생 모집을 본격적으로 시작함
*조치원 충무관에서 승단 심사
*동아리방에 바닥과 장판을 최초로 깔았다.


1991년
* 웅검회 최초이자 마지막 발표회 실시
*발표회에 대해: 윤공균 사범님 지도하에 연습함
사회: 5기 박준철(영/교), 6기 최정심(수/교)
조명과 지휘: 4기 박재인(중국어/교)
진행순서:1)이철원 교수님 격려사
2)양춘성 사범님 축사
3)가시나무새 찬조 출연(6기 박재우 선배)
4)연극: 각본 및 연출(5기 박재국), 주연(6기 곽도영),내용: 검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하자.
5)1학년 기본 시범
6)2/3학년 호구 운동 시범
7)본 시범
8)양춘성 사범님의 "本國劍法"시범
9)시합(4기 김수한VS4기 남상인)
10)묵상

*이 때 최초로 여름 합숙과 MT 실시, 경희 대학교 수원 캠퍼스 검도부에서 윤공균 사범님과 김재일 선생님을 모시고 경희대 검도부원들과 함께 훈련을 함.(참가자: 4기 김수한, 5기 홍상욱, 6기 이진희, 6기 최정심, 6기 김민영, 7기 강현숙, 7기 복대형, 7기 채혜남, 7기 박찬규, 7기 김은경

*하반기 회장 5기 홍상욱선배의 군입대로 6기 곽도영선배가 회장으로 선출, 부회장도 사퇴를 해서 7기 김은경선배가 다시 선출
*고려대 武虎會와 첫 교류전 시작(공주대 체육관)
*忠武期 검도대회 첫 출전(충남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검도부 첫 홍보로 시범을 보임
참가자: 6기 이진희, 7기 이명호, 7기 복대형, 7기 이덕희
장소: 운동장(92년 2월이었습니다.)

1992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속리산
*신입생 환영회: 동아리 방에서 간단히(막걸리 1말, 부침개)
*타격대 수리: 기존의 것을 보완해 허리부분을 만듬
*MT와 단합대회를 한학기에 한 번씩 가기로함
*발표회: 9월에 정기적으로 개최하기로함
*8월 여름합숙 2주 실시
*검도부 체계확립: 고문단, 회장, 부회장, 총무부, 훈련부, 홍보부
*정기모임: 2주에 1회씩 하기로함
*도복에 熊劍會마크와 글자를 새김
*체육관 분실 사고로 사용금지=>이 때부터 잔디밭 운동을 시작함
*명광식 사범님과 운동 시작
*충무기 검도 대회 참가
참가자:A팀=6기 곽도영, 5기 박준철, 6기 송석섭, 7기 하헌욱, 7기 복대형
B팀=5기 양성은, 5기 박재국, 5기 강정희, 8기 김대원, 8기 최순진
개인전=5기 박준철, 5기 곽도영, 7기 하헌욱, 7기 강현숙, 6기 한민영
*제1회 회장배 검도대회 출전
A팀=7기 복대형, 6기 송석섭, 7기 하헌욱, 5기 곽도영, 5기 박준철
B팀=8기 김시호, 7기 강승석, 8기 지희중, 8기 김해중, 6기 양성은


1993년
*선배들이 없어서 참 많이 고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선배님들: 6기 곽도형, 6기 송석섭, 6기 이진희
*당시에도 체육과의 텃새가 무척 심했고, 잔디밭 사용도 항의를 참 많이 들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94년
*당시 공주 교도소 보안과 주임이신 이만복 사범님과 운동을 함(교도소로 찾아가서 운동을 함)
*home comming day를 최초로 실시함(8월의 첫째주 토요일로...)
*동아리방 수리-바닥확대
*주장제에 대한 안건제안-운동을 체계화 하고자함(주장은 고문단에서...)
*충무기 참가
*호구식에 대한 공식적인 내용이 기재되어 있음-솔직히 94년도부터는 아니었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기록에는 이 해부터 공식적으로 한 것으로 나와 있다.

