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선조에 관한 기록

[스크랩] 충효당271 중건 상량문忠孝堂重建上樑文 신묘년(1771) -임여재

작성자부용대|작성시간26.06.18|조회수1 목록 댓글 0

충효당271 중건 상량문忠孝堂重建上樑文 신묘년(1771)


무엇이 필방畢方의 재앙272을 왕성하게 하여 백 년 된 건물이 잿더미가 되게 하였
는가. 오래된 가문이 중흥의 운수를 만나 하루아침에 웅장한 건물이 사람들의 이목
을 놀랍게 하네. 오직 후손의 효심이 이룩하였고, 선령의 음덕이 미친 바일세.
삼가 생각하건대 우리 선조 문충공文忠公(류성룡柳成龍) 부군府君께서는 연원이 있는 학
문과 경세제민의 재주가 있었네. 도산陶山(이황李滉)의 도학을 전수하고 입암立巖(류중영柳仲
郢)을 계승하여 가문에 있어서 집안을 일으킨 큰 선조가 되었고, 정주程朱의 학문을 따
르고 이려伊呂273의 사업을 행하여 세상에서 일세의 참된 선비라고 일컬어졌네. 강 남
쪽의 옛 집이 다만 충효의 지결旨訣을 전하니, 세신世臣의 남은 음덕이 어찌 보통 벼슬
아치 집안과 같겠는가.
장령掌令 부군은 청고하고 단아한 자질을 지녔으나 안타깝게도 자연子淵의 수명보다
4년이 짧았고,274 졸재拙齋 왕고王考는 조술祖述하여 발휘하는 사업을 펼쳐 아름답게도
장사長沙의 재전再傳보다 뛰어났네.275 진실로 하늘이 우리 유학을 보우하셨기에, 대대

로 그 미덕을 이룸을 볼 수 있었네.
아, 예로부터 청렴결백한 덕업이라 봉읍封邑에서 소규모의 경영도 하지 못하였는
데, 중간에 가업을 잘 계승한 공효는 실로 눌재공訥齋公276이 크게 개척한 데 힘입었
네. 부친의 유훈을 친히 받듦에 감히 졸성拙誠 두 글자를 잊을 수 있겠는가.277 선조
를 봉향하는 규모를 잘 지켜 어느덧 사시四時에 제사를 지내네. 선조에게 너른 기반을
물려받았고, 후세에게 두터운 원조를 물려주었네. 벼슬살이는 덕에 걸맞은 직함이 아
니었으니 교관공敎官公278의 알려지지 않은 행실을 누가 알겠는가. 5대 동안 끊어지지
않은 은택이 있으니 지현공知縣公(류의하柳宜河)의 돈후한 풍모를 더욱 알 수 있네.
보옥 같은 자제들이 거듭 배출되어 멀리 서산西山의 훌륭한 집안279과 짝하였고, 의
義가 정밀하고 인仁이 숙성하여 우뚝이 동방의 이름난 가문이 되었네. 팔촌과 종형宗
兄에 이르러서도 역대의 선업先業을 더욱 체행하였네. 옥연玉淵(옥연정사玉淵精舍)에서 시서
를 강론하였으니 어찌 자경子敬이 청전靑氈을 지킨 데 그치겠는가.280 호주湖州281에서
깨끗한 절조를 이었으니 곡성曲城처럼 흰 요를 저버릴 수 없었네.282

