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 현종9년(1018) 현종이 [버드나무가 무성히 자랐다] 는 의미로 양주라 칭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이색의 시
“깎아지른 듯한 세 개의 영이 푸른 하늘에 꽂인 듯한데
가파른 길이 얼어붙어 말이 못 가네” 라고 묘사되어 있다
양광도(대략 지금의 경기도와 충청도)
양주(지금의 서울도 예전엔 양주땅)와 광주(지금은 서울에 영역을 많이 잠식당했죠)
두 도시의 머릿글자를 따서 양광도라 한것임
남경유수관(=광역시~) 서울은 지금의 경주인 동경유수관. 지금의 평양인 서경유수관과 함께
고려시대 중시되던 지방도시
직할지인 양주의 양진(버드나무 양(楊) 나루 진(津)
광진(광나루)은 한강 남쪽 즉 강남에 있었습니다
광주의 나루라는 뜻이겠죠?
하지만 와전되어서 현재는 광진구가 강북에 있게되었습니다
양주가 강북이고 광주가 강남이니 양주의 나루가 양진. 광주의 나루의 광진이 되는게 맞죠
원래라면 광진구가 아니라 양진구가 되어야 맞긴한데 ~~
양진의 지명은 지금도 광진구 양진초등학교와 양진중학교로 남아있습니다
한성(漢城)~ 한강 북쪽에 있는 성이라는 뜻
한성은 조선왕조 500년간 수도의 행정구역을 공식적으로 일컫던 명칭
도읍을 한양으로 정하고 ~ 북악산과 남산을 잇는 산세를 따라 도성을 쌓았습니다
양주
태조4(1395) 6월6일 새로운 도읍지로 선정한 한양부를 한성부라 하고
기존의 아전과 백성(양주)들을 견주 (지금의 고읍동)옮기고 행정구역 명칭을 양주군으로 고침
태조6(1397) 치소를 동촌대동리에서 견주로 옮김~~양주부승격
태종 13(1413) 양주 도호부
세조 12(1466) 양주목
연산군 10(1504) 금표비 설치
중종원년 (1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