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45년을 넘게 친분을 가져온 대학동기이자 남사친 격인 친구가 있는데 묘하게도 그와의 거리는 좀체 좁혀지지가 않습니다. 45년을 넘긴 남녀사이이니만큼 중도에 이성적 관계로 갈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기엔 뭔가 감이 부족한 느낌의 정체는 뭘까? 그는 치열한 연애사로 바빴고 나는 그의 연애사의 목격자이자 상담사 격으로 자리매김되었다고나 할까. 암튼 그와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이유를 40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됩니다.
그와 그렇게 오랜 인연의 끈이 이어져온 것의 배경에는 그의 지독한 나르시시즘적인 삶의 태도를 제가 묵묵히 바라보거나 그저 그러려니하고 들어준 것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문어체같은 구어체쓰기를 좋아하는 그는 한번의 만남에 하나의 추억담이나 자신의 주변사람 이야기와 경험담을 소설로 풀어내는 독특한 말재주가 있습니다. 다만 만남의 시간 대부분, 그의 문어체식 주절거림을 경청해주어야 하는 곤혹스러움이 있기에 그와의 만남시간은 다소 마음의 준비를 필요로 합니다. 그저 나를 죽이고 만나야한다는...
제가 발달장애 쪽으로 직업을 바꾼이래 만남은 중단되었으니 거의 15년 이상은 못 본 셈입니다. 그러다가 제주도로 온 이후, 인연이 되는 사람들과 함께 오랫만에 만났지만 시간의 간극만큼이나 각자 삶에의 방식이 갈라져버렸으니, 예전같은 일방적인 경청에의 시간들에 변화가 옵니다. 더우기 그의 기억 속에서 맴돌다 문어체로 구성되어 발설되는 저와의 추억담은 실제상황과는 다르거나 그 친구 중심의 사건전개들이어서 그 추억담 속에 제가 낯설기까지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 친구에게 저라는 존재는특별한 관심의 대상인 것은 맞지만, 자신과의 연관성 속에서만 아름답게 포장되기도 하고 마음아픈 추억담 속 주인공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라는 인간의 개인적 상황이나 평가는 그에게는 별 의미가 없고 그와의 연계성에서만 의미가 살아있습니다. 내가 그의 여러 명의 형제들의 상황을 속속들이 알고, 사돈에 팔촌까지는 아니어도 보지도 못한 사위나 며느리 근황까지 모두 알고있는 것과는 너무 대조적입니다.
어떤 날, 그가 자기는 어떤 유형의 사람인 것 같냐는 질문에 제가 해준 답변은 '나르시스트!' 그렇습니다. 그래도 그는 고고하고 멋지며 나름 사회적으로 실패하지 않은 건전한 나르시스트입니다. 나르시시트로 살아도 손색없는 능력과 재능이 있기에 그만의 독특한 폼잡는 나르시스트로 살아도, 코드에 맞지않는 몇몇 사람들만 피하면, 별로 문제될 것도 없습니다.
단지 이제 저도 노쇠해가고 있어서인지 일방적인 경청이 너무 피곤해지고 그와의 관계성의 의미를 잃어버린 태도가 드러나버리자 그와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멀어져 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르시시즘 유형의 사람들과의 유대성이란 일방적 관계의 존속이유가 살아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가장 흔한 것이 직장을 옮기거나 더이상 볼 일이 없는 관계가 되었을 때 바로 안면을 바꾸는 경우가 가장 흔하게 거론됩니다. 나르시스트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나'와의 실리적 연관성이 없거나 같은 공동체에 있지 않을 때 바로 지안관계를 철수해 버리는 냉정함입니다. 모든 관계의 중심은 자신일 뿐, 현실적으로 자신과 관련이 없는 관계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정신수준의 사람들이라면 나르시시즘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애정을 오래 지속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짝사랑하기에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사랑을 전개해 나가는 과정에서는 분명 짝사랑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을 나르시스트들은 만족시켜 줄 수가 없습니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사람에게 들어가서 영향을 주거나 애정이란 것을 얻어내기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과 관련된 연관성에 직접적인 의미가 없으면 관계유지의 필요성이 희박해지기 때문에 나르시시즘 경향의 사람들에게는 '정'이라든지 '연민'이라든지 '유전적 끌림' 같은 것들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일 때만 의미가 있기 때문에 자기와의 연계성이 없어지는 것에 바로 태도돌변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도 책임감이나 의리 등을 잘 교육받았거나 그런 덕목을 배울 수 있는 가정환경에서 컸다면 그나마 다행이고 외부적으로는 문제없는 인간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경우, 배우자 외에 다른 연인 만들기도 쉽게 할 수 있고, 자기품위 유지를 위해 타인에게 피해주기, 문제가 생겼을 때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거짓변명거리 찾기, 심지어 말로 문제해결이 되지 않을 경우 위해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보통 나르시스트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자기만이 옳고 잘났다고 으시되며 말마다 자기자랑이나 그럴싸한 무용담을 펼쳐대는 '자뻑형'과 결코 앞으로는 나서지 않으나 뒷담화에 능하며 스스로 공격형은 못되지만 누군가 주동하면 쉽게 휩쓸려 공격형으로 돌변하는 '비겁형' 이렇게 나누기도 합니다.
서로 극단처럼 보이는 이 두 가지 유형은 남에게 칭찬을 갈구하거나 관심받기를 좋아하고, 일이 잘못되면 남탓을 우선하기도 하고, 타인들을 내 손아귀에 조종하려하며, 공감능력이 약하며, 타인의 비평이나 지적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태도가 역력합니다. 냉정한 나르시스트가 가장 쉽게 하는 말! 주변에 사정이나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때, '그건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고!'일겁니다.
그 만큼 나르시스트에 있어 타인에 대한 이해하려는 아량은 기본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물론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일 때도 있습니다. 자기에게 유리하거나 필요할 때는 태도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기주의적 성향이 강한 자녀나 배우자와 함께 생활하는 경우 다른 사람을 위한 이타적 행동을 하게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수시로 하는 교육이 꼭 필요합니다. 타인을 위한 일들이 꼭 내게 당장 이득이 되지 않더라도 보상이 된다는 것을 자주 경험할수록 그나마 이기주의적 성향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르시스트와 한 팀이 되서 일을 도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혼자 북치고 장구칠 수 있는 능력이 있거나 혹은 그 사람 아니면 안될 재간이 있다면 모를까 사회 속에서 부딪치면 상당히 어려운 부류들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피해갈 수도 없거니와 더 중요한 것은 정작 본인은 다른 이들의 정신적 피곤힘을 모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나르시스트에 대한 대처는 당사자보다는 주변인으로써 어떻게 덜 피곤할 것인가에 대한 지침이 더 요구될 것이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