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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후기

[2022년 7월 16일 해피레그 50K 후기] 내가 레드카펫을 밟게 될 줄이야...

작성자Oxford|작성시간22.07.19|조회수506 목록 댓글 8

3년전으로 폴코스를 세번 뛰고나니 뭔가 자신감도 넘쳐날때 우연히 해피레그 울트라 마라톤에 대해 알게 되었다. 당시 회장님이었던 이두영님께서 하신 대회 소개를 보니 '까짓것 풀코스보다 8Km만 더 달리면 되는거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고 대신 완주했을때의 기쁨도 훨씬 크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올해는 풀코스에 집중하고 내년에는 참가해봐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언제 끝날줄 모르는 코로나 때문에 대회가 줄줄이 취소되었고 해피레그 대회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렇게 2년을 더 기다리다가 마침내 접수하는 것을 보게 되었고 바로 신청을 하였다.

 

그저 한 여름밤의 축제를 즐기겠다는 마음으로 준비라고는 1달에 한 두번 정도 LSD를 하였고 3년전에 해피레그를 대비해 사두었던 백을 창고에서 꺼낸것 말고는 없었다. 드디어 대회날, 전날 야근을 하고 피곤한 탓도 있었고 오늘을 대비해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대회를 위해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대신 재택근무를 하고 저녁을 먹고 서울로 향하는데 갑자기 반가운 폭우가 내렸다. 얼마만에 찾은 여의도 행사장인가? 마포대교 아래에는 이미 많은 분들이 준비를 하고 있었고 떨리는 마음으로 배번호를 받고 준비를 하였다. 출발 시간이 되어 갈수록 기대반, 두려움 반이었다. 과연 내가 50Km를 7시간내에 완주할 수 있을까? 공부나 일을 한다고 혹은 술을 마신다고 밤을 세어본 적은 있어도 말 그대로 달린다고 밤을 세어본 적은 없다. 

 

드디어 출발 신호가 떨어지고 모두들 힘차게 달려나갔다. 여의도 공원에 놀러 오신분들도 응원을 하였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달려나가다가 어차피 32Km 지나면 힘들어서 퍼질것이라는 생각에 조금씩 조금씩 속도를 내어 추월해나갔다. 각각 다른 모양의 야광등을 매달고 달려나갔다. 한강의 야경만큼이나 저 멀리 무리지어 달리는 후미등이 아름다워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휴레소를 보았고 대랴 5Km지점 정도 되는 것 같아 지나쳤다. 그러다가 두번째 휴레소를 만났고 반가운 분들과 인사도 하고 맡겨두었던 에너지젤을 받아서 챙겨 넣었다. 처음 달려보는 울트라 마라톤이라 커피를 마시고 통에 물을 채워서 달리다가 입안을 헹구기를 반복했다. 무게감이 느껴졌지만 언제 아리수 급수대가 없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별로 힘들지 않을 것 같았지만 절반도 지나지 않아 힘이 들기 시작했다. 앞선 주자들과 거리가 벌어지기 시작했고 인적이 드문 곳을 지나기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이제 자야할 시간인데...퍼지지는 않을까 두려워졌다.  앞에서 달려가던 주가가 후미 등을 앞으로 가져가서 후레쉬로 사용했다. 나도 자전거 경광등을 후레쉬로 사용해서 어둠을 헤치고 달려갔다. 한강을 배경으로 야경도 찍고 싶었지만 아직은 유유자적할 마음이 없었다. 그저 빨리 반환점에 가서 화채도 먹고 반환 팔찌도 받고 싶을 뿐. 선두 주자들은 이미 반환점을 지나 돌아오고 있었고 나보다 먼저 가던 하지만 저렇게 달리다가는 후반에 퍼질텐데 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반대편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드디어 아이유 고개가 나왔고 천천히 뛰어 오르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신발에는 작은 돌이 들어갔는지 불편하다. 드디어 반환점이 나왔다.

