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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從)의 일기

[2026년 6월]7. The Rite (악마는 있다)

작성자조목사|작성시간26.06.08|조회수22 목록 댓글 0

정말 악마가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의 모판이 되는 성경 기록의 내용을 온전히 믿는가 하는 믿음의 문제에 달려 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과 삶 속에서의 수많은 신적 기적들 그리고 우리 죄를 속죄하기 위해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사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후 다시 하늘에 오르사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다시 오신다는 사도신경의 말씀을 진리로 믿는다. 이 성경의 진리를 믿기에 성경에 기록된 악마의 존재를 믿는다.

 

이 믿음의 기반 위에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천사가 있는 것같이 악마도 있다. 꼭 천사와의 대비로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성경 안에서 많은 귀신들린 자들에게서 귀신들을 떠나도록 쫓아주시고 또 직접 귀신들에게 명하사 그들을 무저갱으로 돌려 보내신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마귀(악마, 악한 영, 사탄, 귀신)의 공격은 예수님 당시에나 지금도 여전하다. 아니, 마귀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그 때부터 이미 인간에게 손을 내밀어 역사하였다. 

 

마귀의 역사는 두 가지로 작용한다. 하나는 십자가의 가시관으로 그리고 다른 하나는 번쩍이는 왕관으로. 그러나 사실 이 두 가지의 공격 방법은 마귀의 전유물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도 같은 이치로 작용한다. 마귀는 십자가 가시관을 통해 인간에게 더욱 큰 고통으로 하나님을 원망하며 그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신앙을 버린 채 하나님을 떠나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 편에서는 이 십자가를 통해 성도로 하여금 더욱 큰 인내의 단계를 거쳐 고난 속에 숨겨진 보화를 발견하도록 하여 십자가를 지난 부활의 영광에 동참케 한다. 

 

마귀는 인간에게 번쩍이는 왕관을 통해 십자가의 믿음에서 떠나 세상 열락으로 빠지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의 나라와 의를 위해 수고한 모든 성도들에게 승리의 보상으로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왕관을 그리고 영생을 허락한다. 일반적으로 주어지는 시험은 마귀에 의해 왕관으로 그리고 하나님에 의해 십자가의 가시관으로 시험대에 오르게 한다. 과연 어떤 시험이 더 어려울까? 왕관으로 주어지는 시험은 마귀의 간교한 공격이다. 십자가의 가시관을 뒤로 하고 왕관에 혹하여서 멸망의 길로 빠지게 한다. 그러나 십자가의 가시관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시험은 성도가 고난 중에서 더욱 주님께 의지하게 하고, 고난 중에서 더욱 많은 하나님 은혜를 체험케 하여 승리의 길로 이끈다.

 

그러므로 내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올 것을 알고 깨어 있어야 하며, 고난 중에 있을 때 하나님이 안 계신 것같지만 어차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므로 믿음 안에서 인내의 소망 가운데 있게 됨이 복이다. 지금 우리나라 그리고 한국 교회는 이미 서구 유럽 교회가 겪어 온 것처럼 등따십고 배부른 처지라서 십자가의 가시관보다 세상의 왕관에 취해 있다. 그리고 대체로 형편이 좋아졌기에 신앙의 위기를 인식하게 된다.

 

악마는 있다. 그러나 세상의 열락에 취해 있기에 그 존재를 쉽게 망각한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주를 위해 고난을 받고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해 영혼 구원의 열정이 식어지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현실적으로도 우리 힘으로 이 마귀의 권세를 대적할 수 없으므로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며 성령의 도움을 청하게 된다. 이러므로 M/B는 "고난을 찾아가라!"라고 말씀한다. 인간의 속성으로 고난이 있어야만 그 고난을 벗어나기 위해 주님 앞으로 나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저녁에 2011년 제작 영화, The Rite (악마는 있다)를 보았다. 예전에 본 것 같았으나 아주 새로운 느낌으로 재미있게 보았다. 의심 많은 한 젊은 신부의 exorcism을 다룬 영화로 실화를 바탕으로 꾸며졌다. 매우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특히 아버지의 죽음을 예언적으로 다루었던 부분은 내가 바다에서 아버지의 백상여 나가는 꿈을 꾸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귀국했을 때 아버지의 사망일이 내가 꿈을 꾼 날과 같다든가, 최근 일산아학의 정재풍 집사 죽음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꿈 속에 그의 모습을 보았던 시간들이 엇비슷하다든가 하는 것은 나의 경우와 같아서 스스로 어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부인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뿐 아니라 초현실적인 사건은 내게 많은 영적 체험으로 다가와 나 역시 합리적 생각으로 신비의 영적 세계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때 내게 견고한 믿음의 성을 구축하도록 하였다.