어찌하여 어린 노복들이 조각배를 맞이하던 날, 지붕에 굴뚝으로 인한 불이 났단
말인가. 종손이 곡한 것은 축문을 쓰던 감실이니 하늘을 우러러도 비는 내리지 않았
고, 종부가 잃은 것은 제수를 올리던 정침正寢이니 그 자리가 재가 되었네. 본디 고명
하다는 혐의가 없거늘, 혹시 귀신이 엿보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283 아니면 성쇠의
운수가 있어서 사람이 다시 도모해야 하기 때문인가.
옛터에서 비바람에 눈물 흘리는 것은 가세가 미약하여 공역이 커질까 두려워서이
고, 선영에서 서까래를 취하는 것은 또한 골짜기를 넘어 강물로 실어 나르기 위함이
었네. 종족이 정성을 바치니 감히 2, 3년 분주한 것을 꺼리겠는가. 공인이 솜씨를 바
치러 스스로 수백 리 길을 왔네. 여러 사람의 들쭉날쭉한 의견을 통합하여 한마음으
로 얽어 만들기를 부지런히 하였네. 사치하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한 것이 나으니 제
도가 합당하도록 하였고, 이미 정침을 지어 놓고 또 당堂을 지었으니 먼저 제사를 지
낼 곳이 생겼음을 축하하였네. 대대로 복록을 누리게 한다는 맹세가 금책金冊에 실려
있으니284 가묘家廟에 영령을 모셨고, 나라를 다시 일으킨 공훈을 세상에서 우러르니
당무堂廡에 원기를 모았네. 뜰에 가득한 옥수玉樹는 사씨謝氏의 자손들에 뒤지지 않
고,285 울타리 너머의 민가는 모두 오중吳中의 종족이라네.286 비단 흥성한 큰 모임일
뿐만 아니라 또한 선대의 구업舊業을 이으려는 기특한 일이라네. 들보 머리에 완공을
하례하여 수년 전의 제비를 거듭 부르고, 지붕 뒤에 서광瑞光을 응집하여 하늘의 삼태
성 문곡성을 우러러보네. 양양하게 오르내림에 임하신 듯하니 기꺼이 “나에게 후손
이 있도다.”라고 말씀하기를 바라네. 대대로 가업이 끊어지지 않아 영원히 어버이를
욕되게 하지 말아야 한다네.
이에 기해祁奚의 작은 정성을 간절히 담아 사간斯干의 노래를 공경히 부르노니, 한
번씩 소리침이 들보 올리는 일을 도와 여섯 곡이 한 장章을 이루네.
어기여차 들보 동쪽으로 제물을 던지니 兒郞偉拋樑東
동해의 아침 햇살이 아득히 찬란하네 扶桑朝日遠童童
바닷가 요기妖氣가 감히 먹구름을 이루지 못하니 海氛不敢成陰翳
당시에 시원하게 소탕한 공이 으뜸이었네287 汛掃當年第一功
어기여차 들보 남쪽으로 제물을 던지니 兒郞偉拋樑南
눈앞에 수려한 기운이 삼필봉에 서려 있네 眼前秀氣筆峯三
명문가가 대대로 후손들이 경사스러워 名門百代雲孫慶
한 사람 한 사람이 걸출한 남아가 되었네 箇箇人間作大男
어기여차 들보 서쪽으로 제물을 던지니 兒郞偉拋樑西
임금(선조宣祖)께서는 어디 계시는지 오색구름 희미하네 穆陵何處五雲迷
당나라 천자가 현성의 집을 기억하였으나 唐宗也記玄成第
화마의 흔적이 혈식의 땅에 선명하였네288 回祿分明血土泥

어기여차 들보 북쪽으로 제물을 던지니 兒郞偉拋樑北
강 건너 선대의 정자가 절벽에 기대고 있네 隔水先亭倚絶壁
절벽은 평평해지고 강은 평지가 되겠지만 絶壁可夷水可平
정자 안의 가학家學은 영원히 전해지리라 亭中詩禮傳無極
어기여차 들보 위쪽으로 제물을 던지니 兒郞偉拋樑上
비단 장막 같은 구름이 구만리 들판을 거두네 綃幕雲收九萬曠
연비어약의 시289에 재배하니 再拜鳶魚宇宙詩
이 마음이 이와 같이 가로막힘이 없네 此心如許無遮障
어기여차 들보 아래쪽으로 제물을 던지니 兒郞偉拋樑下
강주의 칠백 인290이 종택 주위에 모였네 江州七百繞宗舍
이제부터 크게 감싸 일문을 기쁘게 할 것이니 大庇從今歡一門
어찌 꼭 두릉杜陵의 집만 천 칸이겠는가291 千間何必杜陵廈

삼가 바라건대 들보를 올린 뒤에 온갖 복이 흥기하고 여러 신령이 액운을 막아 강
산이 청량한 기운을 돕고 집안이 화목한 풍모를 드러나게 하소서. 그리하여 도道를
즐김이 바야흐로 많아져 해매다 동족이 즐겁게 웃으며, 문운文運이 활짝 열려 날마다
학문에 매진하게 하소서. 어찌 기필할 만한 천명天命이 없겠습니까. 세덕世德에 힘쓰는
것이 바로 보배입니다. 지나간 운명은 묻지 말아야 할 것이니 우연히 불이 난 것이
무슨 재앙이겠습니까. 청컨대 진공晉公의 회나무 그늘을 바라보며 영주永州 철보鐵步의
이름을 크게 떨치게 해 주소서.292

 


