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선교센타 명동글로벌 모임 결과보고 2023.12.5]이재을사도요한 지도신부님 묵상글

작성자내인생의터닝포인트|작성시간23.12.05|조회수12 목록 댓글 0

사랑방선교센타 명동글로벌사랑방
2023.12.5일
영상16분30초
-
https://youtu.be/IloZCoN5svc?si=9ECGjy620YKUICpE



사랑합니다♡
행복하세요♡


[사랑방선교센타 명동글로벌 모임 결과보고 2023.12.5]

오늘 명동글로벌 사랑방모임 참석하신 분은
1.김원수마르띠노
2.하은선 안나 총무님
3.유선희 효주아네스선생님
4.김원수마르띠노
이상 4분입니다

사정으로 불참하신 분은
1.박천옥 아나스타시아 부대표님
2.김근화 글라라 이사장님
3.박서현데레사
소장님
4.장순애 엘리사벳 후원자님
5.최영애 모니카 선생님
6.김귀화레지나 봉사자님
7.옥치순사비나 선생님
8.이상희 세실리아
선생님
9.박필령 안젤라 시인님
10.윤상열 베드로 선생님
11.이위영모니카 총무님
12.이희경엘리사벳 명장님
이상 12분입니다.

오늘도 시작기도를 한 후 개인비젼과 말씀비젼 선교비젼을 나누어했습니다.

2023.12.5
명동글로벌
말씀비젼
주제 대림 제2주일
(마르코1,1-8)
1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2 이사야 예언자의 글에
“보라, 내가 네 앞에 내 사자를 보내니 그가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3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기록된 대로,
4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5 그리하여 온 유다 지방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모두 그에게 나아가,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6 요한은 낙타 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둘렀으며,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다.
7 그리고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선교비젼으로
12.9일 사랑방선교센타
송년미사에 참석 예정자는 4명

식사와 음료수 경비는 지난번 예고한 바와 같이
창강식당에서 회비에서 지출했습니다.
식사비는₩47,000
커피음료는 커피가 좋아에서 이재을 사도요한 지도신부님이 스폰해주셨습니다.

앞으로도 식비음료대는
회비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내년도부터는
대학동해피인 후원을 매월10만원에서
매월5만원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다음 모임은
12월 27일 수요일에 10시10분 가톨릭회관 706호
입니다.

[명동글로벌회비
잔액1,050,543
수지내역]

사랑방모임
창강식당
-47,000원
잔액1,050,543원
12.05
김진숙비아
+120,000원
12.05
하은선안나
+120,000원
11.30
최영애모니카
+10,000원
11.27
박서현데레사
+10,000원
11.27
사단법인길벗사랑
-100,000원
11.25
이위영
+120,000원
11.21
이재을 : (사랑방송년감사미사협찬)
-200,000원
11.21
명동글로벌 11월식사음료대 : (10명참석)
-116,200원
잔액1,017,543원

●2023회비납부자
명단
○완납자
(2023.12.5현재)
1.장순애엘리사벳 후원자님
2.이상희세실리아 교수님
3.강명희 헬레나 선생님
4.김근화글라라
이사장님
5.이영실 소화데레사 후원자님
6.김원수마르띠노
7.이위영모니카 전총무님
8.하은선안나
현총무님
9.김진숙비아 후원자님
10.옥치순사비나
선생님11만
11.박천옥 스탸사 부대표님
12.박서현데레사 소장님
13.최영애 모니카 선생님
14.김귀화레지나
봉사자님
이상 4분 자동이체
15.서순자 루시아 후원자님 4만원

●아래는 2023회비
입금이 없네요
이희경 엘리사벳 명장님

■2023년지출내역
길벗사랑대학동해피인 매월10만원
110만원
심포지움
협찬 20만원
사랑방송년미사
협찬20만원
11.21일
식음료₩116,200
12.5일
식사대₩47,000
합계1,663,200원입니다

2023.12.5
이상 정리 보고자
김원수마르띠노

대림 제 1 주간 화요일-묵상과 기도

이사야 예언자는 다윗의 그루터기에서 정의와 평화의 왕이 탄생을 예고합니다. 그에게 주님의 영이 머문다. 곧 지혜와 슬기, 경륜과 용맹, 지식의 영, 그리고 주님의 경외함이다. 그는 힘없는 이들을 정의로 재판하고 땅의 가련한 이들을 정당하게 심판한다. 동물의 강자와 약자가 함께 지내고 서로 살져쪄가고, 함께 함께 먹고 마시고 놀며, 젖먹이가 독사굴에서 장난치고 어린이가 동물들을 몰고 간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통하여 제자들을 통한 평화의 공동체를 말씀하였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 지혜롭다는 이들, 슬기롭다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신비를 감추시고, 보잘 것 없고 약한 제자들 공동체, 교회에 드러내 보이니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이것이 아버지의 선한 뜻이다.고 하였습니다.

대림 시기는 주님 성탄 대축일 전, 4주간 동안입니다. 이 때에 예수 그리스도 아기의 탄생을 고대하며 준비합니다. '대림'이라는 말은 라틴어 아드벤뚜스(adventus) '도착'을 뜻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도착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 대림 1 주일부터 한 해의 전례 주년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이 대림 시기를 보내면서 회개와 속죄, 자선과 사랑의 준비로 보냅니다. 대림 1 주일부터 12월 16일의 전례는 깨어 기다림에 중점을 두고, 12월 17일 부터 성탄 전야 24일까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초점을 맞춥니다. 대림초 네 개를 바련하여 매주 빛을 하나씩 늘려갑니다. 구세주께서 가까이 다가오심을 마음으로 준비합니다.

