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 심리적 상처의 한 부분이다.
사회심리학에서 다룬다.
복합유연성은 선택장애를 말한다.
내가 영국에 갔을 때
마크씨가 물었다. 무엇을 먹을거냐고.
대답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대신 선택해달라고 말하니, 어이가 없다는 듯 나보고 선택하란다.
짬짜면. 우리의 모습이다.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사람들을 위한
마케팅이 만들어낸 메뉴이다.
우리 아들도 대학에 가서 많은 것을 하려고 했다.
그 모습이 간절해보였다.
대학입시를 위하여 엉덩이 살이 펑퍼짐하게 찔 정도로 의자에 앉아 있었고
대학에 가서는 신나게 게임을 하더니
게임에 부정적인 아빠를 신문화 좀 배우라고 계몽하기도 하더니
어느 날 애인을 만들어 신나게 사랑을 하다 헤어졌다.
슬픔 속에 헤어나지 못하고 방황하다 군대를 갔다.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몸을 만들고
친구들과 늘 밤 늦게까지 과방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다
다음 날 새벽녁이 되어서 집에 오기도 하였다.
나름의 버킷리스트를 실천하는 사람처럼 열심히 사는 모습이
공부만 빠져 세상사는 능력을 잃는 범생이가 되지 않아 싫은 척 좋았지만
세상을 아는 아빠로서
모든 것을 다 해보고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것은 어쩌면 착각일지 모른다.
아들은 늘 허전해하였다.
아빠는 아들이 무엇때문에 허전한지 알고 있다.
자아에 대한 상실감, 미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 등이라고 생각한다.
현실 속으로 깊게 들어가면 우린 둘 다를 선택할 수 없고
하나 혹은 일부만을 선택해야한다.
그리고 나머지 많은 것을 포기해야한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다.
사람들은 포기한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는 기회비용이라고 위로한다.
또 포기한 것이 나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라는 것을
나이가 들어 발견하면 다시 포기한 것을 선택한다.
용기를 발휘하여
인생은 비와 디 사이의 씨라고 한다.
Birth, Death, Choice.
선택한다는 것은 곧 포기하는 것이다.
포기한 가치 중에 뒤늦게 자신이 원했던 소중한 것이 있다면
다시 선택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국영수 교육과정을 선택했고 인문학과 도덕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