271 충효당(忠孝堂):류성룡의 종택으로 지금의 하회마을에 있다. 17세기에 손자 류원지가 류성룡의 학덕을 기
리기 위하여 유림들과 힘을 합쳐 먼저 안채를 지었고, 증손 류의하가 확장·수리하였다고 한다. 당호는 류
성룡이 임종할 무렵에 남긴 시에 “자손들에게 권하노니 꼭 삼갈지어다. 충효 외에는 다른 사업이 없도다.
[勉爾子孫須愼旃 忠孝之外無事業]”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 拙齋集 卷14 「記先世遺事」)
272 필방(畢方)의 재앙:필방은 전설상의 괴이한 새로 세상에 나타나면 항상 화재(火災)가 난다고 한다.( 山海經
「西山經」)
273 이려(伊呂):은나라 탕왕(湯王)의 재상인 이윤(伊尹)과 주나라 무왕(武王)을 보좌하여 은나라를 멸망시킨 여
상(呂尙)의 합칭이다.
274 장령(掌令)……짧았고:장령은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에 추증된 류여(柳袽, 1578∼1605)를 말한다. 자는
길보(吉甫)이며 류원지의 생부이다. 자연(子淵)은 안회(顔回)의 자이다. 공자의 수제자였으나 요절하였는데,
그 수명과 관련하여 한대(漢代) 이래로 32세 설과 청나라 모기령(毛奇齡)·적호(翟灝) 등이 주장한 41세 설
이 존재한다. 여기서는 전자에 해당한다.
275 졸재(拙齋)……뛰어났네:도잠(陶潛)이 친척인 도연수(陶延壽)에게 장사군공(長沙君公) 도간(陶侃)과 같은 선
조의 유업을 잘 잇고 끊임없이 덕업을 진전시키는 것에 찬탄하는 시를 써 주었다고 한다.( 晉書 卷66 「
陶侃列傳」) 도간은 동진의 명장(名將)으로 여러 차례 군공을 세웠다. 여기서는 졸재 류원지가 조부인 류성
룡의 가업을 계승한 일이 도연수보다 더 훌륭하였음을 뜻한다.

276 눌재공(訥齋公):류원지의 장남 우눌재(愚訥齋) 류의하(柳宜河, 1616∼1698)를 가리킨다.
277 부친의……있겠는가:류원지는 집안에 전하는 가르침들을 베껴 적으면서 ‘졸성(拙誠)’ 두 글자를 집어내어
“천하의 덕이 이 두 글자를 벗어나지 않는다.[天下之德 無過這二字]”라고 하고 졸재(拙齋)를 자호로 삼았다
고 한다.( 寓軒集 卷7 「拙齋先生墓誌」)
278 교관공(敎官公):류후상(柳後常, 1648∼1718)을 가리킨다. 자는 덕일(德一)이다. 류원지의 손자이다. 생부
는 류만하(柳萬河, 1624∼1711)이고 류의하에게 입양되었다.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지냈다.
279 서산(西山)의 훌륭한 집안:서산은 송나라 채원정(蔡元定, 1135∼1198)의 호이고, 자는 계통(季通)이다.
어릴 적에 아버지 채발(蔡發)에게 정자의 학문을 배웠으며, 뒤에 주희에게 수학하여 이학(理學) 사상을 계
승 발전시켰다. 그의 학문은 아들 채연(蔡淵)·채항(蔡沆)·채침(蔡沈)에게 이어졌다. 시호는 문절(文節)이다.
280 자경(子敬)이……그치겠는가:‘청전(靑氈)’은 집안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푸른 담요로, 대대로 집안의 명
성을 잃지 않고 잘 전하는 것을 말한다. 옛날 왕자경(王子敬, 王獻之)이 방에 누워 있었는데, 도둑이 들어
그의 침상을 뒤지려 하므로 꼼짝 않고 누워만 있던 왕자경이 큰 소리로 “이 청전은 우리 집안에 대대로
전해져 오는 물건인데, 특별히 남겨둘 수 없겠소?”라고 하자, 도둑들이 놀라서 그냥 두고 달아났다고 한
다.( 太平御覽 卷70) 여기서는 풍산 류씨 집안이 선조의 유물만 보존한 것이 아니라, 가학을 훌륭히 계승
하였음을 뜻한다.
281 호주(湖州):류경심(柳景深)이 후진을 양성하고 학문을 강론한 구담서당(龜潭書堂)을 가리킨다. 지금의 안동
시 일직면(一直面) 명진리(明津里)에 상현정(象賢亭)이라는 이름으로 복원되어 있다.

