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영흥도에 이사와서 때맞춰서 빈 밭에 콩도 심고 팥도 심었는데요, 씨뿌리고 얼마 후 힘차게 솟아난 콩과 팥의 어린 잎들을 고라니가 어찌나 노리는지 하룻밤 지내고나면 콩팥밭은 빈가지만 덩그라니 남곤 했습니다. 영흥도 여기저기 농사짓는 밭에 고라니 출입방지 낚시그물이 왜 그리 철저히 울타리쳐져 있는지 실감하는 그 때, 콩팥밭에 잡초들은 살판난듯 콩과팥을 위한 퇴비의 힘까지 더해져 결국 콩팥을 뒤덮어 버렸습니다.
아직은 전문농사꾼도 못되고 겨우 주말만 돌봐주는 처지에 빈 가지만 달고있는 콩팥들에 아예 기대를 거두어버리고 다른 채소에 더 신경을 썼는데요... 주인의 방치와 이미 숫적으로 경쟁할 수 없는 잡초들, 거기에다 고라니의 입맛살리는 공물이 되어 그렇게 늦여름과 가을 보내니... 갑작스런 한파가 풍경을 확 바꾸어 버렸습니다.
때이른 10월의 한파는 조용히 자기 유전자대로 살아가던 다양한 식물들에게 힘겨운 적응을 요구하는 듯 합니다. 어차피 예정된 한파였기에 거기에 대한 대비가 없을 리는 없겠지만 코드화된 성장과 쇠락 프로그램에 허를 찌른 조기한파는 식물들을 바쁘게 합니다. 콩팥 밭에 잡초들은 갑자기 그 세를 접고 누렇게 변해가는 새에 콩팥들이 제대로 열매를 맺어 줄기가 무겁도록 콩팥을 매달고 있습니다.
곧 꼬투리를 활짝 열 누런 것들 위주로 수확해보니 그래도 양이 작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이파리를 올려도 고라니가 바로 먹어버리니 참으로 더 열심히 잎을 더 올려가며 맺은 결실들이라 기특하기 그지없습니다. 키도 작고, 줄기는 빈약하고,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고 옆으로 누워있고, 이파리들은 살아남느라 상처투성이인데도 최선을 다해 열매들을 착실히 맺어 놓았습니다.
이미 한파를 심하게 겪고 예년보다 차거운 날들이 계속 되자 가을의 풍경은 확실히 빨리 계절을 마감하는 모습으로 가고 있습니다. 여름날의 짙은 초록과 누렇게 시든 1년생 잡초들 사이에는 형형색색의 가을색깔들이 10월 한달간 우리의 눈길을 즐겁게하곤 했는데 이제 그것들이 생략되어 버린 듯, 주변의 풍경은 어정쩡한 시듬의 빛깔로 빠르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10월부터 맛본 겨울의 기운은 내년 3월까지는 가야하니 무려 6개월을 우리는 짧은 일조량과 차거운 기온 속에서 버티는 스산한 풍경 속에서 지내야 합니다. 오후 5시만 되어도 해는 자꾸 넘어가려고 하고... 짧아진 만큼 그 아쉬움도 커져서 낙조의 색은 유난히 붉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