1995년
*회칙 제정을 함
*회원정리에 대한 회의
*주장제에 대한 회의
*겨울 합숙을 실시 했음
*도장에 들어가서 운동을 실시하기로 결정
내용: 96년부터 1학기는 학교에서 운동, 합숙부터 도장에 들어가 운동
*1학기 회비, 합숙비를 아껴서 호구를 장만하기로 정함
*졸업생 환송회는 종강모임에 하고, 종강모임은 시험 전에 하기로 정함
*회원 정리를 실시함
*출석부를 활용해서 운동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함
*회장을 이 때부터 2학년이 하기로 결정
*회장의 추천: 1학년을 제외한 선배누구나 한다.
*호구분실 사건
*선배님들께 정기 적으로 소식지나 편지 보내기
*신입생 오디션 보기 실시-실패
*낙관(동아리 도장) 만듦
*동아리 마크를 만듦
*정회원에게 마크를 달아주기로 함
*겨울합숙: 여러사람의 후원이 부족해서, 9기 박세원, 11기 백은창, 11기 박석재 3명이 도장에 다니면서, 교대와 함께 2주간 운동함

1996년
*신입생 홍보를 위해 입학식에 민주광장(현 중앙 도서관 자리)에서 9기 박세원, 11기 백은창, 11기 박종철, 11기 박석재가 운동을 실시
*도장에 나가지 않기로 결정
*식목일에 계룡산 야유회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1학년 기장 선출
*신입생 지도를 위해 집행부간 화합을 강조함(말맞추기)
*신입생에게 회비를 우선 받기로 결정
*동아리방에 도둑이 들었다-내부 소행은 아니었다.
*운동 장소가 없어서 잔디밭까지 이동해서 운동을 함
*회원 정리를 실시함
*잔디밭 사용금지로 운동장 배구 코트에서 운동을 실시함

1997년
*논산 황산 검도관에서 윤형권 관장님의 권유로 겨울 합숙을 실시함
*입학시에 동아리 홍보차 운동-11기 백은창, 11기 박종철, 11기 박석재, 12기 손경훈
*동아리 선배 군입대(휴가) 기념 운동
*교대 한검회와 발표회 참가 및 미팅 실시
*동아리 홍보기간이 있어 홍보활동 시작
*춘계 대학 연맹전 참가
*성년의 날 행사를 실시함
(이 때 발바닥 때리기가 실시됨=13기 한성구가 만듦)
*동아리 체육대회 실시
*급심사를 황산 검도관 윤형권 관장님이 봐주심-나중에는 인정이 되지 않아 공주에서 다시 급증을 받음

1998년∼현재
*웅검회 선배들의 대부분의 전통을 따르고 있고, 여러 가지 좋은 점들을 보안하여 14기 이종진, 16기 김창회, 17기 전원(13기 한성구 감수)이 혼혈의 힘을 기울여 "웅검회 길라잡이"를 만들었답니다. 앞으로 계속 보완해 나가야 할테지만 정말 많은 노력을 한것입니다.
앞으로 몇 년더 보안한다면 수학의 정석이 있듯이 웅검회의 정석이 되지 않을까? 생각듭니다.
부디 후배 여러분 동아리를 위해 계속 발전시켜 나가고, 이런 좋은 글들을 꼭 읽고, 계속 이어나갔으면 합니다.

편집을 마치며..........13기 한성구
추신: 잘못된 곳이 있음 공개 일기장에 남겨 주세요. 메일 주시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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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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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해경 작성시간 04.03.30 성구가 이렇게까지 알고 있는지는 몰랐다. 예전에 있던 동아리 기록장을 잃어버린 줄 알고 있었는데 혹시 성구가 보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구나 이 자료는 정말 소중한 자료인 듯 하니 이렇게 인터넷에만 띄워놓지 말고 디스켓으로도 보관할만 하구나. 정말 대견하구나.
  • 작성자熊劍愛人(13기 한성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4.05.09 ㅋㅋㅋ 넵 누님....그렇게 합죠!
  • 작성자복대형 작성시간 06.04.26 92년 2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장소는 속리산 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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