 

나 역시 최근 여러 각도에서 악마의 존재를 의식한다. 그것은 내가 부족함이 없어 말씀과 기도 생활에 게을러지고 세상 열락을 쫓고자 할 때 나를 왕관으로 유혹하는 악마의 움직임을 간파하게 되고, 또 이러한 가운데 내가 나의 처한 바 영적 상태를 깨닫고 주님의 도움을 구할 때 주님은 실족할 수 있는 위기의 순간마다 나를 지켜주시고 나의 의가 드러나지 않게 하시며 주의 손 아래서 겸손토록 하셨다. 주님은 내가 믿음은 있으나 주의 고난에 동참하지 않을 때도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시어 내가 가는 길에 앞서 행하시며 실족치 않게 내 길을 인도하셨다. 마치 자동차 운전할 때 깜박 졸음 운전으로 큰 위험의 순간에 처했다가 자신도 모르는 감각으로 간신히 그 위기 순간을 넘긴 후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버지 하나님이 운전대를 직접 운행하신 것을 강하게 깨닫고 감사하게 되는 것과 같다. 이것이 너무 감사하게 생각된다.

 

오늘 교회 예배에는 안나가 신랑(박주석)과 함께 박하은 6월 첫 생일을 맞기 위해 참석한 것 이외에 많은 교우들이 불참했다. 내가 느끼기에 장 목사가 풀이 죽어 있는 듯 보여졌고, 그의 심정이 어떠한지를 이미 겪고 나온 아비된 입장에서 내 책임 같이 여겨지며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흔들리는 연약한 믿음이나 시험에 들어 있는 교우들을 생각하며 마음도 그렇지만 실제적으로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훼스탈을 먹고 속이 편해지기를 기도했다. 특히 오랜동안 교회 생활을 같이 해온 중직자들이 마지막 시험 관문에서 뒤로 물러나 있는 것을 보며 속상하기도 하고 울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사실 이들이 겪고 있는 시험은 재정 문제인 것같으나 그보다 먼저 서로의 신뢰 관계로부터 시작된 문제임을 본인들이 모르고 있는 게 영적 분별력이 없는 듯하여 안타깝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이러한 시험들 앞에서 내 마음은 더욱 신앙의 의지로 불타 올랐다. 최근들어 나를 향한 마귀의 보이지 않는 공격을 느끼고, 특히 어제 오산리 기도원에 다녀오며 나의 신앙 의지를 굳건히 세우고자 하는 시점에서 이런 교회의 시험들이 있고, 또 이로 인해 나로 하여금 더욱 교회를 위해 기도하도록 내 마음이 움직여지는 것을 느끼며 주께 감사했다. 그리고 이 싸움은 나의 승리로 끝나는 것임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저들의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도 실상은 죽은 믿음으로 나타나는 이런 영적 공격은 오히려 교회를 더욱 굳건히 세워가도록 나의 신앙 열정을 불태우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의 특징(큰 장점)은 어려움이 다가올수록 뒤로 물러나지 아니하고 더욱 앞으로 전진하는 도전의 신앙임을 나 자신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몽고에 JoyfulChurch의 신혼 부부 팀을 이끌고 단기선교차 나가 있는 나단이 사진을 보내왔다. 행복해 보였다. 주 안에서 주의 자녀들과 함께 하는 행보가 얼마나 복된 것인가.... 나단도 신혼 때 Fiji로 신혼 여행 겸 1년간 선교 여행을 다녀왔던 것처럼 선교 일정에 참여하는 신혼 부부들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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