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집은 조문을 마친 뒤 중이에게 묘한 말을 던졌다.
"공자께서 본국으로 돌아가실 의향이 있으시면, 우리 주공께서 힘닿는 데까지 원
조하시겠다는 말씀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중이의 후원자가 될 의향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공자 집은 중이
가 자신이 던져준 암시에 기쁜 마음으로 반응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중이의
태도는 공자 집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공손히 머리 숙였을 뿐 중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질 않은 것이었다.
객관으로 물러 나온 공자 집은 중이가 자신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다고 생각하
고 시종을 보내 다시 말을 전했다.
우리 주공께서는 그대를 진나라 군위에 앉히고 싶어하십니다. 의향이 있으면 오
늘밤 저의 숙소로 찾아와 주십시오.
밀담 요청이었다. 중이는 마음이 들뜨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의혹이 일었다.
그는 호언과 조쇠(趙衰)를 불러 자문을 구했다. 조쇠 역시 중이를 돕는 가신단 중
한 사람이었다. 시문(詩文)과 예법에 밝고 정세 분석에 능했다. 중이의 모신(謀臣)이
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목공이 어째서 나를 도우려 할까?"
"우리 진(晉)에 대해 야심을 품고 있군요."
조쇠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어지러움에 빠진 나라를 돕는 척하면서 그 나라에 대
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은 예전부터 늘 있어 왔던 일이었던 것이다.
"제 생각도 그러합니다. 진목공은 필시 이오 공자에게도 사람을 보낼 것입니다."
조쇠와 호언의 의견을 들은 중이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공자 집의 심
부름꾼을 불러 답해 주었다.
"귀국 군후께서 망명객에 불과한 저 같은 사람을 조문하시고, 더구나 후원까지 해
주시겠다고 하니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나라
에서 쫓겨난 죄인입니다. 게다가 부군(父君)마저 세상을 떠나셨으니, 찢어지는 듯한
마음 형언할 길이 없습니다. 상(喪) 당한 것을 기회로 나의 앞날을 도모한다는 것은
저 자신에게나 돌아가신 부군에게나 모두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 여겨, 그냥 여기
서 이대로 지낼까 합니다. 귀국의 군후께 이 같은 저의 마음을 잘 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공자 집은 그제야 중이에게 다른 마음이 없음을 확실히 알고 더 이상 접근하지
않았다.
공자 집은 백적 땅을 출발하여 이번에는 이오가 망명해 있는 양나라를 향해 수레
를 몰았다. 그런데 이오는 중이와는 정반대의 행동을 취했다. 상복도 입지 않았고,
조문 사절을 맞이하여 재배는 물론 곡조차 하지 않았다. 평상시처럼 빈객(賓客)을
맞이하는 예로써 인사를 나누었을 뿐이었다.
인사가 끝나자 공자 집은 이오에게도 중이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들려주었다. 이
에 대해 이오는 두 눈에서 광채까지 뿜어내며 대답했다.
"저녁때 숙소로 찾아뵙겠습니다."
사람들의 눈이 많으니 따로 조용히 만나 밀담을 나누자는 제안이었다.
공자 집이 객관으로 돌아가자 이오는 가신단의 우두머리 격인 극예를 불러 의논
했다.
"공자 집을 이용하면 진(秦)나라를 확실히 우리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 같은
데, 그대 생각은 어떠하오?"
극예 또한 이오의 생각과 같았다.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대답했다.
"이것은 하늘이 내린 기회입니다. 공자께서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망명자
는 자신의 깨끗함만을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공자께서는 우선 진목공에게 귀국을
도와주면 땅을 떼어주겠다고 약조하십시오. 그러면 진목공은 당장에라도 공자의 귀
국을 주선할 것입니다."
"땅을 떼어주면 우리 진(晉)나라의 손해가 아니오?"
"이 판국에 어찌 땅을 아까워하겠습니까. 이번 기회를 놓치면 공자는 결국 양나라
에서 일개 필부로 일생을 마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공자는 진(晉)의 땅을 한
조각도 얻지 못합니다."
그 날 저녁, 이오는 공자 집이 머물고 있는 객관으로 암행(暗行)했다. 공자 집을
만난 그는 먼저 조문 석상에서도 하지 않았던 재배 계수를 올렸다. 최고의 예를 취
한 것이었다. 그런 후 입을 열었다.
"지금 본국에서도 이극과 비정이 저의 귀국을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맹세하노
니, 진목공께서 저의 귀국을 후원해주신다면 저는 귀국 후에 하남(河南=황하 남쪽)
의 다섯 성을 진(秦)나라에 바치겠습니다."
