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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오는 봄

작성자맑은 하늘|작성시간13.02.26|조회수24 목록 댓글 0

빛으로 오는 봄


오늘 아침, 붐비는 버스 창가에서 갑자기 봄빛의 물결을 보았습니다. 복잡한 거리의 화단엔 노란색, 붉은색, 보라 색깔이 어우러진 팬지꽃들이 억센 일꾼들의 손으로 부지런히 심겨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아직은 겨울 코트를 벗기가 이른 듯이 잿빛의 코트 깃을 세우며 삭막한 겨울 모습인데, 그 겨울 회색빛 무리 사이로 봄빛이 화려한 색으로 등장했습니다. 마치 흑백의 영화 속에 끼워진 한 장의 총천연색의 사진 같았습니다.

아! 며칠 전에도 봄빛을 만났었지요. 세종문화회관 옆길의 커다란 돌 화분에도 가득 또 가득히 팬지꽃들이 넘쳐흐르고 있는 듯했습니다. 도시의 건물 뒤뜰에 마련된 작은 정원에서는 아직은 남아있는 차가운 느낌의 겨울바람 속에서도 한잔의 따듯한 커피를 들고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한껏 부풀어있는 봄빛의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아직은 아니라고…. 멈칫거리는 겨울 속에서 사람들은 억지로 화사한 봄빛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그 바람에 저도 덩달아 칙칙한 겨울 코트를 던져버린 옷차림으로 거리에 나섰습니다. 겨울 속에 갇혀있던 마음을 끌어내어 한 발짝 일찍 봄맞이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는 봄빛을 닮은 얼굴을 억지로 만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마주치는 낯선 얼굴들에도 한껏 미소를 띠어봅니다. 답이 없는 무표정한 무리 속에서 "Free Hugs"의 팻말이라도 들고 서 있고 싶었습니다.

봄빛을 가득 담은 가슴끼리, 아니면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은 빈 어깻죽지끼리 으스러질 듯 격한 포옹을 하고 나면 아! 정말 그럴 수 있다면 음습하고 지친 표정들 속에서 봄빛을 닮은 따뜻한 미소들이 봄 안개와 함께 새록새록 뿜어져 나올 것 같습니다.

사직공원을 지나 인왕산을 오르는 등산로를 올라 보았습니다. 배낭조차 내려놓은 가벼운 차림입니다. 활터를 지나면서 제법 가파른 바위를 오릅니다. 계곡을 흐르던 물은 아직 얼어있어 작은 얼음 기둥을 만든 채 얼음장 밑으로는 봄빛을 닮은 물소리가 사뭇 귓가에 즐겁습니다. 나무 이름들이 적혀있는 작은 팻말들을 읽으며 그들이 만들어 낼 봄빛들을 상상해 봅니다. 가지 끝에서 만들어진 작은 봉오리들에선 금세라도 터질 듯이 부풀어 있는 농축된 힘들이 느껴집니다. 그들의 수런거림은 얼어있던 대지들을 깨우기에 너무나도 충만합니다. 등산화 밑으로도 전해져오는 부지런한 아우성들입니다.

언젠가, 봄비라는 이름으로 가는 비가 오던 날, 꽃집 앞에 내놓은 작은 수선화 화분이 마른 목을 축이듯이 봄비를 맞고 있었습니다. 두 개의 구근에서 올라와 피어난 노란색의 수선화는 봄비 소리와 함께 겨울 풍경을 한껏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그 힘은 대단했답니다. 마술을 부린 듯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가볍고 작은 수선화 화분을 들어 보았습니다. 그리곤 다시 내려놓았습니다.

저 혼자 만의 봄맞이는 사양하겠습니다. 거리를 지나는 모든 이웃과 같이 공유하고 싶은 노란색의 수선화.
어느 날 문득 싹둑 잘린, 방황하는 소중한 인연들을 위해 화려한 봄맞이를 드립니다.

 

<시니어리포터 백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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