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군의 어머니 캐서린 부스
연말연시만 되면 어김없이 거리에 등장하는 풍경이 있지. 바로 구세군의 자선냄비 말이야. 뭐 이미 알고 있을 테지만 1891년 1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구세군 사관의 머리에서 번득인 아이디어였어. 그는 오클랜드 부두에 나가설랑 큰 쇠솥을 내놓고 그 위에 이렇게 써 붙였지. “이 솥을 끓게 해 주십시오.” 봉투 봉투 열렸네가 아니라 쇠솥 아가리 열렸네. 사람들은 그 큰 솥에 동전과 지폐를 넣었고 그 해 성탄절 구세군은 빈민들에게 풍성한 성탄 특식을 제공할 수 있었다고 하지.
구세군의 냄비는 알겠는데 그럼 구세군은 또 어떤 단체인가. 일단 구세군은 기독교의 한 교단이야. 감리교 침례교 장로교 하는 여러 교파 가운데 하나라고. 구세군의 ...창립자 윌리엄 부스 역시 감리교 성직자였지. 어려서 전당포에서 일한 적이 있고 가난이라는 지긋지긋한 두 글자로부터 그다지 자유롭지 못했던 그였으나 10대 때부터 ‘하나님 사업’에는 발군의 실력을 드러낸 명설교자였지.
그런데 그는 어느 날 ‘빡치는’ 모습을 목도하게 돼. 런던의 이스트엔드, 즉 빈민 지역에서 설교를 하고 교회로 인도를 하면 교회의 중산층 신사 숙녀들이 이맛살을 찌푸리는 거라. “술 취한 부랑자들을 교회에 들이면 안됩니다.” 바로 오늘날 우리나라 대형교회의 모습이지. 아니 그렇게 몰아붙이지 말자. 나부터 교회 식당에서 노숙자들과 같이 밥 먹으라면 솔직히 난처해 할 테니까.
하지만 윌리엄 부스는 좀 차원이 다른 기독교인이었어. 예수야말로 가난한 목수에 그 제자들도 몽땅 다 그런 부류였으며 복음서 내내 가난한 자들, 과부들,지극히 낮은 자들에 대한 애정을 발산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예수를 믿는 자들이 이렇단 말이냐. 단순히 그의 마음이 가난한 이들에 대한 동정과 시혜의식이 아니라는 건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을 통해서 알 수 있을 것 같다.
“여인들이, 지금처럼 울고 있는 동안 나는 싸우리라! 아이들이, 지금처럼 굶고 있는 동안 나는 싸우리라! 사나이들이, 지금처럼 감옥을 들락날락, 들락날락 하는 동안 나는 싸우리라! 불쌍한 소녀가 거리에 버려져 헤매는 동안 어둠의 자식이 하나라도 하나님의 밝은 빛에서 벗어나 그대로 있는 동안 나는 싸우리라! 싸우리라! 마지막까지!" 윌리엄 부스는 그보다 열 한 살 위의 털보 철학자 마르크스처럼 영국의 노동자 계급의 상태를 분석하고 그 ‘과학적’ 대안을 내오지는 않았지만 불평등한 세상과 가난한 자들의 고통에 대한 적의만큼은 오히려 능가했다고 봐도 무방할 거야. 그러고 보니 윌리엄 부스도 대단한 털보네.
그는 군대식 조직을 모방한 기독교 교단을 만들었고 이는 ‘구세군’으로 발전해 오늘에 이르게 되는데 이리 두고 볼 때 윌리엄 부스는 구세군의 아버지라고 불리워 마땅한 인물이지. 그럼 구세군의 어머니는 없을까? 있어. 단순히 윌리엄 부스의 아내로서가 아니라 윌리엄 부스만큼이나 열정적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설교자이며 남편의 그림자이자 기둥이자 어깨였던 여자. 캐서린 부스가 그녀야.
그녀 역시 철저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고 아주 모범적인 ‘교회 누나’였어. 열 여섯 살 때 이미 “나는 하나님의 자녀야.”라고 믿고 선포할 만큼 투철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태반의 한국 ‘교회 누나들’처럼 교회에 파묻혀 지내면서 ‘신앙 좋고 조건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해서 물질의 축복 기원하며 우아하게 살고 싶어하지는 않았어. 그녀가 내세운 결혼 상대자 조건 가운데 하나는 이거야. “사고와 취미가 일치해야 하며 지배적 관념이나 소유 관념을 사랑 속에 다 녹이고 사랑 가운데 양보할 수 있는 사람” 대충 짐작이 가지. 그녀는 금주(禁酒) 토론회에서 윌리엄 부스를 만났고 그가 자신의 조건에 들어맞는 신의 선물임을 깨닫고 결혼하게 되지. 신부의 아버지와 신랑의 누이동생만이 참석한 조촐한 결혼식.
그녀는 여덟 명의 아이를 낳아 기른 어머니였지만 결코 가정에 머무르지 않았어.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더 많은 사람들을 쓰기를 바랐지. 19세기 중반 여자의 지위는 오늘날에 비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낮았어. 투표권 같은 건 꿈도 못 꿀 때였고 여자는 남자의 부속물 아니면 좀 열등한 생물 취급을 아무렇지도 않게 감수해야 했지. 하지만 캐서린 부스는 열정적인 설교자로 나서면서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했던 바울의 명령에 정면으로 반박했지.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도 “기저귀 찬 사람들이 어떻게 설교대에 오르나?”하는 덜떨어진 인간들이 목사 타이틀을 휘감고 있는 판에 19세기 중후반의 영국 사회에서 여성 설교자란 7년 가뭄의 콩보다 귀한 존재였지.
