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있었던 일입니다. 자주 들리는 표선 식자재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마침 얼갈이 배추가 저렴하게 세일을 하고 있습니다. 꽤 굵은 두 단이 담긴 채 판매가격은 겨우 990원! 열무까지 함께하면 좋지만 이 참에 얼갈이배추김치 한번 해보자싶어 집어들려고 하는데 초로의 여인이 먼저 자리를 잡고 고르고 있습니다.
얼갈이단이 쌓여있는 공간은 여러 사람이 설 수가 없는 한 사람정도 서서 고를 수 있는 구조라서 그녀의 선택이 끝나길 기다립니다. 그런데 이 여인, 차곡차곡 쌓여져있는 얼갈이 봉투를 위 아래 뒤져가며 원하는 상태를 고르는 것이 꽤 시간이 걸립니다. 무려 5분이상 뒤에서 지켜보는데, 다 그게 그것인 비슷한 상태인데도 한 다발 고르는데 무려 5분 이상을 소요합니다.
겨우 한 개를 집고서야 끝난 그녀의 선택! 그녀의 행동이 흥미로와서 계속 지켜보고 있다가 내 차례가 되자 쿨하게 두 다발 집어들고 떠나니 그녀는 내가 고른 것이 더 나았던가?하는 눈길로 저를 쳐다봅니다. 두 단에 겨우 990원하는 얼갈이배추 다발인지라 그 값어치를 생각하면 다소 시들었을지언정 결코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막상 집에 와서 다듬어보니 싱싱하기까지해서 이럴 때는 그야말로 득템수준이 됩니다.
결정장애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됩니다. 삶이란 매일의 일상으로 구성되어있고, 매일의 일상은 일주일, 한달, 계절, 년단위로 변화를 주며, 일정한 꾸준함 속에 정기적인 변화로 구성됩니다. 거시적으로 보면 그렇지만 미시적으로 보면 꾸준한 일상과 정기적인 변화의 내용물들은 끊임없이 결정이라는 사고와 행위를 순간적으로 요구합니다.
이미 뇌신경망이 굵어진 행위 중에 화장실가기, 밥먹기, 샤워하기 등조차 순간적인 결정행위는 끝없이 요구됩니다. 화장실가면서 휴대폰들고갈까? 말까?부터 밥상에서 어떤 반찬을 먼저 먹을까? 샤워 때도 머리부터 감을까 몸부터 씻을까? 어떤 샴푸와 비누브랜드를 쓸 것인지? 등등 우리의 삶은 찰라적인 결정의 연속체로 구성됩니다. 어떤 배우자와 결혼을 할지, 어떤 직장을 선택해야 할지와 같이 생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의 자잘한 결정행위는 그야말로 인생의 전체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결정할 수 없는 것은 탄생과 죽음 뿐! 나머지는 모두 결정을 끊임없이 해가며 올바른 선택을 하려고 하며, 때로 잘못된 선택을 한탄하거나 만회하려 애쓰며 그렇게 살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중요한 결정이라는 사고행위에 버퍼링이 걸려있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위에 예를 든 여인처럼 990원하는 얼갈이배추 앞에서도 5분을 할애할만큼 일상의 많은 부분들에 버퍼링이 걸려있을 것입니다.
다른 매장 쪽에서 다시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의 장바구니안에는 아까 고른 얼갈이배추 다발 하나 뿐 아직 다른 것은 담지도 못했습니다. 제 카트에는 며칠 필요한 식료품과 재료들이 가득한데 그녀는 이리저리 보기만 할 뿐 아직 장바구니에 담지는 못했습니다. 아마도 두 가지 상황일것입니다. 결정장애를 갖고 있거나 특별히 할 일이 없어도 괜히 백화점이나 슈퍼에 와서 어슬렁거리는 부류이거나, 이런 부류의 여인들이 꽤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결정장애는 사실 성인 ADHD/ADD상태에서의 전형적 특징 중에 하나입니다. 결정장애의 근본은 역시 내재된 불안이라는 감정이 가장 크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선택에의 불안감, 선택자체의 자신없음이 표면적 이유이겠지만 사실 알고보면 선택한 대상이나 행위에 대한 분석력 부재가 더 큰 이유입니다. 선택대상에 대한 분석력이 가동되지 않는 비율이 클수록 불안이라는 뇌영역은 먼저 불쑥 작동하게 되어있습니다.
