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복합유연성

작성자유담|작성시간17.06.16|조회수316 목록 댓글 0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 심리적 상처의 한 부분이다.

사회심리학에서 다룬다.

복합유연성은 선택장애를 말한다.


내가 영국에 갔을 때

마크씨가 물었다. 무엇을 먹을거냐고.

대답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대신 선택해달라고 말하니, 어이가 없다는 듯 나보고 선택하란다.


짬짜면. 우리의 모습이다.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사람들을 위한

마케팅이 만들어낸 메뉴이다.


우리 아들도 대학에 가서 많은 것을 하려고 했다.

그 모습이 간절해보였다.

대학입시를 위하여 엉덩이 살이 펑퍼짐하게 찔 정도로 의자에 앉아 있었고

대학에 가서는 신나게 게임을 하더니

게임에 부정적인 아빠를 신문화 좀 배우라고 계몽하기도 하더니

어느 날 애인을 만들어 신나게 사랑을 하다 헤어졌다.

슬픔 속에 헤어나지 못하고 방황하다 군대를 갔다.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몸을 만들고

친구들과 늘 밤 늦게까지 과방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다

다음 날 새벽녁이 되어서 집에 오기도 하였다.

나름의 버킷리스트를 실천하는 사람처럼 열심히 사는 모습이

공부만 빠져 세상사는 능력을 잃는 범생이가 되지 않아 싫은 척 좋았지만

세상을 아는 아빠로서

모든 것을 다 해보고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것은 어쩌면 착각일지 모른다.


아들은 늘 허전해하였다.

아빠는 아들이 무엇때문에 허전한지 알고 있다.

자아에 대한 상실감, 미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 등이라고 생각한다.


현실 속으로 깊게 들어가면 우린 둘 다를 선택할 수 없고

하나 혹은 일부만을 선택해야한다.

그리고 나머지 많은 것을 포기해야한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다.

사람들은 포기한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는 기회비용이라고 위로한다.


또 포기한 것이 나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라는 것을

나이가 들어 발견하면 다시 포기한 것을 선택한다.

용기를 발휘하여


인생은 비와 디 사이의 씨라고 한다.

Birth, Death, Choice.

선택한다는 것은 곧 포기하는 것이다.

포기한 가치 중에 뒤늦게 자신이 원했던 소중한 것이 있다면

다시 선택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국영수 교육과정을 선택했고 인문학과 도덕을 잃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