그녀가 여성 설교자로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 순간은 1860년 성령 강림절 예배 시간이었다. 남편의 설교가 거의 끝나갈 무렵 그녀는 총총 강단에 올라갔어. 그녀는 남편에게 이야기하지. “한 마디 하게 해 주세요.” 부인을 믿은 남편은 강단에서 비켜서고 캐서린은 열렬한 설교로 사람들을 울린다. 이를 본 윌리엄은 이렇게 광고한다. “저녁 예배 설교는 캐서린 부스가 합니다.” 이후 그녀는 여성 설교자로 유명해졌고 그를 십분 활용해. “여자가 설교를 한단다. 우와 신기하다.” 이러면서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니까.
남편이 감리교단을 탈퇴할 때에도 그녀는 결정적 역할을 하지. 윌리엄은 세 차례나 감리교단 탈퇴를 신청하지만 감리교단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고 일종의 타협안을 제시했는데 그때 청중석에 있던 캐서린은 벌떡 일어나서 “Absolutely Not!"을 외친 거야. 결국 감리교단은 윌리엄 부스의 탈퇴를 받아들여야 했지. 이런 부부가 손잡고 세운 구세군 교단은 교단 내 남녀 지위에 관한한 어느 교파보다 선진적인 면모를 갖추게 돼. 여자에게 목사는 고샤하고 ‘장로’조차 허용하지 않는 교회가 지천이지만 구세군에서는 여성들이 설교는 물론 대장 (구세군은 군대식 명칭을 쓰니까)도 될 수 있었고 구세군의 헌장이라 할 ‘명령 및 규정’에는 남녀 구분 자체가 없었지.
캐서린은 설교만 하고 다닌 게 아니었어. 소녀들이 포주의 꾐에 빠져 매음굴로 떨어지고 평생을 고통 속에 보낸다는 사실에 접한 그녀는 거리를 누비며 40만여 명의 서명을 받아내 ‘아동성매매금지법안’을 촉구했고 노동자들의 열악한 삶을 고발하고 고용주들을 찾아다니며 가혹한 노동 조건을 완화해 줄 것을 간청했지. 그녀가 죽기 전에 몰두했던 문제 중 하나는 성냥 공장 문제였어. 성냥 머리의 재료가 되는 황린의 유해성이 노동자들의 건강을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었지.
“황린 대신 적린을 사용해 주세요. 다른 나라들은 다 그렇게 한다구요.”그녀의 거듭된 호소에도 불구하고 공장주들은 “적린이 황린보다 비싸요.”라는 답으로만 일관했지. 그래도 끈질기게 공장주들을 찾아다니던 캐서린은 위암에 걸렸고 찬송가를 부르며 그 헌신적인 삶을 마치게 돼. 그 장례식에서 남편 윌리엄이 토로한 슬픔은 뜻이 맞고 서로에게 기댈 언덕이 되고 디디고 설 발판이 돼 줬던 짝을 잃은 사람의 마음을 절절하게 대변해 주고 있어.
“여러분 주택의 정원 바로 창문 앞에 40여 년간 고이 기르던 나무가 뜨거운 햇빛을 가리는 그늘이 되어주었고, 그 나무의 꽃은 여러분의 생활을 아름답게 해주고, 찬양해 주며, 그 나무의 열매로 여러분의 생존을 지탱해 주던 바로 그 나무가 돌연히 정원사에 손에 의해 여러분의 목전에서 도끼로 잘려나갔다면 과연 여러분의 마음은 어떨까요?”
그리고 윌리엄은 그 슬픔을 아내의 뜻을 이루는 것으로 승화시킨다. 아내가 죽은 다음해였던 1891년 황린 대신 적린을 사용하는 공장을 세웠던 거야. 비싸다는 적린을 쓰고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풍족히 지급하고도 공장은 성공적으로 운영됐고 이것이 매스컴을 타고 각계에 알려지면서 캐서린 부스가 그렇게 찾아다녔던 성냥 공장들은 황린 대신 적린을 사용하겠다며 꼬리를 내리게 돼. 아마 윌리엄은 그 공장을 운영하면서 가장 가열찬 ‘전투’를 벌이지 않았을까. 아내가 죽기 직전까지도 매달리며 발을 구르고 손을 모았던 문제였으니까 말이야. 하나님만큼이나 이웃과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했던 부부는 그렇게 작지만 크게 세상을 바꿔 놓았지.
천생연분이라는 건 있다고 생각해. 사람들 사이에 하늘이 내린 천재가 반드시 등장하듯 아웅다웅 으르렁 으르렁 사네 못사네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보통이긴 해도 하늘이 점지하고 짝지어서 사람들에게 진정한 사랑이란 이런 것이란다 깨우쳐 주려는 듯한 천생연분도 존재하게 마련이지. 더구나 둘만의 행복도 아닌 더 큰 사람을 위한 둘의 결합이라면. 윌리엄 부스와 캐서린 멈포드(부스)도 그 중 하나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