그러고는 따로 공자 집을 위해 황금 40일(鎰)과 백옥 6쌍을 건네주었다. 공자 집
은 그런 이오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뇌물을 받아 챙기며 대답
했다.
"귀국하는 대로 저의 부군(父君)께 공자의 성의를 잘 전달하겠습니다."
진(秦)나라로 돌아온 공자 집은 지금까지의 일을 진목공에게 소상히 고했다. 이오
로부터 뇌물 받은 사실까지 그대로 보고했다.
"중이의 그릇이 훨씬 크군."
진목공은 중이에게 호감을 가졌다. 공자 집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오는 하남의 다섯 성을 헌상하기로 맹세까지 하였습니다."
진목공은 뇌물이 탐나 이오를 귀환시킬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는 이번 일을 공평
하게 처리하고 싶었던 것이다. 비꼬듯 아들에게 대답했다.
"황금 40일에 이오의 편이 되었는가?"
공자 집은 정색했다.
"아버지께서 진나라에 임금을 세우려는 것은 진(晉)을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진
(秦)을 위해서입니까?"
"물론 우리 진(秦)을 위해서다. 우리가 진(晉)을 도우면 과인의 이름이 천하에 떨
칠 것이요, 그렇게 되면 천하를 도모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다면 아버지는 이오를 선택하셔야 합니다."
"어째서 그런가?"
"어질고 그릇이 큰 중이는 우리의 도움 없이도 진(晉)을 강성하게 키울 수 있겠습
니다만, 어리석은 이오는 우리의 도움을 받아야만 계속 나라를 다스릴 수 있기 때
문입니다. 우리 진(秦)나라의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오가 진
(晉)의 임금이 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공자 집의 말을 듣는 순간 진목공은 탄성을 질렀다.
"그렇구나.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구나."
마침내 진목공은 이오를 위하여 군대를 내어 양나라로 보냈다.
진(秦)나라 군대를 앞세운 이오는 양나라를 출발해 의기양양하게 진나라 수도 강
성으로 향했다. 이극이 성문을 활짝 열고 그를 맞이했다. 안팎으로의 도움에 힘입어
그는 순조롭게 진나라 군위에 올랐다. 그가 진혜공(晉惠公)이다. BC 650년, 진나라
를 도망친 지 4년만의 일이었다.
"공자께서 본국으로 돌아가실 의향이 있으시면, 우리 주공께서 힘닿는 데까지 원
조하시겠다는 말씀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중이의 후원자가 될 의향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공자 집은 중이
가 자신이 던져준 암시에 기쁜 마음으로 반응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중이의
태도는 공자 집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공손히 머리 숙였을 뿐 중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질 않은 것이었다.
객관으로 물러 나온 공자 집은 중이가 자신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다고 생각하
고 시종을 보내 다시 말을 전했다.
우리 주공께서는 그대를 진나라 군위에 앉히고 싶어하십니다. 의향이 있으면 오
늘밤 저의 숙소로 찾아와 주십시오.
밀담 요청이었다. 중이는 마음이 들뜨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의혹이 일었다.
그는 호언과 조쇠(趙衰)를 불러 자문을 구했다. 조쇠 역시 중이를 돕는 가신단 중
한 사람이었다. 시문(詩文)과 예법에 밝고 정세 분석에 능했다. 중이의 모신(謀臣)이
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목공이 어째서 나를 도우려 할까?"
"우리 진(晉)에 대해 야심을 품고 있군요."
조쇠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어지러움에 빠진 나라를 돕는 척하면서 그 나라에 대
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은 예전부터 늘 있어 왔던 일이었던 것이다.
"제 생각도 그러합니다. 진목공은 필시 이오 공자에게도 사람을 보낼 것입니다."
조쇠와 호언의 의견을 들은 중이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공자 집의 심
부름꾼을 불러 답해 주었다.
"귀국 군후께서 망명객에 불과한 저 같은 사람을 조문하시고, 더구나 후원까지 해
주시겠다고 하니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나라
에서 쫓겨난 죄인입니다. 게다가 부군(父君)마저 세상을 떠나셨으니, 찢어지는 듯한
마음 형언할 길이 없습니다. 상(喪) 당한 것을 기회로 나의 앞날을 도모한다는 것은
저 자신에게나 돌아가신 부군에게나 모두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 여겨, 그냥 여기
서 이대로 지낼까 합니다. 귀국의 군후께 이 같은 저의 마음을 잘 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공자 집은 그제야 중이에게 다른 마음이 없음을 확실히 알고 더 이상 접근하지
않았다.