뇌구조상 결정을 해야하는 대상에 대한 정보를 받아들이는 뇌영역은 측두엽의 변연계이지만 변연계는 이 정보들을 전두엽으로 보내서 결정이라는 행위는 전두엽에 맡겨야만 합니다. 이런 뇌의 연결통로가 원활하지 않을수록 결정장애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ADHD/ADD상태에서의 뇌의 과제는 측두엽과 전두엽의 연결통로의 원활함과 속도를 높여야한다는 것이기에 결정장애의 특성을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 통로의 원활하고도 신속한 가동이 ADHD/ADD의 뇌구조개선 과제 중의 핵심이기에 그들을 개선하기 위해 처방하는 약물의 원리는 도파민자극과 방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일부 ADHD약물은 마약에 준하는 정도의 도파민 자극제가 되는데, 위에서 설명한 측두엽과 전두엽의 통로가 바로 도파민의 통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결정장애의 근본 원인을 뇌구조적으로 보면 아래의 핑크색 통로가 기본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폐증은 전두엽성장이 거의 되지않는 최악의 정신질환이기 때문에 아예 결정이라는 행위에 대해 의지조차 없습니다. 교육을 시켜도 마치 모든 행위가 유전자에 프로그램화되어 있어 프로그램되어 있는 행위만 하는 동물들과 같습니다. 사고의 유연성, 적용성, 유추성, 논리성 등을 습득하지 못하는 한 프로그램 되어있는 그 한도 내에서만 교육이 가능하기에 결정행위 자체가 봉쇄되어 있습니다. 사고의 유연성, 적용성, 유추성, 논리성 등은 전정감각 담당영역이기에 자폐증은 전정감각 회복에 온 힘을 바쳐야만 합니다.
자폐증보다는 전두엽이 그래도 훨씬 발달하긴 했어도 여전히 자기를 벗어나 타인과의 공감유대 속에서 고차원의 인간적 기능을 하는 뇌영역은 여전히 부족한 상태가 바로 ADHD ADD단계라고 보면 됩니다.
결정장애는 사회적 소외자나 실패자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끊임없이 타인의 결정에 의존하거나 타인의 결정에 좌지우지되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결정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부모 뿐이기에 부모에게 버림받았거나 미움받았거나 하는 경우에는 더욱 힘들어집니다. 운이 좋아 나를 잘 이끌어 줄 선생님이나 은인, 배우자를 만나지 않는 한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기에 결정장애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이란 사회적으로 준비가 되어야만 합니다.
물론 결정장애가 있다고 사회적 루저층으로 전락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사회적 부담을 크게 만드는 루저층 (노숙자, 범죄자, 마약중독자들)의 기저에는 결정장애 외에 또다른 경제적 개인적 요인들이 중첩되어 있겠지만 그 근간에는 결정장애도 크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늘 새겨야 할 것입니다.
측두엽과 전두엽의 연결통로에 자동차(도파민)가 쌩쌩 달려야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나 도파민이 팡팡 제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연결통로 길이 잘 만들어진 고속도로여야만 합니다. 그 통로가 좁은 자갈길이거나 자주 무너지는 아슬아슬한 산길이거나 좁은 지방도로 정도라면 수용할 수 있는 자동차는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 통로가 뇌신경망입니다.
도파민이 많아야만 뇌신경망이 잘 가동되는 것이 아니라 뇌신경망이 잘 구축되어있어야 도파민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할 수가 있습니다. 도파민을 열망하며 마약에 빠지는 사람들이 결코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도파민이 넘친다고 다 수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뇌신경망을 구축해갈 수 있을까요? 바로 운동과 교육과 환경입니다. 이 세 가지의 조합은 나를 바꿔줄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며, 진부한 말로 사회적 인간으로써의 도리를 강조하는 교육과 성장환경에서의 모범사례들이 넘칠수록 뇌신경망은 그야말로 튼튼하게 자리를 잡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부모라면 자식에게 결정을 미숙한 어린시절부터 스스로 결정을 잘 해보도록 기회를 계속 주고, 결정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않도록 최소한의 간섭을 하는 것! 교사도 마찬가지 일겁니다.
결정을 미리 앞서서 다 해주고 그 쪽으로 가라고 강요하는 사회는 결국 전두엽의 발달을 막는 부정적 교육환경입니다. 다양한 결정을 존중하고 격려하며 잘되도록 응원해주는 사회, 수없는 시행착오 속에서도 그야말로 건전한 정의를 세워나갈 수 있는 근본 힘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