 

반환점을 지나 바나나와 전설의 화채를 먹고 팔찌도 받고 앉아서 신발도 벗어서 돌을 빼고 다시 신었다. 그러나 이게 나에게 독이 될 줄은 몰랐다. 이제 내리막 길이다. 속도를 내어서 아까 손해본 시간을 만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종아리에서 쥐가 올라오기 시작했고 그대로 길바닥에 누워버렸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버둥거렸고 지나가던 분이 '괜찮으세요. 제가 도와드릴까요?' 했지만 어떻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몰랐다. 게다가 나 때문에 시간을 지체하게 되면 이보다 더한 민폐는 없고 마라톤은 온전히 나 혼자 힘으로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먼저 가세요. 전 조금 쉬었다 갈게요' 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미리 혹시나 하는 생각에 준비했던 파우치형  리커버리 크림을 종아리에 발랐다. 그리고 아미노바이탈을 입에 털어넣었다. 플라시보 효과일까? 효과는 나타났고 다시 아까보다는 천천히 뛰어가는데 이번에는 발가락에 쥐가 났지만 참을 수 있었다.

 

속도를 조금만 올리려고 해도 쥐가 날것 같아 걷뛰를 반복했다. 그러다 가민을 보니 예상 완료시간이 7시간이 넘어가는 것을 보고 놀라서 다시 뛰었다. 하지만 걷는 것과 크게 차이는 나지 않았다. 꼭 완주 메달인 말굽을 받고 싶었다. 약골이었던 나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무리 보폭을 작게 하고 천천히 달려도 확실히 걷는 것보다는 빨랐다. 예상 종료시간은 6시간 30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최소한 페이스는 유지해야 한다. 덥지는 않지만 힘들어지고 정신은 몽롱해졌다. 체력은 고갈되어 갔지만 에너지 젤을 먹고 물로 입을 계속 헹구며 정신을 차렸다. 길치인데 이상하게 오늘은 이상하게 내가 지나왔던 길들이 생생히 기억이 난다. 저 길로 가면 되는구나? 이제 다시 불빛이 사라지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혼자만의 고독한 레이스를 계속했다. 이렇다 쥐가 나면 어떡할까라는 생각에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용기를 얻고자 좋아하는 음악을 틀었다.

 

'니가 떠나면~ 남겨진 내가~" 그렇다. 난 괜찮아. 괜찮아 하며 스스로를 독려했다. 속도가 빠른 주자들은 이미 도착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분들보다 2시간 넘게 더 달리기 때문에 훨씬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힘들어 하는 동료의 등을 두드리며 함께 하자고 하는 모습, 내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든데 시각 장애인과 함게 동반주를 하는 모습, 너무 힘들어 벤치에 기대어 있는 모습, 이방인의 방문이 반갑지 않은 길냥이들, 비가 와서 그런지 흙탕물이 된 한강, 그리고 강건너 편에 꺼지지 않은 불빛들.

 

이제 얼마나 남았을까 라는 생각보다 예상 종료시간은 얼마인지가 계속 신경쓰였다. 앞에 가던 주자가 다리에 쥐가 난듯 난간을 붙잡고 스트레칭을 하다가 다시 천천이 뛰고 있었다. 다리에 쥐가 난것 같아 내가 가지고 있던 하나 남은 리커버리 크림을 건네주었다. 혹시라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여유있게 챙긴다고 했는데 내가 이미 몇개나 바른 상태였다. 혹시라도 내가 쥐가 날수도 있지만 지금 나도다 더 필요로 하는 것 같아서 파이팅하자며 서로를 격려하고 다시 피니쉬 라인을 향해 달렸다. 이 지옥은 끝이 있다. 앞으로 10Km만 더 가면 이 고통은 끝이 난다. 누구도 끝낼 수 없다. 오로지 내가 가야만 한다. 드디어 42Km지점을 지났다. 이제 겨우 8Km만 더 가면  된다. 겨우 8Km. 경과시간은 대략 5시간을 조금 넘은 것 같다. 힘들어도 천천히 뛰어가는 분들을 만나 나도 힘을 내어 따라갔다. 무엇에 홀린듯이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앞만 보며 쉬지 않고 하지만 평소보다는 아주 느린 속도로 달려갔다.

