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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에 관한 기록

[스크랩] 河回立巖古宅上樑文

작성자부용대|작성시간26.06.18|조회수0 목록 댓글 0

 

양진당 수리관계로 지붕을 해체할 때 나온 상량문입니다.

 

 

 

 

 

 

 

 

 

 

 

 

 

 

                      

 

 

 

                    河回立巖古宅上樑文

 

吾先世始居于豊山縣內至我八代祖典書府君移居于此子孫因家焉流傳數百餘年幾盡頹落而舊無廳事政德四十年辛酉曾祖贈領議政府君始加增築東開六間廳堂而西其房凡八間東宇朴素不加丹濩前對筆峯北帶深潭花岳城山隱映相望於東西嶺南山水之勝此有名焉萬曆四年丙子祖考參判府君繼又重修正寢凡七十餘間壬辰兵火盡爲灰燼惟廟宇三間獨全耳庚子秋參判府君將更營構先立行廊十三間東樓三間於寢室之南不幸未半而重道下世厥後數十餘年門禍連仍父兄宗族零落殆盡不肖孫元直得延餘喘於草土萬死之餘自念餘日無幾重傷先業堙廢經營數歲衆役稍擧自丙寅二月始三月十一日甲寅卯時立柱至四月十三日上樑一依舊制而房之北又立一間以爲賓祭器用藏置之所焉聊記其前後事蹟如右此後興廢則吾不知果如何耳

天啓六年四月十三日乙酉堂主記

木手張鳳翔僧人行敏法一捧足奴云俊


 



  국  역  문


나의 선세는 처음에 풍산 현내에 거주하셨다.

나의 8대조인 전서부군에 이르러 이곳에 이주하여 자손들이 집을 짓고 살게

되었다.

수백 년이 지나자 거의 다 퇴락 되었는데 예전에는 청사가 없었다.  정덕40년

신유년에 증조이신 증영의정 부군께서 처음으로 증축하였다.

동쪽으로 6칸의 청당을 마련하고 방은 서쪽에 두었다. 모두 8칸이다. 기둥과

건물은 소박하고 단청은 칠하지 않았다.

앞으로 필봉을 마주하였고 북쪽으로는 깊은 못을 둘렀으며 화산과 성산이 동쪽과 서쪽에 은은히 비추며 서로 바라 보고있다. 산수가 아름답기로 영남지방에서

명성이 나 있었다.

만력4년 병자년에 조고이신 참판부군께서 또한 이어받아 중수를 하셨는데 정침이 모두 70여칸 이었다.

임진병화에 모두 소실되고 오직 사당 3칸만 남았다 경자년 가을에 참판부군께서 다시 짓고자 하였다.

먼저 침실의 남쪽에 행랑채 13칸과 동루를 먼저 세우셨다.

불행하게도 아직 반을 짓지 못하시고 중도에 그만 세상을 떠나셨다.

그 뒤 수 십년 동안에는 문중에 재앙이 계속되어 부형과 종손이 쓸쓸하게 되었다.

불초인 원직은 초토의 험한 상태에서 어렵게 살아남아 겨우 목숨을 잇게 되었다.  스스로 생각해 보니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를 않았고 선조의 업적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 너무나 마음이 슬펐다.

곧 수년간 경영을 하며 많은 일들이 조금씩 진행되어 병인년 2월에 비로소 일을 시작하였다.

하나같이 예전의 제도를 따랐으나 방의 북쪽에 또한 1칸을 세워 접빈이나 봉제사에 사용되는 기물을 보관하는 장소로 삼았다.

부족하나마 그 전후의 사적을 위와 같이 기록하니 차후에 흥성과 폐망에 대해서는 과연 어떻게 될지 나는 모르겠다.


천계 6년4월 13일  을유년에 집 주인이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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