282 곡성(曲城)처럼……없었네:당나라 곡성 사람 위징(魏徵, 580∼643)이 병이 심해졌을 때, 태종이 그를 위
해 흰 요[素褥]와 베 이불을 하사하고 친히 문병을 한 고사가 있다.( 新唐書 卷97 「魏徵列傳」) 여기서는
류경심이 평안도 관찰사에 임명한 임금의 명을 저버리지 않고 부임하러 가는 도중에 병으로 죽은 사실을
가리킨다.
283 본디……아니겠는가:양웅(揚雄)의 「해조(解嘲)」에 “고명한 사람의 집안은 귀신이 그 집을 엿본다.[高明之家
鬼瞰其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284 대대로……있으니:‘금책(金冊)’은 공신의 녹권인 철권(鐵券)을 말한다. 철권은 옛날에 임금이 공신에게 내
려 면죄 등의 특권을 누리게 한 증명서이다. 여기서는 류성룡이 1604년에 호성 공신(扈聖功臣) 이등에 책
록되어 풍원부원군(豐原府院君)에 봉해진 사실을 가리킨다.
285 뜰에……않고:집안에 자질이 우수한 자제가 많음을 뜻한다. 진(晉)나라 사안(謝安)이 여러 자질(子姪)에게
“어찌하여 사람들은 자기 자제가 출중하기를 바라는가?”라고 묻자, 조카 사현(謝玄)이 “비유하건대, 지란
과 옥수가 자기 집 뜰에서 자라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대답한 데서 온 말이다.( 晉書 卷79 「
謝玄列傳」)
286 울타리……종족이라네:풍산 류씨 사람들이 하회마을에 가득함을 뜻한다. 오중(吳中)은 중국 강소성 오현
(吳縣) 일대를 가리키는데 진(晉)나라 장한(張翰)이 벼슬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가을바람이 이는 것을 보고

는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고사에서 고향을 가리키기도 한다.( 世說新語 「識鑑」)
287 바닷가……으뜸이었네:바닷가의 요기(妖氣)는 임진년(1592) 일본의 침입을 가리키며 그것을 몰아내는데
류성룡이 가장 큰 공을 세웠음을 뜻한다.
288 당나라……선명하였네:현성(玄成)은 위징(魏徵)의 자이다. 그가 재상으로 있을 때 당 태종(唐太宗)이 전각

(殿閣)의 재목을 이용하여 그에게 본가(本家)를 지어 주었으나 후손이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그 집을 잃었
는데, 뒤에 덕종(德宗) 때 이사도(李師道)가 자기 돈 600만 냥을 올려 위징의 후손을 위하여 옛집을 사 주
려 하자, 덕종이 백거이(白居易)의 의견을 받아들여 그 집을 사서 내려 주었다고 한다.( 新唐書 卷119 「
白居易列傳」) 여기서는 선조(宣祖)가 류성룡의 공을 기억하였음에도 충효당이 화재를 피하지 못하였음을 뜻
한다.
289 연비어약(鳶飛魚躍)의 시: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2장에서 “ 시경 에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물
고기는 못에서 뛴다.’ 하였으니, 조화의 유행이 천지에 밝게 나타남을 말한 것이다.[詩云 鳶飛戾天 魚躍于淵
言其上下察也]”라고 하였는데, 이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천지 우주의 이치를 살펴 깨닫는 것을 말한다.
이와 관련하여 류성룡이 지은 「남계정사(南溪精舍)」 12편 중 「연어헌(鳶魚軒)」에서 “시내에 헤엄치는 것에
서 물고기의 즐거움 알겠고, 구름에 날아가는 것에서 새의 마음 보겠네. 앉아서 한바탕 웃음 지으니, 산의
푸른 기운이 대청마루에 드는구나.[川泳知魚樂 雲飛見鳥情 坐來成一笑 山翠入南楹]”라고 한 대목이 참조된
다.( 西厓集 卷1)
290 강주(江州)의 칠백 인:앞의 각주 254) 참조.
291 어찌……칸이겠는가:두릉(杜陵)은 두보(杜甫) 일족이 세거(世居)하던 곳으로, 곧 두보를 가리킨다. 그의 시
「모옥위추풍소파가(茅屋爲秋風所破歌)」에서 “어찌하면 천만 칸의 너른 집을 얻어서는, 천하의 가난한 선비
들을 크게 감싸 주어서 다들 기쁜 얼굴로, 풍우에도 끄떡없이 산처럼 편안하게 살게 할 수 있을까?[安得廣

厦千萬間 大庇天下寒士俱歡顔 風雨不動安如山]”라고 한 구절을 끌어와서 충효당을 중건한 의의를 말한 것이
다.
292 진공(晉公)의……주소서:앞의 각주 265) 참조.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豊 柳 마 을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