 

갑자기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지금보다 젊은 시절 밤새 술을 마시고 집으로 가는 길이 이 모습이었을까? 시험 기간이라 이른 아침에 도서관 자리를 잡기 위해 학교로 걸어갈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는 지금 보다 행복했을까? 그시절 해보지 못해서 후회되는 것은 없을까? 1시간 뒤에 기록증을 받을 나에게 남을 후회는 지금 이 순간 내가 더 열심히 달리지 않은 것이다. 그때 힘들었어도 조금만 더 열심히 달렸더라면, 조금 더 즐기면서 달려볼 것을 하는 후회가 남을 것이다. 얼마나 기록을 단축했는지도 중요하지만 내가 정말 최선을 다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무념 무상, 나는 누구이며 여기는 어디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마포대교를 향해 6시 이전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드디더 63 빌딩이 보이고 저멀리 마포대교가 보인다. 들고 있던 음료수 병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나를 닮아 이 녀석도 힘없이 날아가지 못하고 길바닥에 떨어진다. 주워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다리를 굽혀야 한다. 억지로 억지로 허리를 숙여서 주워 마치 분풀이하듯 쓰레기통에 던지고 마지막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며 다시 달렸다. 내가 달리는 것인지 풍경들이 내 옆을 지나가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과연 내 몸이 앞으로 나가고 있는 것일까? 가민은 야속하게도 배터리 부족이라고 하며 남은 거리를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없다. 드디어 마포대교가 나타났다. 하지만 얄밉게도 마포대교 1Km앞에 원효대교가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1Km를 더 가야 한다. 1Km 씩이나...100 미터도 아닌 1Km를, 걸어가도 10분이면 도착할 거리지만 끝없어 펼쳐진 신기루와 같았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른다. 어서 완주 메달을 받아서 자랑하고 싶은 생각 뿐. 너무나 힘들고 고통이 밀려온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혼자서 소리도 질러보며 다리만 앞으로 앞으로 뻗었다. 지금 멈추었다가는 쥐가 날것 같다. 쥐가 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억지로 억지로 발걸음을 떼어야 한다. 이마 완주한 분들이 파이팅을 외치며 '다 왔습니다. 힘내세요' 라고 말한다. '장사꾼이 우리 밑지고 파는 거에요' 라는 말처럼 들린다. 피니쉬 라인은 보이지가 않는다. 내가 주문을 외워야 나타나는 것일까? 정말 있기는 한 것일까? 나는 지금 꿈속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장이라도 쓰러지만 꿈에서 깨어날 것만 같다. 그런 꿈속을 헤매다 보니 붉은 안내봉을 든 가이드가 보였고 나를 안내해줬다. 아...말로만 듣던 레드카펫. 내가 레드카펫을 밟아보다니. 주위에서 오직 나만을 바라보며 응원한다. 레드카펫을 밟고 주인공이 되어 뛰어간다. 카메라를 든 분과 옆에서 손을 들어라고 안내를 해주시는 분. 너무 힘들었지만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번쩍 들었다.

 

지금 이 순간 주인공은 바로 나다. 졸업식 이후로 처음으로 꽃다발을 들고 사진을 찍어 보았다. 1년뒤 혹은 10년뒤 이 글을 보며 나는 무슨 생각을 할까? 아니면 처음으로 마라톤을 시작했던 내가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풀코스를 수차례 완주하던 3년전의 내가 이 모습을 본다면 급격히 저하된 체력을 보고 실망할까? '까짓것, 도전해보는 거지' 라며 두려움 없이 도전하던 모습이 많이 위축된 것은 사실이다. 해피레그가 나에게 준 선물은 완주 메달인 말굽만은 아닐 것이다. 한여름밤의 추억은 덤이었고 다시 한번 도전해불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3년전으로 돌아가 설레이는 마음으로 풀코스를 준비하며 포기할 줄 모르던 열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마치표가 없는 나의 인생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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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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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Oxford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7.20 본문에도 나와있듯 토사카님 소개글을 보고 3년을 기다리다 참가했네요. 그만큼 감동도 컸습니다.
    우리가족 1인1굽 하려면 3번 더 남았네요. 담번에는 더 즐기겠습니다^^
  • 작성자불패(홍반장) | 작성시간 22.07.20 와...저는왜 이런 후기가 울컥할까요~~~
    러너만이 느낄수있는 복잡미묘한 감정과 감동이 고스란히 담겼네요
    손에땀을쥐고 완주를 기다리며 읽었습니다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 !!!
  • 답댓글 작성자Oxford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7.20 고수님들 보다 더 오랜시간 주로에서 고통(?)의 시간을 보냈기에 감회도 더 했습니다. 행복한 시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성자충무공 | 작성시간 22.07.20 생동감 넘치는 후기 너무 감동입니다
    하시는일마다 잘되시길 빕니다
  • 답댓글 작성자Oxford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7.21 충무공님 감사합니다. 해피레그의 기운받아 이제 다 잘풀릴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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