공자 집은 백적 땅을 출발하여 이번에는 이오가 망명해 있는 양나라를 향해 수레
를 몰았다. 그런데 이오는 중이와는 정반대의 행동을 취했다. 상복도 입지 않았고,
조문 사절을 맞이하여 재배는 물론 곡조차 하지 않았다. 평상시처럼 빈객(賓客)을
맞이하는 예로써 인사를 나누었을 뿐이었다.
인사가 끝나자 공자 집은 이오에게도 중이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들려주었다. 이
에 대해 이오는 두 눈에서 광채까지 뿜어내며 대답했다.
"저녁때 숙소로 찾아뵙겠습니다."
사람들의 눈이 많으니 따로 조용히 만나 밀담을 나누자는 제안이었다.
공자 집이 객관으로 돌아가자 이오는 가신단의 우두머리 격인 극예를 불러 의논
했다.
"공자 집을 이용하면 진(秦)나라를 확실히 우리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 같은
데, 그대 생각은 어떠하오?"
극예 또한 이오의 생각과 같았다.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대답했다.
"이것은 하늘이 내린 기회입니다. 공자께서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망명자
는 자신의 깨끗함만을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공자께서는 우선 진목공에게 귀국을
도와주면 땅을 떼어주겠다고 약조하십시오. 그러면 진목공은 당장에라도 공자의 귀
국을 주선할 것입니다."
"땅을 떼어주면 우리 진(晉)나라의 손해가 아니오?"
"이 판국에 어찌 땅을 아까워하겠습니까. 이번 기회를 놓치면 공자는 결국 양나라
에서 일개 필부로 일생을 마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공자는 진(晉)의 땅을 한
조각도 얻지 못합니다."
그 날 저녁, 이오는 공자 집이 머물고 있는 객관으로 암행(暗行)했다. 공자 집을
만난 그는 먼저 조문 석상에서도 하지 않았던 재배 계수를 올렸다. 최고의 예를 취
한 것이었다. 그런 후 입을 열었다.
"지금 본국에서도 이극과 비정이 저의 귀국을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맹세하노
니, 진목공께서 저의 귀국을 후원해주신다면 저는 귀국 후에 하남(河南=황하 남쪽)
의 다섯 성을 진(秦)나라에 바치겠습니다."
그러고는 따로 공자 집을 위해 황금 40일(鎰)과 백옥 6쌍을 건네주었다. 공자 집
은 그런 이오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뇌물을 받아 챙기며 대답
했다.
"귀국하는 대로 저의 부군(父君)께 공자의 성의를 잘 전달하겠습니다."
진(秦)나라로 돌아온 공자 집은 지금까지의 일을 진목공에게 소상히 고했다. 이오
로부터 뇌물 받은 사실까지 그대로 보고했다.
"중이의 그릇이 훨씬 크군."
진목공은 중이에게 호감을 가졌다. 공자 집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오는 하남의 다섯 성을 헌상하기로 맹세까지 하였습니다."
진목공은 뇌물이 탐나 이오를 귀환시킬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는 이번 일을 공평
하게 처리하고 싶었던 것이다. 비꼬듯 아들에게 대답했다.
"황금 40일에 이오의 편이 되었는가?"
공자 집은 정색했다.
"아버지께서 진나라에 임금을 세우려는 것은 진(晉)을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진
(秦)을 위해서입니까?"
"물론 우리 진(秦)을 위해서다. 우리가 진(晉)을 도우면 과인의 이름이 천하에 떨
칠 것이요, 그렇게 되면 천하를 도모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다면 아버지는 이오를 선택하셔야 합니다."
"어째서 그런가?"
"어질고 그릇이 큰 중이는 우리의 도움 없이도 진(晉)을 강성하게 키울 수 있겠습
니다만, 어리석은 이오는 우리의 도움을 받아야만 계속 나라를 다스릴 수 있기 때
문입니다. 우리 진(秦)나라의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오가 진
(晉)의 임금이 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공자 집의 말을 듣는 순간 진목공은 탄성을 질렀다.
"그렇구나.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구나."
마침내 진목공은 이오를 위하여 군대를 내어 양나라로 보냈다.
진(秦)나라 군대를 앞세운 이오는 양나라를 출발해 의기양양하게 진나라 수도 강
성으로 향했다. 이극이 성문을 활짝 열고 그를 맞이했다. 안팎으로의 도움에 힘입어
그는 순조롭게 진나라 군위에 올랐다. 그가 진혜공(晉惠公)이다. BC 650년, 진나라
를 도망친 지 4년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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