회상과 성찰
-. 지난 시간을 되돌아 봅니다. 어제 등. 지난 시간 걸어온 길. 자리, 만남, 대화를. 나의 모습과 말, 처신과 행위를 바라봅니다.
-. 사랑과 자비, 진리와 선을 중심으로 나의 허약함과 허물, 그릇됨과 악습 등을 바라 봅니다. 회개, 개선, 자선을 찾습니다.
-. 내 안에 살아계신 주님, 자비하신 그분의 현존을 바라봅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습니다. 나의 바람을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또 그분의 말씀을 듣습니다.
-. 감사의 마음으로 나의 다짐과 실천의 내용을 기도로 바칩니다.

말씀 묵상
그날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그는 주님을 경외함으로 흐뭇해하리라.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결하지 않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리라.
힘없는 이들을 정의로 재판하고 이 땅의 가련한 이들을 정당하게 심판하리라. 그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막대로 무뢰배를 내리치고 자기 입술에서 나오는 바람으로 악인을 죽이리라.
정의가 그의 허리를 두르는 띠가 되고 신의가 그의 몸을 두르는 띠가 되리라.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사람들은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니 바다를 덮는 물처럼 땅이 주님을 앎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 이사이의 뿌리가 민족들의 깃발로 세워져 겨레들이 그에게 찾아들고 그의 거처는 영광스럽게 되리라. 이사 11,1-10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루카 10,21-24

말씀 실천
우리는 대림시기에 평화의 주님, 정의의 주님을 만납니다. 그분을 만나는 이들은 화평한 공동체가 누리는 공평과 정의의 친교를 누립니다. 늑대가 새끼양과 표범이 새끼 염소, 송아지가 새끼 사자가 공존하고, 암소와 곰이 새끼들이 서로 함께 지냅다.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젖먹이가 독사 굴에서 장난을,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에 손에 디밀게 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평화와 정의의 주님을 만나는 이 모두, 거룩한 산에서 모두 사람들은 악하게 패덕하게 행동하지 않고, 바다를 덮는 물처럼 땅에 주님의 앎으로 가득찹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평화와 정의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그들이 그 신비를 알게 되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몸소 그들에게 지혜과 슬기로 그 신비를 보여주셨으며, 그것이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었다. 그 신비를 보는 제자들의 눈은 행복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대림 시기를 시작하면서 공평과 공정, 평화와 화해, 일치와 사랑을 따라 살아갑니다. 그렇게 하여 평화와 정의의 주님을 만납니다.

마침 기도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을 바칩니다.

이재을 신부님

화요일은 말씀의 날입니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 8,31-32

"예"가 쉬운가? 아니면 "아니오"가 쉬운가? 주님 앞에 서면 "예"하고 응답합니다. 그러나 그분 앞에서도 "예"를 하고서는 돌아서서 그 "예"를 따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 "예"를 따르지 않을 때는, 내가 그분을 향해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주님 앞에서 "예"하고 그분을 따르기 위해서는 그분 앞에 머무는 것이 필요하고, 고요함 속에 기도해야 합니다. 그 평정의 기도의 자리를 마련하지 못하면, "예"했다가도 이내 잊어버리며, 그분께 응답하고 나서도,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부끄러운 사람이 됩니다.

하느님께도 "예"하고 응답하고, 사람 앞에서도 "예"하고 응답하는 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 앞에서 "예"하고 응답하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흐르게 됩니다. 나의 뜻이 다르고 그의 뜻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선함이 있을 때, 그는 선하지 않을 수 있고, 그가 선함의 해석과 이해가 부족하거나 결핍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하면서 온전한 "예"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그를 수용하고 받아들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를 사랑하거나 존경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가 언젠가 "예"하기를 바라는 희망에서 아직 그 "예"를 유보하는 것 뿐입니다.

천사가 마리아께 말했습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다." 루카 1,35

천사의 마리아에 대한, 그가 이해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가 아기를 낳게 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성령께서 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덮는다. 하느님의 아드님이라 하더라도 이승의, 물리적이고 현상의 세계에서 어찌 가능할 수 있을까? 그 가치에서 살아온 사람으로서 어찌 가능한가?

마리아는 이런 물리적 현상적 차원의 세계속에 살았으면서도, 천사의 말에 응답합니다. 이는 마리아의 불가능이 없는 하느님의 믿음. 신적인, 성령의 삶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말씀 안에 머무르는 이는 주님의 말씀에 "예"하고 응답합니다. 그 말씀이 주님의 말씀이고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믿기 때문에 "예"합니다. 말씀에 머무르지 않으면, 주님의 말씀에 "예"하고 응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자기 생각과 가치와 판단에 함몰되기가 쉽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처럼 처음에 천사의 말씀을 "예"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도 "예"하고 응답하였습니다. 그가 벙어리가 된 후, 하느님의 역사를 깨닫게 되면서 "예"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것은 해도좋고 하지 않아도 좋은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은 유일한, 단 한번의 주님의 말씀. 그 말씀이 성취되지 않고서는 돌아오지 않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에 "예"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예"하는가? 그렇게 응답하는가 ? 그렇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화요일은 말씀의 날입니다. 묵상과 기도 중에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 말씀에 "예"하고 응답합니다. 사람과의 선한 만남에 "예"하고 응답합니다. 진리의 길에 "예"합니다. 주님의 가르침과 성체의 삶에서 "예"하고 응답합니다. 그렇게 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물게 됩니다.

주님, 오늘도 당신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당신 말씀에 바르게 응답하고 그 말씀을 실천하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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